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28화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아흐장퇴유 풍경, 1874.
13장 13
(1873-1874)
공식적으로 베르트 모리소는 자신의 예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비록 에두아르 마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그녀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화가라는 직업을 택한 그녀로서는 예술가로서의 야망 또한 숨기지 않았다. 그 와중에 으젠 마네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나섰다. 그런 으젠을 베르트는 조심스럽게 대했다. 하지만 으젠에게는 오묘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우아한 매력이 넘쳐났다. 으젠 역시 자신의 친형인 에두아르 마네의 그늘 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점이 베르트와 으젠으로 하여금 서로 공감하게 만들었다. 미술전람회야말로 자신과 같은 화가들을 전혀 대우하지 않을 뿐인 단지 ‘그들만의’ 제식의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또한 그러했다.
베르트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으젠 역시 그런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떡해서든지 그녀를 돕기로 결정한 으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진심으로 베르트를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마침내 으젠은 베르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녀가 화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뒷받침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했다.
으젠은 이미 사전에 자신의 형인 에두아르가 온갖 수모를 다 당하는 걸 지켜봤던 터라 예술계가 베르트에게 그리 만만하지 않은 곳이란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여자였다! 베르트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절실하기만 했던 으젠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애썼다. 더하여 으젠을 더욱 조심스럽게 대했다.
두 사람은 속내에 자리한 서로에 대한 감정까지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고자 애썼다. 결혼하기로 작정하면 청혼 같은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하지만 오직 편지로만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여서 그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불길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으젠은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거절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의 편지는 그처럼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베르트는 으젠이 그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예술조차 지켜주고 지지해 줄 것이란 고백에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뜨고 난 뒤부터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그녀에게 청혼한 남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자신이 정말 탁월한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남자는 오직 으젠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한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맹세한 남자 또한 단지 으젠 한 사람뿐이었다.
만일 그녀가 으젠의 청혼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사랑 때문이 아니라 으젠의 선량한 마음씨 때문일 것이다. 으젠의 선량한 마음씨는 그처럼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으젠이야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어떻게 입증한 것일까?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게 아니었다. 다만 으젠의 순수하고도 맑은 영혼에 깊은 감명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녀는 그런 마음을 언니에게까지 고백했다. 그리고 그걸 의심할 사람은 어느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친은 퓌비 드 샤반느가 곧 그녀에게 청혼을 할 것이고 그녀가 그걸 받아들일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으젠을 남편으로 맞아드리려면 일단 그녀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하루빨리 정상화하고 정리할 문제 역시 빨리빨리 정리하고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감정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으젠은 무엇보다도 에두아르에게 대적할 만한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에두아르를 누구보다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까지 지니고 있었다.
마네 집안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베르트는 마네 집안사람들에 대해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의 작품과 그의 명성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꼈을 따름이다. 그리고 두 집안 간의 화목을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으젠이 자상하게도 그녀가 바라는 것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녀에게 애를 갖고 싶다고 절대 요구하지 않을 것도 기대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그녀는 자식들을 낳아 돌보기 위해 중도에 화업을 때려치운 경우를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녀의 언니들도 그러했고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결혼한 여자들이 두문불출하면서 오직 집안일에 매달리는 것에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몹시도 두려워했다. 자신을 위한 길은 단 칼에 내리치듯 오직 유일한 삶밖에는 없었다. 그게 바로 화업에만 전념하는 삶이었다.
이를 이미 그녀보다 앞서 예견하고 준비했다는 듯이 으젠은 그녀에게 작은 크기로 그린 정물화 한 점을 소포로 보냈다. 베르트는 자신과 마네의 이름이 두 개 다 적혀있는 우편봉투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고통이 한시바삐 사라질 수 있도록 곧 약혼을 할 예정이었다.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음을 모두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오직 으젠의 청혼만을 받아들일 것이며, 하지만 모든 건 비밀에 부칠 참이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에두아르에게만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어느 쌀쌀한 봄날 아침, 에두아르가 그녀를 나다르의 전시회에 대동하고 가는 동안 그녀는 마네에게 으젠이 청혼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에 대해서 에두아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오직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베르트는 내친김에 자신의 결혼식 증인이 되어달라고 마네의 심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마네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불끈하더니 몸을 꼿꼿하게 바로 세우면서 완강한 표정을 짓고는 모자를 쥔 손을 바들바들 떠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부탁은 마네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여자 친구의 부탁이었다. 여전히 마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는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약혼식은 일요일 집에서 있을 예정이에요. 확실한 건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당신의 아내, 귀스타브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참석할 거예요.”
마네는 완전히 당나귀 뒷발에 차인 것처럼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욕을 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신만 제외하고 가족 모두가 일이 척척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저며왔다. 아주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나다르의 전시장에 모인 관람객들 틈에 끼어있어서 그들을 피해 어디 다른 곳으로 숨어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베르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뿐사뿐 전시장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덧붙이기를 으젠이 그를 완전히 빼어 닮았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에두아르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단지 그녀가 자신에게 용서를 빌기만을 바랐다. 지나가던 차를 잡아탄 마네는 누벨 아텐느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거나하게 취하려고 작정한 듯 연거푸 독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누벨 아텐느가 마네의 맘에 들었던 건 겨울에도 따뜻한 그만의 앉을자리가 마련된 테라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모델들을 고르는 장이 열렸다. 모델들은 항상 12명이었는데, 샘 가까이에 앉아서 예술가들이 자신들을 고르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베스타 여신을 섬기는 숫처녀 행세를 하는 건 물론이고, 숲의 요정 같은 모습을 한 모델들에다가, 헤라클레스를 에워싼 여신들 차림의 모델들하고 한 번 즐기는데 10프랑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모든 괴로움을 잊으려고 그녀들을 산 적이 결코 없었다.
마네가 「맛 좋은 맥주」를 일러준 덕분에 친구들 또한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존재가 되시오. 그들에게 양식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시오.” 그들의 외침은 마네가 부인해 마지않던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그들과의 줄다리기는 점입가경이 되었다. 그들은 마네더러 자신들과 합류하여 힘을 합치자고 주장했다. 그들 역시 세잔은 좋아하지 않았다. 요컨대 세잔은 마네가 바라는 바처럼 어떡해서든지 공식적으로 인정받고자 애쓸 따름이었다.
베르트가 결혼한다는 소문은 더 이상 결혼에 대해 쑥덕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온 파리에 소문이 쫙 퍼졌다. 확실한 건 점점 계절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네는 그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던 탓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음마저 산란해진 탓에 마음을 진정시킬까 하고 말라르메가 번역한 포우의 시집에 까마귀 삽화를 그려 넣는데 집중했다.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가 주는 유혹에 못 이겨 퇴폐적인 타락에까지 물들어갔다. 『까마귀』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길한 자정에 한 번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 기이하고도 이상한 내용을 담은 책이 나약하고 피곤에 지친 나를 짓눌렀다. 나는 거의 비몽사몽 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 내용에 머리를 끄덕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 침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았으나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
문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자 까마귀 한 마리가 파닥파닥 날지도 않고 [···] 침실 문 위에 여전히 앉은 채로 [···] 나를 쳐다보는 두 눈이 무언가를 원하는 악마의 눈매를 하고 있었다. 까마귀를 비추는 램프 불빛은 검은 새의 깃털을 더욱 번득이게 만들고 바닥에 그림자까지 드리웠다. 이 까마귀의 어렴풋한 형체에 내 영혼이 깃들어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땅바닥에 쓰러지듯 잠들어버리게 만들었다.”
마네가 울적해할 만한 어떤 이유도 없었기는 하나, 그의 영혼이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침울하면서 쓸쓸했던 탓이리라. 사랑스러운 아우는 자신이 선택한 여자와 결혼할 따름이다. 그럼으로써 아무런 부담도 느낄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 이를 것이니 이 어찌 기쁘다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여인은 그가 가장 화폭에 담고 싶어 하던 여인이었다. 가장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여인은 새롭게 회화 예술을 이끌어갈 세대로서 그 첫 번째로 손꼽아야 할 화가이기도 했다. 그런 여인에게 대체 또 뭘 요구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