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11화
12장 14
(1872-1873)
미술전람회 개막식 날 마네는 베르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베르트는 자리에 없었다. 드가와 뒤랑티는 마네를 호위하고 엠(M) 전시장까지 걸어갔다. 영광의 월계관을 머리에 쓴 「맛 좋은 맥주 한 조끼」와 「휴식」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베르트의 파스텔 색조의 쓸쓸한 표정은 놀랍게도 에드마의 얼굴과 흡사했다. 그녀는 관전에 그녀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될 「요람」을 출품했다. 마네는 바로 베르트의 작품을 떠올렸다. 그에게 용기를 준 작품이 바로 베르트가 그린 「요람」이었던 탓이다. 이 아둔한 자들이 그 작품의 가치를 모르다니!
마침내 베르트가 나타났다. 예외적일 정도로 아무도 거느리지 않은 채였다. 마네와 베르트 두 사람은 함께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천천히. 그것도 아주 특별한 내밀한 관계에 의한 짜릿한 흥분을 느껴가면서. 그렇다고 해서 꼭 회화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시장 부스를 다 둘러보았다. 둘러보는 와중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신랄한 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그들의 맘에 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렬하고도 격렬한 흥분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네가 그린 그림 「휴식」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을 지켰다. 「휴식」은 두 사람에겐 금기와 같은 작품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작품 앞에 이르렀다.
마네는 자신이 그린 작품에 대해 베르트가 어떤 평을 해줄까 고대하긴 했지만, 그녀가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었다. 거꾸로 그녀가 어떤 평을 할지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해 그녀가 무슨 이야기인가를 해주기를 바란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은 마네야말로 그가 이끄는 화가 군단의 실질적인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네는 베르트가 자신에 대해 혹평을 할 때마다 화가 나긴 했으나 남들이 다 이야기하는 걸 그녀가 단지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베르트가 「맥주를 마시는 술꾼」을 혹평할 때 역시 마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술꾼의 얼굴이 너무 빨갛고 배는 너무 튀어나온 데다가 조끼도 너무 몸에 꽉 낀듯한 느낌이라고 마네에게서 배운 반어법을 통하여 그림을 혹평하고 나섰다.
“아! 당신은 그대의 베르트를 닮은 베흐탱을 그린 것이로군요!”
마네의 마음을 읽고 있던 베르트는 기분을 맞춰주려는 듯 앵그르에 빗대어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모두가 앵그르를 거만한 부르주아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여서 마네 역시 앵그르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마네가 베르트를 모델로 삼아 그린 「휴식」에 대해선 그녀는 단 한마디 말도 없었다. 그녀는 애를 태울 뿐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휴식」에 대한 평을 조심스레 개진하지는 않았다.
베르트는 여느 모델과 다름없이 한 모델에 지나지 않았다. “죽어가는 여자의 모습을 그리지 않은 다음에야……. 허약해 보이는 모습에다가 초라한 옷차림까지, 앙상한 팔들은 철사 줄을 연상케 하고 작은 발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 표정은 무뚝뚝하기만 하며, 아무리 그녀를 좋게 봐준다 해도 그녀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며, 사나운 성질머리를 곧 드러낼 표정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기 몇 주 전에 문단의 총아였던 테오도르 드 방빌은 베르트를 통해 보들레르 풍의 현대를 대표하는 여신(뮤즈)을 보았다고 극찬했다. 이로써 베르트 모리소에 대한 평은 상쇄되었다. 약간. 하지만 그건 단지 그녀에 대한 혹평이 조금 해소된 걸 의미할 뿐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서려있는 ‘우울’한 그림자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남게 되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마네 자신의 우울을 표상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그녀에 대해 그처럼 평한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네의 또 하나의 걸작이 된 「맛 좋은 맥주 한 조끼」를 환영하는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떻게 그처럼 한 목소리로 작품에 대한 찬사가 쏟아질 수 있을까 미심쩍기도 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어느 누구라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점잖은 표현으로 일관한 작품이다. 마침내 마네는 스스로 절제할 줄 알게 되었으며, 감정을 누그러뜨릴 줄도 알게 되었고, 본인과도 화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반 대중과 같이 심사위원들도 눈이 멀기는 마찬가지였다. 더하여 이 경우에는 마네에 대한 평이 맹목적이기까지 했다. 그림에서 은연중에 읽히는 주제는 다름 아닌 맥주 한 조끼가 프러시아 군대에 빼앗긴 알자스 지방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와 같이 맥주를 맛본 적이 없기에 그러한 사실 또한 직시하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건 뭐냐 하면, 마네의 이 작품이야말로 애국심에 의거한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마네 이전에는 그 같은 작품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행복하게도 프랑스 북부 한 작은 카페의 풍경이 의미하는 바를 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마네의 작품이야말로 애국심에서 비롯된 숨은 의도를 표출한 작품이란 사실에 있었다.
마네의 「휴식」이 혹독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맛 좋은 맥주 한 조끼」는 무사히 혹평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아무리 마네가 그와 같은 사실을 떠들어대 봤자 어느 누구 한 사람 그걸 이해할 사람이 없다는 걸 마네는 절감했다. 더군다나 심사위원회로부터 비열하게도 검열을 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마네는 모두 4점의 작품을 출품했지만, 2점은 퇴짜를 받았다.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성공한 화가나 다름없었다.
관전 비평을 쓰는 이들이나 절친한 동료들까지도 거부당한 2점의 작품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자신의 낙선작 2점을 알게 되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왜냐면 앞으로도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걸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미는 것만이 그의 예술적 삶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했다. 마네는 자신의 그러한 태도를 수정하는 것조차 스스로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