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20화
[대문 사진] 1873년 오페라 하우스 르 플르티에 화재
13장 6
(1873-1874)
작년 10월 28일 오페라 건물이 완전히 전소되는 끔찍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가 일어난 르 플르티에(Le Peletier) 거리에 위치한 오페라 건물은 화재가 나기 전에는 마네가 수십 점에 달하는 스케치를 했던 곳이다. 몇 달에 걸쳐 생각날 때마다 마네는 그곳을 찾곤 했던 것이다. 불빛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무대를 그만의 독특한 각도에서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매년 사육제 때마다 ‘예술가들의 무도회’가 열려 사육제 마지막 날인 참회의 수요일이 속한 광기의 한 주간 동안 파리 명사들까지 끌어들여 공동으로 축제를 벌였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이상한 옷으로 변장하고 마스크를 쓴 채, 부르주아지들과 하층 계급에 속한 이들까지 한데 어울리는 바람에 그들에게 적의를 품고 다가오는 온갖 허섭쓰레기 같은 인간들로 말미암아 전율과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분위기는 달아올라 격렬한 템포를 따라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숨차면서도 유쾌하기까지 했다. 7월부터 시작된 군주 정치는 산하 조직의 모든 정부기관들을 통하여 이 사육제 기간 동안 벌어지는 밤 축제를 심각한 사건으로 간주하였다. 그런 까닭에 수잔은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할 정도로 심한 공포감마저 느꼈다.
광란은 모든 악덕에 물든 행동들을 다 용인해 주는 법이다. “사육제에서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되었다.” 매년 되풀이되는 사육제 기간 동안 드가는 오페라에 가서 발레리나들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즐겨했다. 그것도 무대 뒤에 몰래 숨어서 어린 발레리나들이 춤 동작 연습을 반복하는 것을 여러 차례 스케치했다.
드가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진정한 예술을 무대에 구현하는 살아있는 고뇌와 노력의 결집체로 여겨졌다. 오페라 공연장에서 드가는 예술의 진정한 구현을 바라 마지않는 가운데 이를 위한 예술에의 장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싶었으며, 약간은 그걸 즐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모든 게 불탔다. 한 밤 내 모든 게 불타면서 연기로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네는 마침내 「무도회」를 완성했다. 당시 예술적 주제로 가장 시사성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마네는 아틀리에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익살맞은 가장행렬 파티까지 벌였다.
어떻게 그릴 지는 정해졌다. 불 난 오페라에서의 무도회 장면을 담은 그림, 그것도 가장 유명한 오페라 공연장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초안에다가 밑그림까지 마네는 가벼운 동작을 연습하는 어린 여자 무용수들의 춤 동작과 발레리나 복장을 한 여인들을 수없이 스케치했다.
프록코트에 실크해트 모자를 쓴 친구들이 붓질을 할 때마다 차례차례 발레리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그녀들을 집적거리는 등장인물들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기생하여 그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마네는 「튈르리 공원에서의 음악회」와 같은 수법으로 「무도회」를 그리고자 오랜 시간을 고심했다. 수상쩍고 의심스러운 두 인간 집단을 한데 뒤섞어놓은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자 시도한 것이다.
대형 화재는 마네에게 작품을 하루빨리 완성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붓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반은 사육제 분위기를 띠면서 반은 성적 본능에 결합된 서로 희롱이나 일삼는 장면이 한데 어우러져 그것 모두가 하나로 통합된 기류가 작품 안에 조성되었다.
마네는 오직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는 신들린 듯이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작품을 어떡해서든지 미술전람회에 출품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탓이었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에는 보들레르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검은색 복장과 프록코트는 만인은 평등하다는 그들만의 정치적 미(beauté)를 강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표현을 지향하기까지 한 그들만의 시적인 미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오직 장의사 복장을 한 긴 행렬만이 이어진다. 정치판을 매장하기 위한, 사랑마저도 매장하기 위한, 부르주아조차도 매장하기 위한 행렬뿐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매장하는 걸 성대히 축성해 마지않는다.” 이게 바로 마네의 「무도회」가 지닌 의미다.
아틀리에에서는 모두가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고 가장행렬 복장을 한 채, 서로 끌어안고 춤추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샤브리에는 아틀리에 건너편 모니에 가에 살고 있었다. 그는 피아노 위로 올라가서 모두가 자기를 쳐다보란 듯, 벌떡 드러눕기까지 했다. 개인 소장가나 다름없는 알베르 에슈는 어느새 마네와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기요맹과 뒤레는 벽난로 굴뚝에 머리를 처박거나 손으로 굴뚝을 붙잡고 날뛰었다.
그런 소동이 한 바탕 벌어지고 난 뒤에 마네는 아틀리에 바로 옆에 자리한 카페로 속물들을 끌고 가서는 저녁을 함께 들었다. 그들은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떠들면서 노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4번지 아틀리에는 이로써 당시 최첨단 유행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었다. 누구나가 마네의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 마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거기 있는 실크해트 모자를 한 번 써봐요. 내가 당신을 스케치하지 않을 때도 멍하니 앞만 바라보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해봐요. 집에 있다 생각하고 머리를 반듯하게 쳐들어보란 말이오.”
마치 제복을 입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실크해트 모자에 대한 마네의 집착은 그를 늘 흥분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델에게 모자를 씌우면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네는 자신의 모델들 각자의 내밀한 특징들을 간취할 줄 알았기에, 그 특징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게 마네다운 그만의 독특한 재능이었다.
모자는 늘 각자 독특한 인간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고 마네는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것도 검은색이라, 아! 검은색과 비슷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효과가 있다.
화면 구석구석 빠짐없이 마네는 자신의 의도를 교묘하게, 동떨어진 표현으로, 아주 낯설게 묘사해 갔다. 안과 밖 이중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그가 추구하는 진실은 항상 그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오페라에서의 가장무도회」를 통해 온 파리를 불태우듯이 묘사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오페라에서 있었던 대형 화재가 그처럼 그의 그림을 국제적으로 성공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도 전에 마네의 그림은 포레가 6,000프랑에 사들였다. 포레는 이제 마네의 전문 개인 소장가의 자리까지 탐냈다.
“나만 믿으라고. 내 그대들을 위한 밧줄을 단단히 쥐고 있을 테니.” 마네는 자신을 따르는 인상파 화가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하기까지 했다. “드가는 내일이면 내 말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해 보일 것이외다. 그대들 모두가 나와 함께 우리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될 것이외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존재가 어떠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을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