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9화
[대문 사진] 마네의 집 정원에서 조지 무어.
15장-4
(1879-1880)
소규모나마 개인전을 열겠다고 한 소문이 돌고 돌아 예상치도 못한 상당히 심각한 결과를 빚기도 했다. 마네의 회화가 이제는 한물갔다는 평가가 이어졌으나, 그보다는 미술전람회 심사위원회에 의해 그가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이 점차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진 탓이다. 더군다나 언론이 마네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부터 그를 가리켜 미스터 마네(Monsieur Manet)란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난 파리에 대해 잘 모릅니다. 말할 줄 아는 재치도 없을뿐더러 점잖지도 않습니다. 예술에 대한 열의나 열정 또한 없으며, 그에 대한 취향마저 전무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게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대체 첫 발을 뗀 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시작하겠다 나선 것일까?
마네가 그렇게 확신하고 계속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그에게 유일한 믿음을 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네는 몇 날 며칠을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속에 지내기도 했다. 의욕마저 사라진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점철된 불행한 나날이 점점 길어져만 갔다. 그런 와중에 때마침 호기심 많은 영국 태생의 파리지앵인 조지 무어가 그를 찾아와서는 마네의 신경을 딴 곳으로 돌리게 만들어주었다.
조지 무어는 레옹과 같은 나이였다. 꺄바넬의 지도하에 파리 미술대학인 보자르에서 수학했다. 그는 소설가를 꿈꿨을 뿐만 아니라 바티뇰 화가 군단을 따르는 명예회원이 된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난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닌 적도 없고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적도 없지만, 누벨 아텐느 카페만큼은 착실히 드나들었다. 마네가 내게 말을 걸던 그 잊을 수 없는 날에 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잘 깎은 구레나룻을 한 앞으로 튀어나온 턱 하며, 매부리코에다가 밝은 회색 눈동자, 단호한 어조, 잘 생긴 얼굴에 단아한 미소마저 머금은 채, 스케치를 하던 그 얼굴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조지 무어가 마네의 인상을 두고 표현한 이 전대미문의 묘사는 놀랍게도 20년 전에 앙토냉 프루스트가 했던 표현과 닮아있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일하게 마네를 묘사한 것에 따르면, 마네는 거의 50년 가까이를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고통과 쓰라린 고초를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더군다나 빛바랜 영광의 순간이 사라진 덧없음이 다시 그를 일깨운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마네가 초상화를 그리는 걸 지켜본 조지 무어는 깜짝 놀랐다! 꺄바넬이 그림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꺄바넬이 그림 그리는 걸 지켜봤던 조지 무어로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그림을 그리는 마네가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단 3번의 붓질로 당일에 자신 앞에 앉아있는 인물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고 묘사하는 솜씨에 조지 무어는 넋을 잃고 말았다. 바티뇰 화가 군단을 이끌고 있는 세련된 멋쟁이답게 재능도 뛰어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네는 조지 무어를 비롯하여 몇몇 새로운 얼굴들을 상대로 인물화를 제작하였다. 당연히 분위기를 깨고 다른 인상파 화가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물화를 제작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새로운 인물이 조지 무어였다.
조지 무어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네의 독특한 스타일은 「아흐장퇴유」에서 발단이 된 화풍과 함께 보랏빛 음영, 부드러운 터치에 있었다.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서로 다른 유파들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모든 화가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주고 새로운 화풍을 진작시키는데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인상주의를 막론하고 명성이 자자한 모든 이즘에 다 적용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오! 당신들의 이즘(-isme)으로 날 귀찮게 굴지 마세요! 나는 내가 의도한 바대로 그림을 그릴 뿐입니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식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제왕이라! 참 난감할 뿐이군요! 예술가란 모름지기 자유방임주의자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마네를 가리켜 인상파 화가들의 제왕이라 일컬으면서 그의 머리 위에 씌워준 누더기일 뿐인 면류관은 발로 짓밟아버리겠다는 심산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