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가 된 베르트 모리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2화

by 오래된 타자기



13장 17
(1873-1874)



베르트는 이제 제수씨로 불릴 판이었다. 그전에 마네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아틀리에로 와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비록 그녀가 상복을 입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할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마네는 단지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표정을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가 그리고 싶어 하는 인물화는 과연 그가 원한 마지막 작품일까?


이 얼마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멋지고 감격스러운 제안인가! 베르트는 마네의 제안에 기꺼이 응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흐뭇한 마음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쓸쓸한 감정마저 끼어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어느 가을날 마네는 드디어 베르트의 초상화를 마지막으로 그리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의 실제 모습을 4분의 3으로 축약한 크기였다.


왜? 무슨 까닭에?


그녀를 단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그의 마음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탓이다.


대체 마네가 스스로 느낀 형벌은 어떤 것일까?


화폭 한가운데 마네는 약혼반지를 낀 손을 그려 넣었다. 마치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댄 모습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은 그녀가 그의 아틀리에에 있다는 것이고, 그 앞에서 그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부채를 들고 있는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 à l'éventail)」, 1874.


마네는 몇 시간씩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틀을 꼬박 숨 쉴 틈 없이 노력한 덕에 베르트의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 하나 놓치지 않고 그림을 완성해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베르트가 요구한 대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베르트는 아주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에다가 치렁치렁한 베일을 뒤집어쓰고 모자까지 쓴 채,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계속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아주 만만하게 본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부러 짐짓 그런 표정을 지은 것 같아 그녀가 추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매번 그녀에게 따귀를 올려 칠 듯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휘두르는 붓질은 석회반죽을 짓이기듯이 거칠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얼굴을 고의적으로 추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일부러 강조하여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리기까지 했다.


그녀의 두 팔에 검은 줄무늬를 입힌 건 또 무슨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일까? 그와 같은 묘사에는 베르트조차 동의하고 나선 듯한 두 사람 간에 그간 있었던 모든 걸 흔적조차 없이 없애버리고 싶은 의도만이 게재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다.


이 마지막 초상화를 완성해 가기 위해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생각이 일치한다는 듯이 그녀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두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까지 하고 있다. 과연 그녀는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냉정한 자세를 취하면서 얌전한 표정을 띨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아름답기만 하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아한 모습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표정에다가 냉기마저 감도는 모습이다. 머리칼을 곤두서게 만드는 조각상 같은 고통일 뿐인 그들의 사랑이 이제야말로 정말 끝났다는 표정.


더군다나 그녀는 이제 제수씨라 불릴 운명이었다. 그 이외에는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었다. 설사 그녀가 으젠과 결혼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를 저버리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했다. 만일 그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저 멀리로 떠나버린다면? 그 또한 늘 그렇듯이 마네는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모든 걸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능력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나를 마담 으젠 마네라고 불러주세요.” 그녀는 에두아르 마네에게 그렇게까지 요구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마네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마네는 마음속 깊이 솟구치는 분노를 도저히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분노에 찬 마음을 스스로 달래보고자 다시 수잔을 모델로 한 그림에 매달렸다. 그림 속의 아내는 자신이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는 아주 추하고 못생긴 용모였다. 그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비좁은 거실에 놓여있는 푸른색 소파에 기대고 포즈를 취한 아내의 모습은 잘못을 저질러 바닷속 용궁에서 쫓겨나 밀물에 쓸려 바닷가에 표류한 바다의 괴물로 묘사되었다. 이 어찌 베르트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아내까지 희생의 제물로 삼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마네가 1874년에 완성한 아내 수잔을 그린 작품. 「파란색 소파에 기대고 포즈를 취한 마네 부인의 인물화」라는 제목이 붙었다.


아직 가을은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베네치아에서 돌아온 뒤로 마네는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치러질 동생의 결혼식이 점점 다가오는 탓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마음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인지조차 전혀 분간하기 어려웠다.


정상적이고 예절 바르며 미소 짓길 좋아하고 매력에 넘치는 자신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갈 순 없었던 것일까? 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한 것일까? 그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서로 우애 있는 형제 사이로만 비치던 두 사람에게는 그처럼 뿌리 깊은 경쟁심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으젠과 결혼하는 것이 금지된 사랑을 위반한 것이라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분명한 건 장남이 훨씬 뛰어나고 훨씬 재능이 많으면서 모든 면에서 훨씬 훌륭할뿐더러 훨씬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장남에게는 모리스 집안 여인네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뚱보 수잔이라 부르는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녀의 비만 때문에 마네가 그녀를 버린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베르트에게는 으젠이 단지 형인 에두아르를 대신하는 존재였을 따름이다.


12월 22일 마침내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다. 늘 그렇듯 아주 못마땅하다는 듯이 마네는 아우를 데리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혼배성사를 집전하는 이는 위렐 신부였다. 당연히 에두아르의 친구는 으젠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위렐 신부의 초상(Portrait de l'Abbé Hurel)」, 1875.


“결혼식은” 다름 아니라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우리의 첫 번째 전시회가 있은 지 꼭 1년이 되는 걸 기념하기” 위한 자리라고 결혼식에 참석한 예술가들과 동료들 앞에서 마네는 거드름마저 피웠다. 마네 역시 유복한 두 부르주아지 집안 간에 결속을 이룬 것은 다 자신 덕에 그렇게 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말까지 지껄여댔다. 더군다나 으젠을 향하여 너 자신의 꼬락서니를 쳐다보라고 말하기까지 한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탓에 모두들 어처구니없는 표정만 지었다.


과연 부친이 세상을 뜨지 않았어도 베르트는 결혼하려고 작정하였을까? 나이가 찰대로 차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삶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탓에 결혼에 이른 것이다. 그녀 주변에서 으젠을 추천한 것이고 결혼식까지 치르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예술가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아니다. 꼭 방을 함께 쓰는 것을 넘어선 것만이 그녀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으젠은 그녀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와 같은 존재였다. 으젠은 부유하고, 독신이며, 예술가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더군다나 미칠 듯이 그녀에게 빠져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알맞은 배필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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