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1화
[대문 사진] 말라르메가 번역한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 안에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말라르메의 초상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14장 8
(1875-1876)
7월 마네는 몽쥬홍에 있는 오슈데 집에서 수잔과 며칠을 지냈다. 말 그대로 베르트와 으젠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이 시기에 마네는 몇 가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중도에 포기하고 만 오슈데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딸 인물화를 제작하고자 다시 계획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대로 말미암아 활력이 넘쳤던 것과는 달리 인물화 제작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마네는 다시 이웃사촌을 화폭에 담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자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마네 자신도 놀랐다. 이웃사촌인 카롤루스 뒤랑은 그 자신이 자초한 중상모략 질 때문에 마네하고 소원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그 둘의 관계마저 변하여 다시 가까워지게 되었다.
세속적 쾌락이나 좇는 활량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지쳐가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한숨 돌리려는 생각조차 전혀 없었다. 쉽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기질 때문에 쉽게 지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탓일까?
이해 여름 마네가 가장 멀리 간 곳이 고작 파리 근교에 위치한 쥬느빌리에였다. 마네 가의 유산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 쥘 드주이는 쥬느빌리에에 있는 마네의 별장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가 원하면 하루든 한 달이든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었다. 그것도 그가 원하는 이들과 함께. 그만큼 집이 넓었다. 어디 멋진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도 싶었으나, 그보다는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게 먼저였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걱정에 불안감만 가중되었다.
영국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던 베르트와 으젠은 휴가를 더 연장했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자 생각했는지 으젠은 모친에게 편지를 띄워 안부를 물으면서 모두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트에 대해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베르트는 오직 언니들과만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결혼한 뒤, 몇 달간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보다도 말수가 적은 과묵하기만 한 으젠과 살다 보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영어로 말하는 것이 서툴러 어느 누구 한 사람 하고도 제대로 대화조차 나눌 수가 없었다.
으젠은 까유보트에게 배운 솜씨로 하루 종일 배를 몬다고 키만 잡고 있었다. 아내가 쓰고 있는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는 바람에 그녀가 잔소리를 늘어놓을 기회마저도 겨우 생겼다. 거센 바람을 맞았다! 머리카락이 다 헝클어진 채, 엉켜 붙을 정도였다!
결혼 초기는 정말 힘들었다. 나이가 꽉 차 결혼한 두 성인남녀가 서로에 대한 아무런 열정도 없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탓에 겨우 어찌어찌하여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가 닥쳐올 뿐이었다.
무엇을 해보고자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가운데 하는 일 없이 에두아르는 바닷가 훼깡에서 며칠을 보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느낌만 들었다. 바다도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마법에 의한 기적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 속에 그의 유쾌하고도 명랑한 기질마저 싹 가시고 말았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오직 말라르메를 그린 인물화 제작에 매달렸다. 우정이 만들어낸 인물화였다. 그들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격조 높은 우정의 향기가 가득한 그림이었다. 그림은 뇌리를 늘 맴돌고 있던 생각에 잠긴 말라르메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말라르메의 인물화는 그들 간의 우정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마네는 단지 자신이 바라본 말라르메의 모습만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 누구나가 그에게서 느끼는 말라르메의 본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누구나가 그림을 보면,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에 잠기고, 또 그러다가 갑자기 서로 이야기를 꺼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서로 너무도 닮은, 너무도 가까운 사이. 마네는 말라르메의 영혼까지도 그림에 담았다.
마네는 마흔 살이나 되도록 나이를 먹었으나 심한 피부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들이 이를 증거 해주고 있을 정도다. 닥쳐올 시간들은 불확실하기만 하다. 이미지에서 시적인 의미를 획득하고자 한 착상 또한 분명하다. 그의 능력으로는 닥쳐올 시간을 멈추게 할 수가 없는 까닭에 세월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자 한 번이면 족한 색칠을 덧칠까지 한다.
말라르메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 사이가 허물없을 정도로 가까웠던 덕분으로 예술적인 교감까지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말라르메는 시적인 발상에 있어서 연금술사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의 시적 언어는 거의 주문이나 주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짜증만 났던 마네는 확실히 그만의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순진무구한 두 눈으로 금방 포착할 수 있는 이미지를 생각해 낸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명쾌하면서도 동시에 비틀린 어법을 통해 혼란스러운 것들에 대응에 나갈 것을 결의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어휘들 속에 묻어있는 솔직함은 그들이 토해놓는 말들을 이해하는 열쇠말이다. 사변적인 것이나 회화적인 것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마네는 당대의 급진주의의 모든 걸 대임 했다. 그는 진정으로 공화주의자이기를 자처하기까지 했다. 그는 아카데미즘의 오만함에 맞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매번 그에 대한 진지한 태도마저 보여주었다.
말라르메를 그린 인물화는 이 모든 걸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그림 속의 말라르메는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시가가 끼워진 한 손을 책 위에 얹고 있다. 무슨 말인가를 막 하려는 참이다.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다. 시인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으며, 동시에 구변 좋은 말솜씨를 뽐낼 태세다.
시인은 말을 하다 뚝 멈춘다. 화가의 답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삶의 기쁨을 서로 공유하기 위함이다. 시인은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말라르메는 다시 생각에 잠기고 마네 역시 다시 그를 그려간다. 이젠 됐다. 두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여실히 입증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크기의 화폭도 괜찮다. 이를 선택한 화가는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여 누가 봐도 너무도 가까울 뿐인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
베르트가 들고 있던 부채는 종이박스 속에 내던져졌다. 마네는 이제 더는 사랑에 불타오르는 뜨거운 혈기만으로는 그림 그리지 않을 작정이다. 누군가에 홀딱 반하지 않는 한, 일시적 기분에 의한 사랑의 감정에 취하지 않는 한, 여인네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는 한, 부채를 든 모습은 절대 다시 그리는 일은 없으리라…….
[1] 그림 속의 아이는 인상파 화가들의 미술품 거래상이었던 에흔느 오슈데(Ernest Hoschedé)의 아들 자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