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9화
12장 12
(1872-1873)
예술작품에 꽤 심취한 어느 작자가 마네더러 불로뉴 숲에 위치한 경마장에서 개최되는 마상시합을 한 번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주문했다. 못할 것이야 없지. 마네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말(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드가가 파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경마시합을 담은 그림이라. 드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려는 생각에 마네의 맘이 동했다. 드가는 말에 관심만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말을 기르기까지 했다. 걸핏하면 자리를 비우고 걸핏하면 투덜거리면서 불평불만만 쏟아놓는 드가였지만, 마네에게 있어서는 친구들 가운데 제일 친한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드가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네는 그를 경마장으로 끌고 갔다. 둘이 바싹 붙어서 경마를 지켜보면서 수없이 팔을 위아래로 쳐들었다 내렸다 했다.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다 나누려는 듯 둘은 도대체 진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시콜콜 이야기까지 나누면서 낄낄거리고 장난치다가 맘이 동하면 그때부터 경마장 그림을 그려나갔다. 누가 있어도 못 말릴 상황이었다. 그간 못다 한 우정을 다 만회하려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걸 어떻게 이해할까 싶을 정도였다.
마네는 그림에다가 말을 탄 기수를 정면에 내세웠다. 말들이 출발선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장면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이에게 회화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것도 그림 정면에 마치 돌을 던지듯이!
반면 드가는 예쁘장한 모자를 쓰고 귀빈석에 앉아 경마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여인네들을 정성껏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기도 하고 서로의 그림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그런 와중에 마네는 드가에게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마네의 말을 다 듣고 난 드가는 평소보다 더 거칠게 투덜거렸다. 마네가 털어놓은 이야기에 대해 드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더 친밀한 사이가 되어갔다.
마네는 1873년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하면서 고전주의 작품 경향으로 회귀해 간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을 제작했다. 벨라스케즈에 고무되어 기타 치며 노래하는 스페인 가수를 그렸듯이 이번에는 할스의 작품을 본떠 술꾼들을 그렸다. 여러 점의 맥주를 마시는 술꾼 습작을 통해 술꾼들을 주제로 한 작품 제작을 의도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에 입각한 작품을 의도하기까지에는 친구 벨로의 영향이 컸다. 판화가이자 석판화가이며 게르부와 단골손님이기도 했던 벨로는 마네의 술집 단짝이었다. 마네는 늘 그렀듯이 살아 숨 쉬는 모델을 원했고 이에 적합한 이미지가 벨로라 생각했다.
벨로는 마네가 원할 때마다 모델을 서줬다. 주변의 화가들 사이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네는 게르부와 카페에서 그를 스케치하다가 좀 더 세밀한 터치를 위해서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벨로는 마네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여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것만 해도 80여 차례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