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22화
13장 8
(1873-1874)
비록 마네가 온 마음으로, 온 열정을 다해 소중하게 대했던 친구들인 이들 예술가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할지라도 그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하겠노라 마네 자신이 노상 공언하고 다닌 것 자체가 판단 착오였다.
더군다나 전시장에서 마네는 늘 화가 난 상태였다. 왜냐면 모두가 전시회에 참가한 게 아니라 팡탱과 기유메는 그 자리에 빠져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이후로도 관전에서 주최하는 미술전람회 방침을 따를 생각이었으며, 작품 역시 계속 관전에 출품할 것이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드 니티스나 마네에게 전시회에 꼭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던 아스트뤼크 역시 관전에서 주최하는 미술전람회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브라끄몽조차도 “우리 모두가 인상주의자들이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표명하고 나섰다.
마네는 급기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난 이제 더는 세잔과 같은 인간 말종하고는 상종도 하지 않을 테다.” 울분을 토했다. 세잔이 마네를 기린답시고 마네가 그린 그림에 빗대어 「현대판 올랭피아」라는 제목이 달린 작품을 제작한 탓이었다. 이는 마네보다도 훨씬 더 스스로 자제할 줄 모르는 선천적 기질을 타고 난 세잔이 자신의 성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경우에 해당했다. 더군다나 느닷없이 마네의 작품을 고리타분한 고전주의 작품으로 치부하면서 그보다는 자신의 작품이 훨씬 더 아름다우며 더 뛰어난 작품으로 용인되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되돌아보면 마네가 느낀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같은 일을 당하고 분노심이 치밀어 올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마네는 걷잡을 수 없이 세잔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수없이 되풀이하여 여러 버전으로 재생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였다. 그런데 마네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까지 생각한 것일까? 오히려 모두가 세잔이 마네의 그림을 본떠 그린 것이 장한 일이라고 수군거렸다.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 수는 3,500명에 달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전시회를 위해 지출한 비용을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네 역시 매일 전시장을 찾아 인상파 화가들(Impressionnistes) – 이제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이 생겼다. 처음엔 그들조차도 자조 섞인 어조로 발음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 을 지켜봤다. 전시장에는 그들만의 놀라운 재능이 창조해 낸, 그 무언가가 있었기에 대단하고도 눈부신 성공이 뒤따르는 것 역시 당연했다.
드가, 베르트 모리소, 모네, 르누아르, 휘슬러의 성공은 마네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만 했다. 그들은 친구였으며, 단짝이었던 탓에 그들을 살아있는 예술 정신을 견인한 동시대 작가로 이미 평가하고 있던 참이었다.
피사로는 기대이상으로 선전했다. 마네 또한 피사로의 풍경화 한 점을 구입할 정도였다. 베르트의 작품은 9점이나 팔렸다. 드가는 베르트를 능가했다. 다른 화가들 역시 이제까지 그들을 평가해 오던 것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놀랍고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모두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어떠한 전략도 없었지만, 중도에 전시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전시회가 성공하리라 생각한 그들의 믿음이 정당한 것이었기는 하나, 실제 성공이 뒤따른 건 놀라운 기적에 가까웠다. 마네 역시 그들을 위해 성공만을 바랐다.
마네가 극구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좀 더 힘차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그들은 만장일치로 그들을 이끌 리더로 마네를 선출했다.
리더라는 자리는 정말 어려운 자리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남이 아닌 자신의 소중한 친구들이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일반인들이 그들에게 모욕을 가하고 그들 역시 자신이 당한 중상모략질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화마저 치밀었다. 지극히 하찮은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을 갖고도 사람들은 그들을 비방하고 나섰다.
베르트에 대해, 드가에 대해, 특히 모네와 세잔에 관해서는 완전히 정반대로 떠들어대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힐난하고 나서는 것에 대하여 마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 같아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광란에 사로잡혀 그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선 탓이다.
여론이나 비난이 그저 무지몽매한 인간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네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만적이면서 사납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집요하게 물어뜯고자 덤벼드는 가당치 않은 짓에 불과했지만, 심기가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한 관람객의 면전을 향해 마네는 홧김에 그 같은 말까지 내뱉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마네는 옳고 그름을 떠나 동료들 앞에서 그와 같이 행동한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이 자신의 말에 동감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나서긴 했지만, 그들의 리더로서, 또한 그룹의 수장으로서 지나친 행동을 한 점에 대해서는 진정 유감스러웠다.
동료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네는 베르트 모리소에게 모든 자리를 양보할 마음이었다. 그녀를 쓸쓸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도 관전에 의한 미술전람회에 결코 불만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와 공통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터라 그녀에게 모든 걸 양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모친이나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나 자식인 그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건 물론이고,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도 받고, 화가의 명성을 쌓기만을 바랐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격세유전이긴 했으나, 결국 아버지나 아들이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스스로 야망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