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3화
14장 10
(1875-1876)
메리 로랑이 아틀리에에서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하기도 전에 그녀는 마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때 마네는 모든 것이 귀찮게만 여겨지고 우울증마저 다시 도지고 있었다. 마네의 아틀리에에 대한 고소장이 거듭하여 제기되자 건물주는 노발대발했다. “건물에 대한 규정을 좀 준수해 주십시오, 예술가 선생님!” 건물 관리인은 마네를 내쫓으려고까지 했다. 마네는 경찰당국이 자신에게 직접 퇴거 명령을 통보하지 않은 관계로 건물을 비우지 않은 채 끝까지 버텼다.
하지만 모든 게 그가 원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진행되어 갔다. 마네는 무엇보다 4번지 건물에 아틀리에를 세 들어 사는데 상당히 만족했다. 늘 거의. 하지만 이젠 그게 아니었다. 건물을 떠나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든 게 완전 박살 나고 말았다.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을 마네가 거부한 것은 이전의 경우와 같이 단호하고 분명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그들 마음대로 자신의 주소가 들어간 주소록을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요청했을 뿐 아니라 그가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일마저도 마다했다.
그들은 3번째 인상파 전시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하여 그들의 빈곤한 재정상태를 메우기 위해서 두루오 경매장에서 열리는 두 번째 경매에 내놓을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시급했다. 마네가 볼프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와 같은 정황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내 친구들인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소 등이 두루오에서 개최되는 경매 전시에 참가할 겁니다. 그들은 볼프 씨 당신께 보내는 편지에다가 그와 같은 의견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 당신은 여전히 제 그림을 좋게 평가하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좋아하게 될 겁니다. <르 피가로> 신문에 짤막한 기사라도 게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젊은 화가 그룹을 위하여 마네는 항상 그들의 프로메테우스를 자처했다. 그의 그림은 그들에게는 광명과도 같았으며, 관학풍의 그림이나 그리는 이들을 완벽히 능가할 수 있는 방법론까지 제시해 주었다!
비록 모네와 이름이 비슷하여 일반 대중으로부터 그와 같은 취급을 받아 못마땅한 구석이 있긴 했으나, 마네는 병든 아내와 자식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네를 위하여 몇 천 프랑이 넘는 금액을 선뜻 빌려주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네를 대신하여 그의 가족들에게 빵을 사다 갖다 주고, 의사를 불러주고, 심지어는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장만하여 모네 가족에게 갖다 주었다. 더군다나 그런 사정을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주겠는가? 물론 모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어쩌다 한 번 있는 경우이긴 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상황은 전혀 호전될 기미가 없이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다. 마네는 마침내 동료들을 돕기 위해 뒤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들의 작품을 제삼자가 구매할 수 있도록 손 좀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또한 자신의 형제들을 설득하여 작품이 팔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마네는 모네의 재능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이름과 혼동되는 것만큼은 몹시도 기분 나빠했다.
“보세요. 이 드가야말로 얼마나 재능이 많은지. 모네는 그야말로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르누아르는……. 그들 모두가 제 친구입니다. 그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그들은 진짜 대단한 화가들입니다.”
마네는 동료들 간에는 약간 우정 어린 관계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 간을 중재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주로 화가들이긴 했지만.
마침내 세 번째 인상파 전시회가 르 플르티에 거리에 면한 건물 2층에서 개최되었다. 까유보트가 빌린 건물이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마네의 적극적인 태도를 두고 공교롭게도 사람들은 그가 마치 예술의 후원자 같다느니, 재능이 이전만 못하다느니 떠들어댔지만, 마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탁월한 재능을 지닌 화가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만큼은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피사로의 작품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네조차도 그가 타고난 재주를 갖춘 화가임을 인정했다. 더군다나 그를 알고 지낸 지 10년도 넘는 지금에 와서야 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된 것을 몹시도 아쉬워했다.
그들은 전시장 입구에다가 루이 르화(Louis Leroy)가 신문에 게재한 기사를 통해 그들을 경멸조로 축원한 ‘인상파 화가들(Impressionnistes)’이란 단어를 큼지막한 글씨로 붙여놓았다. 이로써 정식으로 전시회 명칭이 붙게 된 셈이다.
바로 그렇듯 인상파 화가들이란 명칭은 이제부터 거리 이름을 딴 카퓌신느 그룹(la Capucine), 관전과 대항한다는 뜻으로 붙인 독립작가들(les Indépendant), 현대작가들(les Modernes), 사실주의 작가들(les Réalistes), 다른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붙인 강경주의자들(les Intransigeants), 익명의 단체를 주창한 협동조합(la Société Anonyme)을 대신하는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베르트 모리소는 모두 12점의 작품을 내걸었다. 모네나 드가는 그녀가 내건 작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작품들을 전시했다. 드가의 도시적 리얼리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모네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열광한 풍경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찌 됐든 그들 모두를 지칭하는 이름이 바로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마네 역시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세 파벌로 나뉘었다.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하지만 그들과 같이 취급당하는 걸 거부한 마네와 팡탱이 한 그룹을 이뤘다면, 다른 한 그룹을 형성한 피사로, 드가, 시슬레, 모네, 베르트 등은 그들만의 단단한 결집체를 형성하면서 인상주의를 주도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애썼다. 마지막 한 그룹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금전상의 도움을 받고자 그들끼리 ‘연합한 예술가들’이 한 파벌을 형성했다.
이들 모두를 관통하고 있는 주요한 갈등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미술전람회와 인상파 전시회에 최소한 그림 2점 이상을 출품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걸 판매까지 할 수 있는가? 만일 미술전람회와 그룹전에 동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드가, 베르트, 모네 등은 인상파 화가들 그룹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번만 전시회에 참가할 뿐, 앞으로 매년 꾸준히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할 것이 분명했고, 또한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낙선할 것 역시 확실시되었다.
르누아르가 그린 대형화 「물랭 들라 걀레뜨 무도회」를 보고 마네는 이제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저버리고 그의 독특한 재능을 새롭게 인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르누아르는 정말 대단한 화가였다. 그것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가운데 엄청난 재능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이제까지 마네는 르누아르를 한낱 자신의 동료쯤으로만 생각해 왔을 뿐이다.
사물의 움직임에 대해 최소한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정의한 이는 다름 아닌 말라르메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일으킨 효과를 표현하는 일이다.” 마네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원리원칙에 입각한 인물의 동작이나 태도를 생생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스스로 견딜 수 없어하던 화가였다.
새로운 회화작품을 곁들인 팸플릿에서 뒤랑티는 마네에게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연대할 것을 권고했다.
“결코 한쪽에서 패거리를 형성하는 짓은 할 수 없다.” 마네는 되풀이하여 새로운 적수를 향해 으르렁거리기까지 하면서 위협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두 사람 다 엄청날 정도로 서로를 위하면서 좋아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마네는 흥분하여 안절부절못했다. “난 내가 원하는 바대로 그릴뿐이야. 야외에서, 그래 밖에서. 아니! 뭐라고? 그들의 이야기는 집어치워.” 마네는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인상파 화가들의 제왕’ 같은 존재라고 비아냥대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말하는 인상파라는 딱지조차도 거부하고 나섰다.
마네는 그를 끌어들이려 노력한 모네와 입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이내 서로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면서 화해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기에는 그들은 너무나도 서로를 아끼는 사이였다. 얼마 안 있다가 마네는 이번에는 푸르니에가 자신을 그들 쪽으로 밀어붙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마저도 저 아득한 어린 시절 완고하고도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집요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던 저 뿌리 깊은 원망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정해진 노선을 따르지 않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저촉되는 행동 또한 금지되었던 탓에 마네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1]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빛의 실루엣을 가장 절묘하게 다룬 그 방면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