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10화
12장 13
(1872-1873)
이 와중에 베르트가 기별을 전해오더니 드디어 아틀리에에 나타났다. 노상 따라다니는 모친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선점한 그녀는 마치 안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아틀리에를 이리저리 휘둘러보면서 새로 구입하여 들여놓은 커다란 소파를 마수걸이라도 하려는 듯 미끄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림을 어떻게 그릴 지를 결정한 건 마네가 아니라 그녀였다. “여기다가 이젤을 갖다 놔요. 자! 그럼 난 소파로 가서 앉을게요.” 그녀는 덧붙이기를 “이렇게 불빛이 환한 자리에 앉아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
마네는 마치 베르트에게 조종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어렵사리 다시 만나 함께 그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로써 전대미문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네는 작품에 「휴식」이란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누가 이 작품을 보고 휴식을 떠올리겠는가? 그림의 분위기는 그와는 달리 서로가 끌어안지 못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두 사람의 모습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베르트를 화폭에 담아 가면서 마네는 좀 더 커다란 화폭에 그녀를 담지 못한 걸 후회했다. 정열을 되찾게 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마네가 그녀에게 친구로서 진정한 화해를 담은 작품일 수 있기를 기대했던 탓이다.
사랑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의 무게 또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친밀한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해 가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마네가 베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심중에 담긴 이야기를 표명한 건 화가와 모델 사이에 있을 수 없는 기묘한 관계를 내비친 것이기도 했다.
“난 그대가 목요일에 나를 보러 오겠다고 한 약속에 대해 방문을 좀 미뤄줬으면 하는 바람이오. 그대가 혹시라도 못마땅해할까 봐 그림을 빨리 진척시키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마네는 확실히 베르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의 스승이었던 꾸뛰흐처럼 될까 봐 두려워했다.
베르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그녀의 모친인 모리소 부인 탓에 베르트와 마네 두 사람은 마치 발레 동작에서 발끝으로 춤을 추듯 속내 이야기를 은밀히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베르트는 마네가 두려워하는 바를 말을 돌려 암시적으로 환기했다. 으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트는 마네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녀는 마네와 퓌비 드 샤반느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퓌비는 너무도 진지하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마네는 그의 의향을 묻는 베르트의 질문에 심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도 잔인한 형벌과 같은 질문인지를 그녀에게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욕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든, 아니면 그녀의 질문에 순순히 응한 것이든 간에 마네는 그녀를 압도할 만한 결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했다. 세상 남자들이 다 그러하듯 마네 또한 그녀를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특별한 존재라고까지는 지칭하지 않았다. 단지 베르트에게 벌거벗은 포즈를 취한 갈색 머리를 한 여자 그림만 보여줬을 따름이다.
서로 사랑의 고통만을 느낄 뿐인 두 사람 간의 서로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승화시켜나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들은 미친 듯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쪽을 선택했다. 게다가 마네는 베르트가 일개 한 여자이기 전에 화가란 사실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댔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다른 어떤 동료들보다도 재능이 훨씬 뛰어나다고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지 드가만을 제외하고. 두 사람 모두 드가를 뛰어난 화가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완성한 베르트의 초상들은 조용하고 온화한 모습을 띤 그녀의 얼굴들을 보여준다. 그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기로 서원이라도 한 탓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녀의 모습이 그렇다고 생각한 것일까? 마네는 어찌 됐든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 그녀가 헌신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모친이 바로 앞에서 그들을 지켜보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네는 베르트를 느긋한 마음으로 그려 나갔다.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더해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림이었다.
베르트는 마네를 유혹할 방법도 그를 납득시킬 방법도 더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마네를 대했다. 그녀는 두 눈으로 그를 사랑했고 괴로워 몸부림쳤다. 내일이면 자신을 그린 그림이 만인 앞에 공개되는 날이다. 강렬한 그 무엇이 다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야릇하기만 한 표정을 담은 인물화 속에 감춰진 그 무엇을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오직 베르트의 연속적으로 바뀌고 있는 눈길에 자연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까닭에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베르트의 표정에 마음이 동한 마네는 그녀를 실제와 다르게 그리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네의 그림은 그 모든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오직 인물 뒤의 원경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마네가 노골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를 읽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서로 얽힌 관계를 어떻게 청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 사람은 서로 간의 묵계로 인하여, 서로에 대한 갈망으로, 또한 서로가 지닌 야망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마네는 붓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신들린 듯이 붓질을 해나갔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그릴 모든 그림에 그녀를 담고 싶어 했다. 그것이 불가능할 뿐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앞에 포즈를 취한 베르트는 피곤한 듯 짜증을 내는 모습인가 하면, 마네를 비웃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슬프고 애처로운 모습을 띠기까지 했다.
베르트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게 역력했다. 그녀는 마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네가 그녀를 놔주지 않는 한 그녀 역시도 그를 바라보는 걸 그만두지 않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그들 두 사람 다 화가였기 때문에 그런 포즈를 취할 수 있고 또한 그런 모습을 담을 수 있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의 대화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끼어드는 베르트의 모친 탓에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듯한 아주 건조한 대화만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이중적 의미를 지닌 어법을 고집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 연유로 마네는 베르트에게 온갖 상징적인 의미를 띤 액세서리와 같은 표현을 덧붙였다. 그는 「부채를 든」,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쓴」, 「분홍빛 구두를 신은」, 「보랏빛 꽃다발장식을 한 목걸이를 한」 베르트를 그렸다.
1873년 그 해에 최신 유행어는 꽃말이었다. 꽃말에 따르면 보라색이 상징하는 바는 사랑의 인질이었다. 또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둘 모두는 마네를 따라다녔다.
마네는 이 둘 모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보라색과 부채는 결국 베르트 모리소를 의인화한 것이었다. 좀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서였을까? 마네를 대신하여 슬그머니 지팡이나 검은 고양이를 그려 넣은 것처럼 그 자신을 상징하는 오브제들과 같이 이번에는 보라색과 부채가 베르트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요는 마네를 위해 베르트가 다시 포즈를 취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매일 마네의 아틀리에를 찾아와서 마네를 뚫어져라 쏘아보면서 앉아있었다. 그건 그녀가 바라마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관전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마네는 미술전람회에 베르트의 반신상을 그린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었다. 스캔들도 그만큼 반감될 것이 분명했다.
엄청난, 아연실색할 뿐일 성공과 호평이 「맛 좋은 맥주 한 조끼」에 이어 「휴식」에까지 이어졌다. 또한 그림을 사겠다는 새로운 주문도 쇄도했다.
하지만 몇 번 월계관을 머리에 썼다고 증오에 찬 분노와 조롱과 야유를 어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마네는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관전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