성공한 화가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8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11
(1872-1873)



“그림이란? 눈과 손이다.” 마네는 렘브란트의 그림들과 할스 담스테르담의 작품 앞에서 그와 같이 결론을 내렸다. 네덜란드의 두 작가의 작품들은 마네에게 에너지를 충만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마네는 이 두 작가에게 감동을 받아 같은 주제로 「네덜란드 풍경」을 그렸다. 또한 종킨드 스타일로 「풍차」를 그리기도 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 가운데에서 마네가 제일 애착을 느낀 화가가 종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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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네덜란드 풍경(Vue de Hollande)」(1872)과 「풍차(Le Moulin) 소묘」(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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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제비들(Les Hirondelles)」(1873)과 「썰물 진 베르크 백사장(Plage de Berck sur Mer à marée basse)」(1873).


플랑드르 태생의 화가들 덕분에 회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 울적한 심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파리로 돌아오자 마네는 그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이제까지 생각만 해오던 그림들에 손을 댔다.


성공한 화가의 모습에 걸맞게 마침내 그가 다시 아틀리에에 정주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4개월 전부터 마네는 자신의 재능을 이리저리 시험해 보던 중이었다. 마네의 가족은 여전히 생 페테르스부르 가 49번지에 살았다. 귀스타브는 감베타와 함께 지내기 위해 파리 도심 한가운데로 떠났다. 귀스타브는 감베타와 하루에 거의 스무 시간 가까이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귀스타브가 떠나면서 51번지 지상층 아파트가 다시 비게 되어 당분간 그곳을 아틀리에로 쓰기로 했다. 레옹이 군대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레옹에게 돌려줄 참이었다. 마네는 같은 거리 4번지 건물도 하나 장만했다. 그런 탓에 마네는 매일 아침 두 곳을 오가야만 했다.


4번지 건물은 예전에 무기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일반 건물의 지상층과는 달리 높은 지형에 위치한 덕에 앞으로 불쑥 솟아올라있을 뿐만 아니라, 4개의 커다란 창문들이 해가 지는 쪽으로 나있어 채광이 일품이었다. 베란다 난간에서 르 퐁 드 유럽과 엠마뉴엘 샤브리에가 살고 있는 모니에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피아노 역시 아틀리에에 들여놓았다. 음악은 수잔과 마네 이 두 사람을 서로 끈끈하게 이어주는 요인이었다. 어느 누구 한 사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 둘이 늘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대들보를 자른 상태에서 오목하게 파인 천장은 햇볕을 완벽하게 끌어들이는 구실을 했다. 커다란 회랑이 건물 정면에 툭 튀어나와 있어서 커다란 커튼으로 살짝 가리기만 하면 몽상에 빠지기 좋은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나쁜 짓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마네는 건물 안을 온갖 괴상망측한 가구들로 도배했다. 그 가운데 피아노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수잔더러 연주하라 마라 괴롭히지 않을 것을 약속한 전제하에 들여놓은 것이었다. 왜냐면 모친인 으제니가 자신의 집에서 여는 음악회를 수잔이 이끌어 나가야만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수잔 역시 잠시나마 집에 홀로 있을 수 있어 자신이 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을 반기는 눈치였다.


마네는 건물 안에다가 모델들이 자리 잡고 앉을 수 있도록 작은 방을 만들어 온통 벽지를 도배하여 그럴듯하게 꾸몄다. 모델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을 만큼 푹신푹신한 기다란 암홍색 소파도 갖춰 놓았다. 그림을 그리다 잠시 모델과 껴안고 뒹굴 것을 예상하고 한 짓이었다.


파리는 온 거리가 다시 화사한 물결에 휩쓸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마네가 아틀리에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햇살 가득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처럼 빛으로 가득 찬 실내에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마네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기차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오가면서 내는 기적소리가 그의 귓가에도 맴돌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의 벽들도 숨을 내쉬듯 흔들거렸다. 마네는 ‘모든 걸 성취한’ 자신이 이제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 것에 자아 도취되어 명함을 만들 생각까지 했다.


에바와 마네는 점점 다정한 친구 사이가 되어갔다. 그녀는 마네를 아주 먼 훗날에나 자신의 남편이 될 팔자로 여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빅토린느는 자신을 맨 처음 먹여 살리던 이가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마네에게 달려왔다. 그녀가 다시 마네의 아틀리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동안 빅토린느는 성숙해졌고 무르익은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있었다. 이젠 어엿한 여염집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틀리에를 비운 것에 화가 나 빅토린느에게 복수심에 불타 「올랭피아」를 그릴 때와는 달리 마네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한 아이를 둔 젊은 기혼여성으로 묘사했다. 그림 속의 빅토린느는 저 멀리로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책 난간에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은 상태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Manet, Le Chemin de fer.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철길(Le Chemin de fer)」.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과거에 은밀하게 즐기던 에로틱한 관계로 다시 빠져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과거 애정 행각을 벌일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 상태였다.


갑자기 베르트 모리소가 완쾌된 것에 정신이 번쩍 든 마네는 베르트에게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몇 날 몇 시에 찾아와 달라는 짤막한 편지를 띄웠다. 베르트는 이사 중이었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프랭클린 거리를 떠나 기샤흐 거리로 이사를 했다. 여전히 파시 근처였다. 마네와 베르트는 모든 작가들이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작품들을 팔아 기금을 모으려고 함께 모인 장소를 오가면서 잠시 지나쳤을 뿐이다.


베르트와 만날 약속을 정하자마자 마네는 빅토린느를 내쫓아버렸다. 그녀와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철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베르트가 아틀리에로 와서 다시 자신의 품에 안기기만 한다면야 그까짓 것은 언제 완성해도 그만이었다.


마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로 다른 두 존재, 서로 다른 두 시대, 서로 다른 여인들 사이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더군다나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두 야망으로부터 조차 벗어나고 싶어 했다.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즈에 빠져있었기는 하나 그에게 끊임없이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세잔이나 드가나 모네 역시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종킨드 또한 점점 자신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어정쩡하기만 한 서로 다른 두 존재 사이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사실은 마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상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통주의자들은 마네를 증오했다. 마네의 작품에서 보이는 현대적 삶의 일상에 대한 묘사를 그들은 극도로 혐오하고 나섰다. 하지만 마네 역시도 전통 회화에 고취를 받아 그림을 그렸다. 다시 말해, 마네가 화단뿐만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림들조차도 다 전통 회화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었다.


과거도 알고 보면 이미 지나간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현재 상황을 다룬 그림이 명백해 보일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 역시도 과거의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혁명에 가담한 이들은 마네의 미온적인 태도를 두고 비난했다. 오흘레앙파 지지자들은 마네의 프롱드 정신에 입각한 열려있는 태도까지 거론하면서 입술깨나 씹어댔다. 한편으로 빈털터리가 된 바티뇰 군단의 화가들은 한 명씩 차례차례 파리를 떠나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또는 살길이 막막하여. 하지만 마네는 생 라자르 기차역 뒤편에 으리으리한 아틀리에를 갖춰 놓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모두가 희망하기를 마네가 다시 그들을 한데 합치기를 바랐지만, 어떤 벽이 가로놓여있는지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마네의 팔레트가 완연히 밝아진 건 물론,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건 지극히 예외에 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다 한 번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을 뿐이기 때문이다. 마네 역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그 기이하기 짝이 없는 검은색을 좋아하는 취향은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틀리에를 벗어나면 시끄럽고 혼잡스러울 것 같아 작업을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작용했다.


친구 스테방 아틀리에가 있는 정원에 화구를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그 기회마저도 스스로 단념하고 말았다. 마네가 좋아하는 이웃사촌들도 마네를 가리켜 못 말릴 사내라 여겼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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