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3화
[대문 사진] 베르트 모리소, 자화상
13장 18
(1873-1874)
과부인 모리소 부인은 성격이 불 같은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위가 될 사내는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하는 일없이 하루 종일 빈둥대기 일쑤였고, 아무런 야망도 없을뿐더러 가족을 위한 확고한 신념조차 없었다. 모친인 그녀가 우려했던 건 다름 아니라 자신의 딸이 자기처럼 너무 일찍 과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부친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뜬 것에 대해 의혹을 접지 않았기에 이 묵직한 중형 기관차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것은 매독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모두가 늘 완곡어법으로 말을 돌려 이야기하곤 했다.
결혼한 으젠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나이 41살이었다. 그녀는 34살이었다. 으젠은 에두아르를 빼다 닮았다. 에두아르가 우아함이나 교육이나 예의범절 등으로 몸에 밴 태도였지만, 그걸 제외하곤 넥타이를 매는 법도 없고, 끝이 뾰족한 기다란 장화 같은 구두를 신지 않는 것만 제외한다면, 에두아르를 완전히 빼닮은 모습이었다.
반쯤 기른 희끗희끗한 잿빛이 드러난 금발에다가 제2제정 하에서 유행을 탄 턱수염, 같은 취향에 똑같이 맑은 눈동자, 장남보다 훨씬 익살맞기는 하지만 막내처럼 장난치길 좋아하는 말버릇에다가 키가 크고 날씬하면서도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성격이 급한 모습이 에두아르와 똑같았다.
에두아르와 여러 면에서 닮았지만 형보다는 훨씬 경솔하고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림을 약간 그릴 줄 알았으나 그저 심심파적에 지나지 않았다. 도락 삼아 사회과학 저서들을 탐독했던 탓에 귀스타브처럼 공공을 위한 일들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다.
으젠은 책을 저술해 가면서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베르트는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으젠의 그 같은 모습을 그의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나이가 차면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부친이 세상을 뜬 지도 어언 11개월째 되어가는 중에 치러진 결혼식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석하게 만든 어떠한 사건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치러졌다. 파리 16구 구청에서 결혼반지를 주고받으면서 혼인서약을 한 두 사람은 파시에 자리한 은총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행해진 성대한 혼배성사를 통해 부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성당은 그들이 신자로 있는 본당 천주교회였다.
두 사람은 결혼식 복장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어디에서 대접한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결혼을 축하하는 칵테일 파티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결혼한 두 사람은 심지어 그들의 결혼식을 빛내줄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 관계로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카페로 들이닥쳐서는 두 사람이 참석조차 않은 상황에서 절대 두 사람의 행복을 비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들끼리만 축배를 들었다.
마네는 문득 자신의 비참하고도 초라할 뿐이던 결혼식을 떠올렸다. 아내는 절대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속죄한 적이 없었다.
베르트와 으젠의 혼배성사에는 오직 지인들인 모네, 르누아르, 드가, 퓌비, 프랭만이 참석했다. 베르트의 첫 번째 약혼자였던 쥘 페리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그들과 대립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럴 수도 있었다. 결혼하는 두 사람의 증인으로는 마네가 아우 으젠의 증인이 되었고, 베르트의 증인으로는 마네하고 사돈 간이면서 베르트에겐 형부가 되는 퐁티용이 증인으로 나섰다.
베르트가 결혼하자 선물로 그녀의 모친은 기샤흐 가에 있는 아파트를 새로 결혼한 딸에게 내주었다. 모친은 이미 시집간 두 딸 집을 쉽게 오갈 수 있는 깡브래에 살고자 원래 살던 아파트를 떠났다. 그럼으로써 남동생인 티뷔흐스가 독신 남자들의 집합소로 만들어놓은 가족들이 살던 집은 갑자기 베르트의 아틀리에 겸 으젠의 살림집으로 바뀌었다.
한 집에서 두 사람은 서로 함께 그리고 서로 떨어져서 생활했다. 베르트는 처녀 때 쓰던 침실과 그녀의 아틀리에를 고집했고, 으젠은 그녀를 보살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에 흐뭇해했다.
에두아르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의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으젠의 결혼을 반대해 온 에두아르의 독살스러움은 끝내 두 남녀의 결합이 잘못되었다고 모친을 설득하는 데에까지 치달았다.
모친인 으제니는 둘째 아들인 으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것처럼 온갖 추측을 하는데 골몰했을 뿐만 아니라 큰 며느리인 수잔에게 들러붙어 새 며느리를 욕하기 시작했다.
모친이 새로 얻은 둘째 며느리인 베르트를 탓한 건 다름 아니라 그녀가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고집할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인 자신이 기대하는 바와는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일삼으며, 심지어 수잔이 지켜본 것처럼 돈을 물 쓰듯 쓰는 버릇을 전혀 고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게다가 베르트는 오직 ‘작업’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그녀 자신과 관계되지 않은 일은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비쳤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자식에게 집안일까지 시켰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들의 결혼은 그 이상 어떤 이유도 없었다고 모친은 판단했다. 아들의 결혼생활을 몇 달간 지켜보면서 으제니가 내린 판단이었다.
베르트는 수잔에 대해 엄청난 질투심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녀를 미워하는 감정이 새롭게 용솟음치면서 그녀에 대한 적개심마저 들었다.
그런 와중에 베르트는 날씨 좋을 때마다 쥬느빌리에에서 동료 화가 집단에 끼어들어 그림 그리고자 한 생각을 단념하거나 그만두려는 마음조차 없었다. 그녀는 언제고 마네의 집을 드나들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집은 그녀의 것이기도 했다. 무슨 연유로 그 집을 그녀 맘대로 이용하면 안 되는가? 결혼한 탓에 그녀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었다. 지난해에 자신의 지인들이기도 한 화가들이 강가에 서로 붙어 앉아 걸작들을 완성해 나간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은 베르트는 그녀 역시 걸작을 완성하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주말이 시작되면 간혹 가다가 다행히 모네와 르누아르 그리고 까유보트 곁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을 뿐 아니라 그들만의 첫 번째 전시회 때 함께 했던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서 웃고 떠들며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시 금전적인 병이 도지고 있었다. 실질적인 후원자나 작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금전적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형편이었다. 바로 그와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이가 에두아르 마네였다.
베르트는 남편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시어머니가 둘째 아들인 남편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이 떠졌다. 더하여 자신을 집안에 모래알처럼 날아든 무단 침입자로 여긴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친정어머니가 그녀에게 쓴 편지는 그러한 정황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도 남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려무나. 네 시어머니가 자진해서 기꺼이 수잔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말이다. 오늘날 수잔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살펴봐야 한다. 네 남편이 그녀를 확실하게 눌러버릴 때까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넌 말할 필요 없이 수잔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세상에 그렇게 뚱뚱한 여자는 없을 것이니 그 여자는 아예 생각지도 말거라.”
형제들 간에 난생처음으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가 완전히 절연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에두아르와 으젠은 서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전혀 모르는 채였다.
시간이 도와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베르트는 오직 자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남자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남편만이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자신의 작품을 위해 애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뛰어난 예술가로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가 화가인 자신의 형이 처했던 어려웠던 상황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세상 살아가는 법은 물론이고, 미술 시장에 어떻게 하면 잘 대처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에 베르트에게는 여러모로 남편이 도움이 되었다.
에두아르는 더 이상 그녀를 화폭에 담지 않았다. 그녀를 그리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슬퍼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말라르메와 드가는 베르트의 미모와 재능과 함께 그녀가 지닌 장점까지 극구 칭송하고 들었다. 아무리 그것을 무시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에게 감동하고 있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이었다. 마네에게는 그들을 제지할 권리마저 없었다.
결혼한 베르트는 자신의 집으로 친구들을 거리낌 없이 불러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이 그녀의 친구가 되고자 얼쩡거렸다. 그녀를 위한 날이 너무도 일찍 도래한 탓에 그녀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의 집 거실은 아주 독특한 열기로 달구어져만 갔다.
드가와 말라르메는 처음부터 드나들던 거의 가족과 같은 지인들이었고, 파리로 이사 오자마자 모네와 르누아르가 그녀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예술계에마저 번져있는 사교적 모임을 극도로 혐오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베르트의 살롱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아주 심플하면서 우정 어린 모임을 주도해 나갔다.
에두아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온 파리에 아우의 아내 되는 여자 이름이 소문의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풀대고 있었던 탓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또 다른 것이 그를 괴롭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이번에는 그마저 어이가 없어서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모두들 입을 모아 칭송하는 여자가 다름 아닌 베르트 모리소 마네(Berthe Morisot-Manet)라는 여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