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8화
14장 5
(1875-1876)
다시 인상주의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이를 옹호하기 위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서 마네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바지유가 말한 것처럼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예술 운동(Quattrocento)을 치마부에나 지오또가 이끌었듯이 자네가 우리 모두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아스트뤼크는 바지유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마네더러 다시 그들과 연합하여 힘을 합치자고 애원했다. 모두가 마네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난 관전이 주최하는 미술전람회 문을 당당히 열어젖히고 입성할 거란 말일세. 바지유가 한 말은 그냥 잊어버리시게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사들이던 뒤랑 휘엘이 화가들에게 자신이 파산했다는 전갈을 띄우자 바티뇰 화가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이제는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는 세기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그들 살아생전에 처음으로 겪는 추위였다. 사실이었다. 세느 강마저 얼어붙었다.
피사로는 한기만이 감도는 집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자식들을 위하여 집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려고 그리다 만 그림들을 벽난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여기저기서 춥고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는 그들에게까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절박감과 함께 그들 역시 고립되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 운이 따라준 사람이 없었다. 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사들이던 뒤랑 휘엘조차도 그들에게 자신의 수중에 있던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바람에 파산하고 말았다.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없었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 받을 곳도 없었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모네는 유복한 미술애호가 꽁무니라도 쫓아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어디서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업자들마저도 겨울에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법이다. 자신의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마네를 다시 붙들고 늘어지는 도리밖에는 달리 할 방법이 없다고 모네는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하루 종일 마네를 붙잡고 모네는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경매장에 내다 파는 수밖에 없었다. 베르트와 으젠은 최초로 인상파 작품을 경매에 부쳐 판매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만 생긴다면야 어떤 소문이 나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허! 참나! 그건 아니었다. 이를 비난하는 온갖 소동과 소란한 틈에 헐값에 처분한 그림이 자그마치 70여 점이나 되었다. 작품 평균 가격이 고작 170프랑에 불과했다. 마네가 비참한 지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일으킨 인상파 화가들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열풍이 폭발적으로 분 탓이었다. 인상파 작가들이 궤주를 이탈하고 그들의 작품 또한 파탄지경에 이른 것은 일반 대중의 눈높이도 한몫했다!
그들은 새로운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후원자를 물색했다. 까유보트는 뒤랑 휘엘 대신에 재정적 지원을 해줄 다른 후원자를 찾아야만 했다. 예전에 오페라가 있던 르 플르티에 가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공짜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전시를 받아줄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다. 그런 사정을 볼프에게까지 털어놓았다.
“불행하게도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네! 한 여자에 빠진 대여섯 명의 미치광이들이 서로 여자를 차지하려고 발광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네. […] 심지어는 그녀를 화폭에 담겠다고, 그림으로까지 그리겠다고 난리를 쳤다네. 여기저기 물감을 발라대고 심지어 서명까지 덧붙이고는…….”
처음 개최된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한 많은 예술가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브라끄몽, 드 니티스, 아스트뤼크, 심지어는 성미가 까다로운 데다가 누구 있으나 없으나 투덜거리길 좋아하는 세잔에 이르기까지 평판이 나빠져 관전에서 개최하는 미술전람회에서 낙선할까 봐 조바심을 쳤다. 이 새롭게 화가 집단에 끼어든 젊은 까유보트는 그들의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될 행운을 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절대 놓지 않았다.
전시 개막식 날 모두 16점의 작품을 내건 베르트 모리소가 모습을 나타내자 마네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의 그림들에는 그처럼 불 같이 타오르던 옛사랑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그녀의 그림들은 한결 나아졌다. 진일보한 솜씨였다. 그렇다면 결혼생활은? 행복할까?
모네는 인상주의 화풍에 물과 그만의 다채로운 광채의 어른거림을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뒤를 이어 르누아르는 꽉 막혀있는 화풍에 역시 다채로운 리듬을 부여했다. 드가는 작품에서 보듯 탄탄한 갑옷을 두른 듯이 근본적으로 인상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나,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공식적으로 그들과 절연을 선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잔은 그 해에 단 한 점도 출품하지 않았지만, 그만의 날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그곳에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마네는 흥분하여 노발대발하기까지 했다. 그놈의 아둔한 심사위원들이 그들을 거부하는 바람에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모두가 관전이 주최하는 미술전람회에 당당히 입성하여 붉은 카펫을 밟고 들어서야 할 차례가 되었다.
마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의 모티프가 변화해 가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림의 주제가 될 만한 사물이나 대상은 천천히 소리 없이 변모해 갔다.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서, 인물에서, 풍경에서 그와 같은 시간의 경과를 읽기를 희망했다. 이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한 화가가 모네였다.
모네는 관람자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정확한 시간까지 읽을 수 있기를 의도한 화가였다. 게다가 그의 집요하고도 철저한 시간에 대한 고집스러움은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런 데에까지 신경 써야만 하나 하는 아주 성가실 뿐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모네는 하루 동안 각 시간대에 지켜본 대성당을 화폭에 담고자 시도했다. 그것도 밤까지! 사계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마네가 시간의 경과에 의문을 품은 이유는 시간의 경과란 그처럼 전혀 인상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그린 그림이긴 하지만, 서로 엇비슷해 보일 뿐만 아니라 단지 기교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네의 의문은 더욱 심화되었다. 더군다나 기교는 마네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난 시인들인 상징주의자들과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
현대적인 주제들을 추구하면서 마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조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림을 망치고 마는 화가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 아니라 중간 톤의 색조 같은 건 아예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화가 역시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미 졸라는 리얼리즘이란 개념에 입각하여 조직한 문학 예술가 모임에 마네를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던 터였다.
게다가 말라르메는 마네가 너무도 탁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마네가 그런 화가이든, 아니든 간에 마네는 늘 사람들의 뇌리 속에 인상파 화가들의 리더로 인식되었다. 이제부터는 그들이 목소리 높여 자신들을 표명하지 않아도 그들 모두에게는 인상(impression)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또한 그들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마네는 스스로 당당하게 고전적인 방식 역시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네는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자 하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점에서 세잔은 마네 때문에 노발대발 펄쩍 뛰기까지 했다.
“나야말로 부르주아인 마네와는 달리 현대적인 작품들을 전시했던 사람이다! 나야말로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 즉 쿠르베나 마네나 모네나 드가 역시 나처럼 느끼고 본 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용기가 없다. 그들은 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한 작품이나 그리는 화가들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과는 다르게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
마네가 줄곧 미술전람회에서 낙선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품을 출품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아닌가? 마네를 인기나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누가 더 위험을 감수했다는 이야기인가? 마네야말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 걸 스스로 자제했던 사람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잔은 이리저리 양쪽을 다 오가던 사람이 아니던가?
“좀 더 숙고해 보면 유파가 결성되었을 때부터 너 혼자만이 정치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프루스트가 마네에게 속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모네는 아니라고 봐. 그 친구는 정치 같은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드가도 마찬가지야. 그 친구는 보수주의자이잖아. 솔직히 말해서 드가한테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세잔은 자칭 무정부주의자일 뿐이야. 그 어느 누구도 너처럼 용기를 갖고 진정 참여작품을 제작하려 한 화가는 없었어. 네가 그린 「바리케이드」나 「막시밀리언」처럼 말이야. 오직 피사로만이 자신의 삶에서 이상을 실천해 가듯,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야. 피사로는 항상 진지하고 성실하면서 정직한 사람이지. 자네는 가끔 그 친구를 만나곤 하지 않나? 하지만 자네가 계속 미술전람회에 입성하려는 전략을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한바탕 전쟁을 치를 용기조차 자네에게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것밖에는 안돼.”
“자네가 알고 있듯이 과격분자로 간주되는 것에 절망할 뿐이네.”
친구들은 마네가 빠졌음에도 전시회를 강행했다. 분명한 건 마네 스스로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네는 나름 고통스러웠다. 그들만의 모임은 올해만큼은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으리란 거창한 구호를 외칠 판이었다. 이건 드가의 발상이었다. 비록 마네가 대단히 혁신적인 화가임이 틀림없다 할지라도 그의 됨됨이가 인상파 화가와는 무관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드가가 착안해 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