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를 대중에게 공개하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0화

by 오래된 타자기



14장 7
(1875-1876)



그야말로 미술전람회에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마네는 돌연 자신의 아틀리에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품었다. 과연 소문을 통해 너무도 잘 알려진 자신의 낙선작들을 일반 대중은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나 마네의 아틀리에에서 일반 대중 모임을 갖는 것조차 경찰청 신고 대상이었고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경찰청은 즉답을 회피하면서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허가한다고 뒤늦게 통보했다.


온갖 어려움 끝에 앙토냉 프루스트의 도움을 받아 4월 15일 오전 10시에 생 페테르스부르 가 4번지 중이층 건물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고 17시까지 일반 관람객을 받았다. 전시기간은 5월 15일까지 한 달 간이었다. 전시기간은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인상파 전시회와 정확히 겹치게 되었다! 경찰청은 마네가 인상파 전시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기간마저 서로 겹치게 조정한 탓이다.


전람회 개최 전날 모두가 니나의 집 거실을 분주하게 오갔다. 새로운 일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자리하자 본격적으로 초청자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각자 자기편에 속하는 이들에게 개별 통지하고 그들과 관계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까지 초청하자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들에게 일약 유명세를 탄 마네의 소굴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무료 입장권을 발부하는 방안이었다. 이를 위해 악마의 소굴을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에 해당하는 초대장을 초청자 모두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초대장에 인쇄된 문구는 가장자리에 금박을 입혀 돋을새김을 한 두루마리 띠 장식을 곁들여 3단계에 걸쳐 인쇄했다. 철자 자체도 정교하게 금박으로 인쇄했다. 문구는 “솔직하게 바라볼 것, 맘대로 떠들 것.” 확실히 급조한 익살스러운 문구임에는 틀림없었다.


15일 밤 누벨 아텐느에 드나드는 그림쟁이들이 창문아래 커다란 천을 펼쳐놓았다. 천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관전 심사위원회를 척결하자!



마네는 전시회 홍보를 위해 떠들썩하게 광고까지 할 의향은 없었다. 하지만 일일이 어떻게 이를 다 알린단 말인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작업에 임해왔으며,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이야말로 그 결과임을 방증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낙선작 2점만 전시한다고 초청장에서 밝혔다.


마네의 아틀리에에는 정말 단 2점밖에 전시하지 않았을까? 낙선작 2점은 따로 한쪽 금줄을 쳐놓은 곳에 전시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낙선작이란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눈에 띄게 전시하였을 뿐이지, 공식적 논평과는 달리 온 사방의 벽에 다른 작품들을 빼곡히 걸어놓았다. 마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작품들을 여기저기서 그러모아 한데 전시한 듯한 분위기였다.


오라!


바로 그런 수법이었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네의 그림들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조처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입과 귀를 통해 전해지자 언론까지도 들썩였다. 2주 만에 마네의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 숫자가 4천 명을 넘어섰다.


인근 건물들 입구에서 이를 지켜본 수위들이나 관리인들조차 관람객들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건물 임대차 계약의 관례가 바뀌었다. 아이들이 있어요? 개는요? 피아노는? 잘 나가는 직업을 갖고 계신가요? 마네에게는 또 다른 계약 조항이 더해졌다. “당신은 방 안에다 작품을 전시할 작정입니까?” 말 그대로 화가들에게는 세놓지 않겠다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입 소문을 통해 알려진 2점의 낙선작들은 마침내 마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독특한 예술적 취향을 지닌 자들을 비롯하여 중산층 부르주아들은 물론, 예술 애호가들, 개인 소장가들, 그 밖의 예술가들을 몰려들게 만들었다.


마네는 졸지에 자신에게 낙선 딱지를 붙인 관전 심사위원회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는 심중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까지 털어놓았다. “빈사 상태에 처한 (심사위원회)에게서 뭘 기대한단 말인가? 지들 멋대로 심사하던 위원회가 드디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그림을 다른 자리로 계속 옮겨 전시해야만 할 정도로 짓궂게도 군중들은 낙선작들 앞으로만 몰려들었다. 마네는 「기타 치는 소녀」를 비롯하여 「발코니」, 「올랭피아」, 「롱샹 경마장 마상 시합」, 「음악 수업」, 「아흐장퇴유」 등 다른 작품들도 전시했다.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날이 갈수록 여기에 또 다른 작품들도 더해갔다.


왼쪽부터 「기타 치는 소녀」, 「음악 수업」, 「발코니」, 「롱샹 경마장 마상 시합」, 「아흐장퇴유」 그리고 「올랭피아」.


작품들을 교체해 가면서 관객이 어떤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테스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관람객들이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빨래」에 대한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샤리바리>의 르 화(Le Roy)는 비난조의 작품평을 쏟아냈다. 마네가 인상파 화가들의 대부임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올랭피아」와 같은 작품에서 회화적 광기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마네가 미술전람회에서 낙선한 이유는 그의 그림들이 단지 스케치한 작품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작품을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반대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날이 갈수록 관중이 모여들자 파리 시를 관할하는 세느 도 경찰당국은 4번지 건물 앞으로 병력을 급파했다. 무슨 소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4번지 건물은 작은 루브르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더군다나 금줄이 처져있는 낙선작들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파리 언론들과 지방 언론들 모두가 한결같이 리포터를 급파했다. 이제까지 대체적으로 악평에 시달리던 작품들조차 관객의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지면서 저널은 연일 이들 작품들에게 쏟아지는 호평을 취재하느라 눈코 뜰 겨를이 없었다. “이를 혁명이 아니고 뭐라 해야 하는가?”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기사까지 실렸다. “정당하게도 프랑스 대혁명의 혈통을 이어받은 족속답게 교육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수염을 깎지 않은 용모와 진창에 더럽혀진 구두를 혐오하듯이 용모를 단정하고도 말끔하게 가꾼 고매한 인물은 마치 로베스피에르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처럼 대단히 품격을 갖췄으면서도 부유하기까지 했다.”


관람객이 마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라 그를 스쳐 지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완전히 허를 찌른 듯한 역설적인 전시회를 개최한 덕분에 마네는 또한 역설적인 반응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마감할 수 있었다. 리얼리즘을 주창한 세련된 멋쟁이 댄디이자, 인상파 화가들을 대변하는 음유시인과 같은 존재였지만, 누구나가 그렇듯이 그 역시 부르주아 시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는 부르주아를 척결해야만 하고 부르주아 역시 예술가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걸핏하면 물고 늘어지는 비난들은 오직 마네의 작품들을 향한 것이었다. 마네와 그가 속한 화가 그룹을 서로 혼동하면서 비난을 쏟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었다.


“자넨 우리와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 더 나았네. 그랬다면 자네에게 악착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 말일세. 자네에게 쏟아진 비난들은 결코 자네를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일세. 더군다나 그리 했다면 자넨 따뜻한 우정을 우리와 나눌 수도 있었어.”


드가가 아주 자상하게 마네를 격려하고 나섰다. “문제는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두 번째 인상파 전시회가 완전히 좌초하는 건 면했다는 점일세.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증오심을 품고 헐뜯는 이들도 많아지는 법이지.”


오직 공식전인 관문을 통과하고자 한 의도에서 미술전람회에만 작품을 내걸고자 악착스레 덤벼든 마네로서는 작품을 어떻게 정의할지, 또한 어떤 작품을 계속 그려야 할지에 대한 의구심만 들었다. 명백하게도 「올랭피아」나 「뱃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이에 부합해 보이질 않았다! 어느 날 이들 작품이 프랑스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 있으려면, 어쨌든 아카데미를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이들 작품에 끔찍한 반응만 보였다.


그들이 마네를 거부한 건 마네로 하여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실수였다. 마네를 어떻게든 낙선시키려고 덤벼들었던 한심한 심사위원들은 그들로서도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일종의 시위 같은 움직임을 마네가 시도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공모하여 온갖 저주와 증오를 퍼부은 화가가 오직 한 인물뿐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위는 충분히 범죄 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


그 유일한 화가가 마네였다! 마네는 대체 회화란 무엇인가 하는 회화에 대한 근본 개념에 관해서조차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매년 마네가 새로운 작품을 통해 관전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고수하고자 한 토대마저 흔들리고 말았다.


“당신들이 1876년 관전에서 낙선시킨 「예술가」란 작품에서 마네가 묘사한 데부탱의 초상은 실상 미술전람회를 환히 밝혀주는 등대와도 같은 작품이었소이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이 심사위원회를 이끌어가는 당신네들의 이중성을 여실히 폭로한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소이다. 당신들은 마네가 데부탱의 모습을 취했다는 점을 들어 작품을 내팽개치기까지 하였소이다. 게다가 당신들은 작품을 완전히 왜곡하고 말았소이다. 당신들은 마네가 제작한 그림들을 갖고 그를 한낱 어설픈 그림이나 그리는 환쟁이 취급을 하기까지 했소이다. 당신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작자들일 따름이오! 그가 당신들보다 훨씬 탁월하고 훌륭하다는 점을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소이다.” 드가는 흥분했다.


마네는 카페나 주점 또는 선술집들을 어느 누구보다 자주 드나든 덕분에 다른 어느 화가보다도 능숙하게 그와 같은 장소들에 정치적인 의미까지 덧붙여 묘사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드가 역시 「데부탱」을 그렸지만, 그가 늘 데리고 다니는 개를 그려 넣는다는 걸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개는 데부탱을 절대로 떠나지 않고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세포 표면에 붙어 공생하는 원형질의 돌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벼룩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마네가 그린 데부탱 인물화 속의 개(부분).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데부탱이나 마네에게 있어서 개는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를 표징하는 가장 탁월한 상징체계였다. 하지만 드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드가는 모델이 구부정하게 안쪽으로 휜 다리 사이로 개를 숨겨둔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반면에 마네는 서있는 자세의 모델을 화폭에 담았다. 심지어는 부상을 입어 다리가 휜 모습을 솔직하고도 정직한 묘사를 이유로 들어 이를 부각하기까지 했다.


드가는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압생트 술잔을 앞에 두고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틀에 박힌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화면구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네는 진짜 인물화가 무언지를 보여주려는 듯 원형에 입각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드가의 「테이블 한쪽 구석」과 마네가 그린 「데부탱 인물화」.


1876년 마네 자신을 제외한 채, 인상파 화가들만의 전시회가 열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관전에 의한 미술전람회에 그가 그린 「데부탱」이 낙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가는 마네의 그림과 함께 자신의 그림을 나란히 전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드가의 바람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도 했다.


마네는 진짜 데부탱을 좋아했다. 드가가 마지못해 데부탱를 인정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감정 상태가 그림에 고스란히 표현된 건 아닐까? 두 사람이 그린 그림에는 데부탱에 대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감정 상태가 그처럼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드가는 모든 이들을 자신이 기르는 말처럼 묘사했다. 마네는 자신이 화폭에 담은 이들 모두를 진실에 입각해서 애써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마네의 인물화는 당대의 적나라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서로 친분을 맺고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살아가면서 자유분방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의 보헤미안을 꿈꾸기까지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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