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16화
13장 2
(1873-1874)
마네는 늘 그리던 그림을 다시 손질하면서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고심했다. 새로운 아틀리에에서 대작을 완성하기만을 고대하면서 견유주의자적인 태도로 자신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드가,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스테방, 프랭 등이 자신의 작업을 적극 지지해 주고 옹호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동료들이 마네를 칭찬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긴 하나, 마네를 위해서는 전혀 소용에 닿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마네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날카롭고 예리한 비판이 그 근저에 자리 잡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작업하는 세잔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것에도 쉽사리 만족하는 법이 없는 세잔은 늘 복수심에 이글이글 불타올라 작업을 하면서도 까다로운 두 눈으로 세상을 직시한 채, 절대 부르주아들의 호화롭고도 사치스러운 양탄자에 진흙 묻은 신발로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으려 들었다!
세잔의 경우엔 ‘가난뱅이이면서 부자’였던 그의 내력에 비춰볼 때, 그가 취한 태도가 결코 올바른 것이라고만 볼 수 없는 지나친 허식일 수도 있었다. 졸라는 세잔의 부친을 가리켜 거만한 금융가에다가 반동 보수주의자이면서 정통 가톨릭교도이자 액상 프로방스의 저명인사이기까지 한 인물이라고 몰아세우곤 했다.
마네 주변에 모여 있던 지인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졸라였던지라 세잔을 평한 그의 어조는 세련된 파리지앵의 두 눈에는 촌스럽고도 지방색이 너무나 강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마네는 과연 무얼 즐기려 했던 것일까?
벨로를 주인공으로 그린 「맛 좋은 맥주」의 대성공은 「올랭피아」에게 가해진 온갖 가당치도 않은 스캔들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맛 좋은 맥주」는 회화 예술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충격적인 사건으로 회자되었다! 마네만의 네덜란드를 코로 냄새 맡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셈이다!
마네에게 호의적인 비평가는 “친구 벨로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봐서 마네 역시 행복하게 작업에 임했을 것”이라고까지 평했다. 급진적인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덕분에 마네는 예술을 통한 사회 참여라는 대 명제를 실천하는 일관성마저 갖출 수 있었다!
과연 감베타는 마네가 그릴 인물화를 위해 포즈를 취할 것을 순순히 수락했을까? 마네는 자신의 눈에 비친 정치적 인물가운데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을 딱 한 사람만 초상화로 그리고자 고심했다.
마네는 감베타에게 제의하기를, 만일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포즈를 취해줄 수 있다면, 그가 그린 그림가운데 어떤 작품이든지 그에게 선물할 용의가 있다고 넌지시 제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감베타는 화가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도와 포즈를 취할 짬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화가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그에 상응할 만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채, 거저 그림이나 얻으려는 생각 또한 없었던 탓으로 마네의 제의를 정중하게 물리쳤다.
이에 마네는 몹시 맘이 상했다. 보불전쟁이 터지고 난 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 마네가 마음속에 고심하던 끝에 어떻게든 완성하고자 구상한 작품이 바로 바람직한 정치인의 초상화였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그리고자 한 그의 발상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생각을 예술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 잘못된 것일까? 마네는 인민 봉기를 부추긴 강력한 투쟁에 고무되어 공화주의적 신념에 차 보수 반동분자들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자신의 태도를 예술로 구현하려 했던 자신의 발상이 온당치 못했음을 순순히 시인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아무 보잘것없음에 실망했던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능을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이 순수한 동기가 어떻게 변화해 간 것일까? 마네는 어떻게든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걸 정당화하는 것 역시 성공할 것이란 믿음 또한 굳건했다.
베르트의 두 눈에 비친 그러한 마네의 태도는 낯설고 수상쩍기만 했다. 마네는 자신에게 그런 순간이 도래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울적한 마음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튼 채 남아있긴 했지만, 그는 다시 삶의 즐거움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마네는 자신이 울적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를 생각해도 부족할 판이었다. 그는 오직 베르트에게 매달렸다. 지칠 줄 모르고 베르트를 그려나갔다. 한편으로 수잔을 그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잔에게 어떤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그림 밖에 없었던 탓도 작용했다.
말 그대로 두 여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결국 그와 같은 태도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정물화도 그렇고, 그렇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또한 그러했고, 어울려 함께 노니는 장면을 담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들도 마찬가지고, 카페를 그린 작품이나 가면무도회장이나 카바레를 묘사한 그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우뚝 일어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