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7화
[대문 사진] 마네의 알렌 앙드레 초상화. [1]
14장 4
(1875-1876)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르트-으젠 마네 부부가 여름휴가 중 얼마간을 런던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리에서 어설프게 그림이나 그리던 환쟁이였던 제임스 티소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티소는 망슈 해협 저 너머로 건너가더니 얼마 안 있어 상당히 부유해지고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티소가 으젠에게 제발 에두아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던 참이었다. 부탁의 골자는 지난해 베네치아에서 자신이 말 못 할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두아르 마네 부부와 함께 했던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마네는 파리에서 다시 말라르메와 함께 행복한 시간들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니나 역시 다시 만났다. 너무도 소중한 우정이 세 사람을 이어주었다. 마네는 말레르메와의 우정을 증명해 준 것이 말라르메가 번역한 포우의 시집에 실은 목판화였음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흐장퇴유」의 찬란한 태양에 숨을 곳을 찾던 마네는 까마귀의 어둠 속으로 하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연에 에칭을 한 뒤, 판형에 잉크를 묻혀 판화로 제작하는 일에 마네는 점점 매력을 느껴갔다. 시인이 노래한 판타지를 이미지로 옮기는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작업에 심취한 마네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말라르메가 펴낼 시집 『목신의 오후(Après-midi d’un faune)』에 실을 삽화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인이 고른 삽화가가 다름 아닌 마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출판사 사장이 삽화가 게재된 시집 발행을 철회하는 바람에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더군다나 출판사 사장은 그들이 날 수 없도록 두 팔, 두 날개마저 부러뜨려놓고 말았다. 말라르메는 다른 출판사 사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다음 해에 가서나 겨우 시집을 출판할 수 있었다.
이는 오로지 자신의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인 화가의 재능을 높이 사 그의 지적인 작업에 따른 작품을 기꺼이 자신의 시집에 싣고자 한 노력의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시집을 간행한 편집자는 마네에게 늘 따라다니는 좋지 않은 평판을 적잖이 걱정하였던 셈이다!
온갖 추문은 정녕 끝나지 않을 일이기만 한 것인가? 그렇듯 마네의 이름은 늘 성난 불길 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게르부와 멤버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다 부질없는 짓같이 만 여겨지던 중에 종적을 감췄던 데부탱이 어느 날 카페에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데부탱은 게르부와 모임의 한 축을 이루던 인물이었다. 드가는 삐걀에 자리를 잡았다. 르누아르 또한 삐걀에 안착했다. 그들은 팔랑스테르가 주창한 집단 공동체 생활을 위한 작은 규모의 숙사에다가 프로쇼 예술가촌을 건설하였다.
카페 <라 누벨 아텐느>와 <죽은 쥐>는 그들에게 제2의 거처로 자리 잡았다. 마네는 어김없이 17시 30분이 되면 나타났다. 이후로는 햇빛이 사라지는 관계로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탓이었다. 여름도 마찬가지로 그 시각이 되면,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마네는 걸어서 이동하거나 삯마차를 이용했다. 카페에서 마네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은 약간만 마신 채,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익살맞게 이야기를 이끌어갔을 뿐만 아니라 그 역시도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해 갔다.
오랜 기간 동안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얼굴을 디민 데부탱은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쬐겠다고 이탈리아로 갔다가 부모로부터 약간 물려받은 유산마저 다 탕진한 채, 알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파탄 난 몰골을 한 데부탱은 음울한 안개가 그리워 파리로 돌아왔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실상은 친구들과의 우정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카페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로슈포르하고 먼 사촌 간이었던 데부탱은 꾸뛰흐 화실을 드나들던 옛 동료이자 화가이면서 시인이었다. 누추한 집에서 살면서 납 공장 한 귀퉁이에 작업실을 구해 거기에서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담 거리였다. 하지만 자부심이 강하면서 모든 걸 초월한 듯한 무심한 태도마저 지닌 데부탱은 아직도 옛 영화에 젖어있는 듯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다.
점잖게 이어가는 데부탱의 이야기에 빨려 들면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처럼 데부탱은 문화 전반에 대한 고상한 식견마저 갖추고 있었다. 마치 열병식을 하듯, 매일 저녁 이어지는 라 누벨 아텐느에서의 모임에 데부탱은 빠짐없이 얼굴을 디밀었다. 카페 벽에다 여러 개의 담배 파이프를 걸어두고는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돌아가면서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데부탱의 두 눈에는 마네야말로 화가들 가운데 화가였다! 우정조차도 그의 부재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데부탱은 그 해 겨울날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마네의 초상을 드라이 포인트 조각칼로 새겼다. 완성된 판화 작품은 따뜻한 우정의 선물로 친구이자 동료인 마네에게 건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거의 붙어살다시피 지냈다. 또한 의외의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난 이 시기에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어떤 포부나 야망도 없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놀라운 그림을 도저히 불가능할 뿐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곳에서 완성했다.” 벨라스케즈와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드가가 표명했을 정도다. 드가 역시 「데부탱」의 인물화를 이 시기에 제작했다.
로마 가에 있는 마네의 절친한 친구가 된 개인 소장가 알프레드 에슈 집 정원에 가느다란 햇살이 퍼져가는 순간 마네는 혼자서 아주 색다른 인상적인 장면을 화폭에 담아 갔다. 마네는 「빨래」를 널고 있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이제껏 그린 그림가운데 가장 밝은 그림이었다.
빨래를 널고 있는 여자는 스테방의 단골 모델인 알리스 르구베였고 아이는 아파트 건물 관리인의 자식이었다. 오라! 그들이 「아흐장퇴유」에 대해서는 증오마저 섞인 비난을 퍼부어댔지만, 이 「빨래」만큼은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 틀림없었다!
마네의 그림에 깜짝 놀란 으젠은 바로 베르트에게 전갈을 보냈다. “방금 형의 아틀리에에 들렀는데, 형이 야외에서 그린 밝고 환한 그림들이 샘이 났는지, 홧김에 그와 같이 그린 그림 한 점을 보았소. 검은 물방울이 튀긴 것에 지나지 않긴 했지만. 아마도 터너가 형 꿈속에 나타났던 모양이오.” 몇 주가 지난 다음에 이번에는 베르트가 시아주버니의 아틀리에를 찾아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마치 모네처럼 그렸다고 평했다.
대체 뭘 그리려 했던 거야? 그림 그리는 동안 넘치는 모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모양이네!
화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조차 없는 가운데 겨울이 닥쳐왔다. 마네가 잘 쓰는 표현이 “악마야 악마!”였다. 아무 때나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긴 했지만, 불평이나 불만을 쏟아놓을 때 마네가 자주 쓰는 표현이었다. 수잔은 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는 마네를 위로하거나 돌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
마치 성게처럼 마네는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를 찌를 듯이 덤벼들었다.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레옹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도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두 사람이 너무도 사랑한 도시인 파리 거리를 걸을 때마저도 서로 거리를 띄운 채, 아무 말없이 각자 한 방향만을 주시하면서 걸어갔다.
[1] 연극배우였던 알렌 앙드레(Ellen Andrée)는 생애 처음으로 마네의 그림 속 모델이 되어 유명해진 덕에 계속 마네의 여러 그림 속 모델이 된 것은 물론,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남편 에두아르 조셉 당탕(Édouard Joseph Dantan)을 만난 것도 마네의 모델이 된 덕분이었다.
[2] 왼쪽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가 그린 「질베르 마흐슬랭 데부탱의 인물화, 또는 예술가(Portrait de Gilbert Marcellin Desboutin, ou L'Artiste)」(1875)이며, 오른쪽 그림은 에드가 드가(Edgar Degas)가 그린 「구석진 테이블(Un coin de table)」(1876)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는 드가의 그림 속 여인은 배우인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다.
처음 마네의 모델이 되어 마네의 그림 속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연극배우였던 엘렌 앙드레는 마네로 하여금 자신의 알몸을 노골적으로 그리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던 고집스런 여인으로 유명하다. 아래의 그림은 남편이자 화가인 에두아르 조셉 당탕이 그녀를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