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에서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14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17
(1872-1873)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네덜란드를 여행할 때 마네가 생맥주 잔에 담긴 맛 좋은 맥주에 심취했다는 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벨로가 할렘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고 스테방이 비웃는 바람에 주먹다짐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네의 그림에는 그처럼 네덜란드 화가 프란츠 할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자네는 지금 나를 표절이나 하는 작가로 여기는 건가?”


마네가 말한 표절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는 작업을 할 때마다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져만 갔기에 예민한 반응까지 보였다.


친구 벨로는 뜻하지 않게 마네의 명성 덕을 보게 되었다. 마네의 그림에 등장한 덕분에 파리 라틴 구에 맥줏집까지 차리고 「맛 좋은 맥주 한 조끼」라는 마네의 그림 제목을 따서 지은 상호 덕분에 맥주 애호가들이 들끓기까지 했다. 과거에 빅토린느가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 덕에 파리의 여왕을 꿈꿨던 것처럼 이번에는 벨로가 파리에서 제일 근사한 맥줏집을 꿈꾸기에 이른 것이다. 마네는 자신의 모델들이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유명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피사로, 데부탱, 르누아르, 모네 등 게르부와 카페를 드나들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파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진 게르부와 카페는 쓸쓸한 정적만이 감돌고 도저히 잊히지 않을 몸통은 작고 팔다리가 긴 바지유의 그림자만이 너울거리면서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띠어갔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바지유의 부재로 말미암아 그들의 가슴속에는 마치 그들이 약속이나 어긴 것처럼 별똥별 하나가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비참하고도 애통한 심정이기도 했다.


마네는 블랑슈 광장에 있는 <누벨 아텐느>나 인근의 피걀에 위치한 <죽은 쥐>라는 상호를 단 카페에서 거의 죽치다시피 했다. 점심은 계속 또흐또니에서 들었다. 보들레르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그를 따라 하고 싶은 속물적 근성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탓이었을까? 확실한 건 마네의 태도가 보들레르를 닮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녁 시간에는 언제든 집밖으로 나갈 태세였기에 집에서 저녁 모임을 갖는 건 아주 예외적일 정도로 적었다. 에두아르는 연극을 좋아했고 수잔은 오페라를 즐겼다. 두 사람이 자주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외출을 했으나 때로는 각자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플로베르의 작품이 공연되던 첫날 마네는 아스트뤼크와 어울려 함께 지냈다. 난삽한 춤이 곁들여진 공연은 4막으로 진행되었는데 공연이 끝나자 야유가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마네는 아주 만족했는지 박수를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옛날 방식으로 공연되는 서커스도 즐겼다. 서커스 장에는 레옹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데리고 드나들었다. 아이는 서커스 장에서만은 항상 기분 좋은 듯 유쾌하게 공연을 즐기고 웃고 떠들어댔다.


오! 그렇지. 마네는 착한 마음씨를 지닌 소유자였고, 아이 또한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만일 마네에게 그 어떤 야망도 없었다면 누구에게 잘못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일도 없었을까? 마네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를 책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레옹은 군대를 마치고 벨포흐에서 돌아온 뒤로 다시는 가족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레옹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시 시작되자 미술전람회에서의 성공에 연이어 그가 속한 화가 군단과의 우정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친과 아내를 동반하고 뚜께 인근의 에타플로 향했다. 귀스타브와 쥘르 두주이는 주말에만 그들과 합류했다. 그곳에서 마네는 으젠이 베르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네는 그녀를 무심하게 내버려 둘 타입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퓌비 드 샤반느의 청혼을 고대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배필감으로 그를 더 선호했다. 마네 집안사람들을 떨쳐버리기에 그보다 더 간단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퓌비는 그녀에 대해 모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 탓에 자꾸만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 파리 생 페테르스부르 아파트에 홀로 남은 으젠은 평상시에는 도저히 즐길 수 없는 고독 속에 빠져들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 쓰는 낙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마네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작업에만 매달렸다. 여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전쟁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덕분에 그해 여름에 마네는 「백사장」을 완성했다. 수잔은 책을 읽는 중이고 등을 돌린 귀스타브는 생각에 잠겨있다. 탁 트인 바닷가 백사장은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기만 하다. 이게 바로 마네가 의도한 바다다.


1873,Sur la plag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백사장(Sur la plage)」, 1873.


일상적이고도 인물화를 즐겨 그린 마네의 그림 중 가장 마네 다운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속의 여인은 약간 뚱뚱한 모습을 한 마네의 부인 수잔이다. 아내인 수잔과 모친인 과부 마네 부인과 함께 에타플(Étaples) 인근의 르 뚜께(Le Touquet) 파리 플라쥬(Paris-Plage) 해수욕장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그린 그림이다. 마네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백사장에 앉아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막내 동생 귀스타브를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 말고도 마네는 다수의 정물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완성한 「바닷가 어부들」이란 그림에서는 생기마저 감돈다. 물속에서 어부들은 정어리 잡이 그물을 손으로 꽉 쥔 채 끌어당기고 있다. 한시바삐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네는 과거 견습 선원이었을 당시 바다에서 혹독한 경험을 한 아픔이 가시질 않고 자꾸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는 바다에서 다리를 다친 뒤로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울적한 심정을 담은 「물밀 져 밀려드는 조수」를 그리기도 했다.


1873, Pêcheurs en mer.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바닷가 어부들(Pêcheurs en mer)」, 1873.


1873, Marées montante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밀려드는 조수(Marées montantes)」, 1873.


베르트는 파리에서 마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확신이 들자 마네는 자신이 행복한 남자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었다. 대중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 더군다나 그는 부유했으며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마침내 성공한 화가가 된 셈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거의, 그럴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파리로 돌아가면 그가 꿈꾸던 삶을 살아갈 참이다. 전쟁 이후에 다시 시작된 유혹에 몸을 맡기는 자의 퇴폐적 타락에 다시는 물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데 더욱 매진할 작정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제작해야만 했다.


그처럼 덧없는 가운데 계절은 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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