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운명적인 거리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장 베로(Jean Béraud), 기다림, 1880, 파리 오르세 미술관.



15장-5
(1879-1880)



하지만 마음도 몸도 지친 상태에서, 더군다나 그림 그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면서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게 끝났다. 결국 건물주가 승리했다. 마네는 7월 말까지는 아틀리에 건물을 완전히 비워줘야만 할 처지였다. 이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는 여기저기 새 건물을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저기 찾아가 보고 또 다른 곳을 찾아가 보면서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그러나 맘에 와닿는 장소는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도 점차 궁색하게 되어갔다. 귀스타브는 몽마르트르 구의원이 되면서 그곳에 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자유석공조합(프리메이슨)이 이 젊은 법조인의 영혼 안에 깃을 치고 들어앉아 버렸다. 귀스타브는 감베타와 클레망소와 아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감베타와 클레망소 그 두 사람이 바로 힘차게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공화국이란 기관차를 실질적으로 조종하고 있는 기관사들이었다.


1879–1880, George Clemenceau.jpg 마네가 그린 훗날 공화국 대통령이 되는 「조르쥬 클레망소(George Clemenceau)」, 1879–1880.


으젠은 베르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레옹은 이제나저제나 대부를 비롯하여 친할머니인 마니와 함께 사는 걸 거부했다. 베르트가 아이를 나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네의 모친은 이제야말로 친손자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모든 구질구질한 것마저 다 잊어버렸다.


아이의 친할머니가 된 마네의 모친은 앞으로 온갖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애정을 다 쏟아부을 참이었다. 마네는 아이가 태어난 뒤로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그와 관련한 모든 것들에 대한 반감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걸 직감했다. 마네는 가족과 좀 멀리 거리를 띄워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네는 가족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나, 모친이나, 고양이들이나, 개들이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아틀리에에 있던 피아노까지도 다시 온전하게 제 자리에 자리할 수 있도록 말끔히 정리정돈을 끝마쳐야 한다는 필요성까지도 절감했다.


거추장스러울 뿐인 가구들조차도 실상은 마네 부부 두 사람을 아직껏 연결하고 있는 부부의 연을 증거 해주는 물건들이었다. 마네는 새로 이사할 곳을 같은 거리 39번지에서 발견했다. 생 페테르스부르 거리는 확실히 마네를 위한 거리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6월에 이르자 마네는 굴뚝청소부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장소로 이삿짐을 옮겼다. 아틀리에는 여전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틀리에로 쓸만한 공간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탓에 지인 한 사람이 작업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거리 70번지에 위치한 아틀리에를 잠시 빌려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까닭에 화가인 지인은 자신이 쓰던 아틀리에를 마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아틀리에를 떠나야만 했다.


마네는 지인이 쓰던 아틀리에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가까워서 무엇보다 반가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어서인지 극도로 혼잡할 뿐만 아니라 심란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마네는 작업에 꼭 필요한 가구들만 일단 가구를 보관하는 창고에 맡겨뒀다. 암스테르담 77번지에 위치한 커다란 공간을 새로 찾아낸 탓에 그곳으로 가구들을 옮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또다시 같은 거리였다. 그의 살림집이나 아틀리에가 자리한 거리들은 마네에게 거의 운명적인 거리였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마네는 생 페테르스부르 가 51번지를 필두로 40번지 그리고 4번지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39번지에 마침내 정착하게 되었다!


두 곳 아틀리에도 마찬가지였다. 아틀리에는 제각기 암스테르담 거리 70번지와 77번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만일 마네에게 심사 숙고할 시간만 주어졌더라도 왜 자신이 계속 생 페테르스부르 거리를 맴도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했을 법하지 않은가?


암스테르담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수잔과 렘브란트라는 이유가 작용한 것이 틀림없기는 하나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을 따져 볼만한 여유가 이 지친 영혼에게는 없었다. 메리와 도저히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나선 여인이 바로 그녀 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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