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깡 바닷가에서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베르트 모리소, 훼깡(Fécamp) 바닷가 백사장, 1874.



13장 15
(1873-1874)



온갖 만물이 번성하는 7월도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마네는 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그림 그리던 일이 떠올라 이번 여름휴가만큼은 훼깡 바닷가에서 지내기로 고집했다. 마네가 훼깡을 떠올린 건 우연에 지나지 않지만,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몰라도 모리소 집안과 마네 집안사람들은 같은 시기에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어찌 됐든 이상야릇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드가 역시 마네 집안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그런 연유로 드가는 으젠을 모델로 하여 멋진 초상화까지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Eugène Manet par Edgar Degas.jpg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으젠 마네(Eugène Manet)의 초상화」, 1874.


초상화는 으젠이 친구의 소중한 아우였던 관계로 결혼식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이다.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오직 그림에만 매달렸다. 드가는 마네를 아직껏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상태였던 지라 그와 부딪힐 일이 전혀 없이 묵묵부답이었다. 그게 마네의 신경을 건드렸는지 그 역시 드가와 아무 말 없이 오직 그림 그리는 데만 매달렸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베르트는 정신적으로 식욕 부진과 함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자 한 의지마저 좌절된 데 따른 우울증까지 겹쳐 의기소침해졌을 뿐만 아니라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정상 상태를 되찾았을 시에는 당연히 가끔씩 그림만 그리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혼자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모친이 서둘러 혼사를 결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까닭이 바로 그런 연유에서 비롯했다. 오라! 마네 집안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베르트는 모든 게 거추장스러웠을 따름이다. 그들의 포용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녀가 문제였다. 모든 걸 다 잊고 싶었던 탓이다. 성공하리란 기대마저 엷어진 탓이기도 했다.


그렇다. 하지만 베르트는 이제 33살의 나이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으젠은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기까지 했다. “난 오직 베르트 당신이 행복하고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오.” 그 말에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결혼을 통하여 베르트는 당당한 사회적 신분을 갖추게 되었다. 베르트 모리소는 마네가 되어갔다. 마네처럼 그녀 또한 세간의 온갖 수치스러운 평판만이 뒤따르는 독신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이 유일하게도 결혼밖에 없다는 걸 절감했다. 그녀는 세인의 따가운 눈길만 받을 뿐인 노처녀라는 딱지를 떼게 해 준 으젠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또한 지체 높은 집 딸의 신변을 보살피는 나이 많은 하녀처럼 아무 때나 불쑥불쑥 모습을 나타내고 온갖 일에 참견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다 못해 아무 일도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모친의 감시 속에서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야만 하는 비참한 삶을 이제야말로 청산하게 만들어준 으젠에게 진정 고마워했다.


그녀는 마침내 모친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로소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으젠은 그녀의 예술활동을 적극 지지해 줄 뿐만 아니라 조력을 다할 것까지 약속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믿었다.


Berthe Morisot, Eugène Manet à l'île de Wight.jpg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 「화이트 섬에서의 으젠 마네(Eugène Manet à l'île de Wight)」,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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