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12화
12장 15
(1872-1873)
어느 날 우연히 미술전람회 분위기를 담은 신문을 읽어가던 도중 마네는 자신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이제 일반 대중을 납득시켜야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들은 미술전람회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또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경악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요는 마네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대경실색할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그가 그린 「맛 좋은 맥주」를 샀는데, 그 금액이 자그마치 120,000프랑에 달한다.”
마네는 신문기사를 읽자마자 바로 신문사로 달려갔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실과 다른 기사를 어떻게 그것도 뻐젓이 신문지상에 실을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금액이 잘못되었다. 120,000프랑이 아니라 12,000프랑이었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었다!
그림을 사기로 했던 포레는 결국 그림을 6,000프랑에 구입했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가격은 이미 넘어선 가격이었다. 포레는 마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개인 소장가를 꿈꾸던 중이었다.
마네는 또 다른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미술품 거상과 가깝게 지냈다. 마네는 그가 대단한 부자라고까지 생각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했다.
뒤랑-휘엘이 마네가 최근에 그린 그림들을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마네는 뒤랑에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현존하는 작가 가운에 탁월한 작가가 한 명 있으니 그 화가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적극 추천했다.
“자자! 한 번 주위를 둘러보시고 내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세요. 오늘은 대화를 나누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다음에 이야기를 나눕시다. 내 미리 귀띔을 해주자면 그 화가는 절대 남자가 아니오.”
뒤랑은 그 즉시로 오후에 베르트 모리소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린 유화나 수채화를 막론하고 상당한 숫자에 달하는 작품들을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사들인 작품 가운데에는 「파리 풍경」과 「요람」도 끼어있었다!
사교계를 들락거리는 온갖 부류의 인간들에게 망신을 당하고도 모자라 욕까지 얻어들은 탓에 팡탱은 파리를 완전히 떠나고자 작정하고 어렵사리 가족을 찾아갔다. 가족과 재회한 팡탱은 성공적으로 망슈 해협 저 너머에 자리한 바닷가 마을에 정착했다. 파리에 전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팡탱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마네는 늘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인 그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작업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팡탱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팡탱도 보고 싶었지만 그만의 명쾌한 판단력이 늘 아쉬웠다.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고집하던 이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각자 시골에 머물렀다. 마네는 집밖에서 동지들을 만날 때 아내를 대동하고 나서는 걸 늘 주저했다. 아내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기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마네의 태도가 아내를 전과는 완전히 다른 여자로 만들어버렸다.
수잔은 이제 더는 피아니스트라 말할 수준이 아니었으며, 과거에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음악가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그의 아내였을 따름이다. 모친의 뒤를 이어 제2의 마담 마네가 되었을 뿐, 또한 공식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부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동부인을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마네는 모임에 뒤섞이기가 몹시도 난처했다. 뒤레를 제외하고는 그들 모두가 아내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거나 은폐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아내나 동거녀나 잠시 한때 같이하는 애인이든 간에 그녀들은 당연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일상적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네의 경우는 달랐다. 마네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있는 아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부족을 심각할 정도로 아쉬워하고 후회했다.
마네는 급기야 수잔을 어떻게든 고립시키려 드는 자신의 태도를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열할 정도로 치사한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하는 행동이나 태도로 비춰볼 때, 마네의 행동은 전혀 아내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그녀에게 과한 삶은 도저히 부부의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네 자신만을 위한 독단적이고도 이기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그런 자신을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난 번 미술전람회에서는 마네는 친구들이 너무 많이 탈락하는 바람에 그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전혀 방도를 찾을 길이 없을뿐더러 자신의 심정도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이 낙선자들의 전람회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름도 거창한 자연주의 화가들의 전람회(Salon des naturalistes)였다.
전람회에는 종킨드를 비롯하여 도비니, 피사로, 팡탱,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의 작품들이 내걸렸을까? 이 화가 집단이야말로 회화적으로 한 가족과도 같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결집체를 방불케 했다.
그들이 새로이 시도한 낙선작 전람회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관전 출품작 명단에서 아예 그들의 이름을 제명시킨 나폴레옹 3세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마네의 극단적인 행동 이외에는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다.
더군다나 낙선한 이들의 전시회는 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산업박람회 궁전과는 다른 장소에서 열렸다. 임시로 지은 탓에 전시회장 가림막 공사 또한 제대로 하지 않아 널빤지에 석회 벽토가 더덕더덕 붙어있었을 뿐 아니라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건들거리기까지 했다.
작품들도 너무 늦게 전시장에 내걸렸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른 탓에 조악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서로 단합하여 여론의 주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마네는 오직 베르트와 으젠과 함께 전시장을 지켰다. 베르트와 으젠은 언젠가부터 늘 함께 붙어 다녔다. 두 사람이 마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시회에 참가한 이들의 작품에게서 일관되게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작품을 보러 다른 이들 또한 전시장을 찾아올 수도 있고, 두 눈을 휘둥그래하며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자연주의자들이라고요? 왜요? 무슨 이유에서 그런 거예요? 대체 이 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요? 뭘 의미하는 거예요? 누가, 어떤 작품이 그렇다는 거예요? 졸라가 이들 모임의 대부 격인가요?”
애당초 잘못되었다. 마네가 동료들과 어울려 관전에 대항하는 전시회를 개최하겠다는 발상은 적어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작품만이 미술전람회에 통과되었을 뿐, 또한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파리에서 으스대며 사치스럽게 작업하고 있는 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네가 동료들 앞에서 취했어야 할 최선의 정당한 태도는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스캔들이나 일으킨 이 자연주의자들의 전시회를 애당초 떠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칼로 물을 베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었다.
돈과 시간만 낭비한 전시회에 대해 마네는 오히려 드가와 베르트를 설득하려 들었다. 두 사람은 마네가 전혀 타당해 보이지 않는 공동전선을 그들과 함께 형성하려 하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나선 장본인들이었다.
“내가 시도한 건 다름 아니라 미술전람회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네. 우리가 미술전람회를 선점해야만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마네는 모네와 다른 동료들에게 부단히 해명하고자 나섰다. 그들은 앞에서 돌격을 외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시장에 모습을 나타낸 이들이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게 뭐야? 그들이 대체 마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거야?”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 기존의 시스템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거였겠지.”
그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잡지를 한 권 펴내기로 뜻을 모았다. 그게 느닷없이 함께 모여 전시회를 열자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들과 뜻을 함께 하는 이들도 참가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시작하자마자 문을 닫아야만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올해 우리가 뜻한 바대로 되지 않은 건 준비 부족 때문이었네. 내년엔 잘 되겠지. 모두가 전시회를 보러 오게 될 거야.” 모네가 약속하듯 말했다.
“아니야. 난 이제 더는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네. 자네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네가 그의 말에 반박하듯 대꾸하고 나섰다. 더군다나 새 잡지를 펴내는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털어놓았다.
“자네가 말한 <문학과 예술의 르네상스>란 잡지 말이야! 모든 정부 기관들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돼. 모두가 우리가 펴낸 잡지가 <아카데미 기관지>로 여길 수 있도록 말이야. 그들이 선점하고 있는 영역을 우리가 다 차지할 필요가 있어. 설사 모든 걸 헤쳐나갈 방법을 택해 우리가 앞장선다 해도 일반 대중은 우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네. 또한 대중을 우리가 목적한 바대로 이끈다 해도 모두가 자멸할 수도 있지.”
마네는 새로운 ‘도덕적 질서’가 수립될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과 사유에 대한 끔찍한 순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기는 그걸 어떻게 알아 맞출 수 있다는 말인가?
동아리 멤버들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한 피사로만이 오직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피사로는 사회주의 미래 건설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그와 같은 날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고까지 예언했다. 하지만 누가 그의 호소를 이해할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 와중에 불길한 징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미술전람회가 개최되고 있는 동안 티에흐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뼈 아픈 일을 당하고 대신 아주 지독한 인물이 티에흐 자리를 차지했다.
군주 정치를 찬양하는 백작이자 프랑스 총사령관인 이 인물은 파트리스 마크 마옹이라 불리는 작자였다. 이 작자는 마치 오를레앙공 필립 섭정 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피사로는 이 작자의 출현에 질겁하여 그의 등장을 군주 정치를 복원하려는 속임수라 여겼다.
“자네의 「맥주를 마시는 술꾼」의 성공에 대해서 말하자면 말이야, 자네의 그림은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이답게 그린 그림 같아서 그 누구도 이 작품이 어떤 사건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겁을 집어먹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한쪽에서는 자네의 작품을 단순히 받아드리자는 연방주의자적인 분위기도 감지되네. 나 역시도 이를 환영하는 것이 자네의 작품이 기쁨을 준 것은 물론이고 그들 모두가 염려하는 바를 일소시켜줬기 때문이라네.”
똑똑할 정도로 침착하기만 한 피사로다운 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