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랑의 보살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1화

by 오래된 타자기



15장-6
(1879-1880)



저녁 시간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마네의 화실에 들렀다. 그리고 아틀리에에 마네가 항상 메리 로랑과 함께 있음을 그들은 지켜보았다. 메리 로랑은 마네가 모친과 아내 이외에 유일하게 반말로 대화를 나누는 여인이었다. 연인이자 친구, 애정의 실타래가 서로에게 흥분상태에 빠진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예전에 베르트하고의 관계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자에게서 오직 여성스러움을 느낄 때만이 마네가 감동에 빠지는 경우였지만, 그는 이젠 더 이상 그런 걸 여자에게서 기대하지 않았을뿐더러 요구하지도 않았다.


남녀의 관계가 항상 매끄럽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네가 새로 만난 그녀를 먹여 살리고 있는 정부라 할 수 있는 의사 에방이 두 남녀의 관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관계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고달픈 순간들이 뒤따랐다.


치과의사인 에방은 매일 저녁마다 다정한 연인 곁에서 “피로나 긴장, 분노 따위를 풀면서 마음을 가라앉혀”갔다. 의사는 자신의 집과 병원 사이에 마치 머리 위에 씌워진 왕관처럼 삼각형 꼭짓점에 해당하는 지점에 붙어있는 정부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로마 가 52번지였다. 마네의 아틀리에로부터 불과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에방은 아내가 있는 살림집으로 귀가하기 전에 반드시 정부가 사는 집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곤 했다. 그런 일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느 날 그녀는 편두통이 심해 도저히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에방더러 빨리 귀가하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정부의 말에 에방은 서둘러 그녀가 사는 집을 나오는 바람에 그녀의 집에다 환자들과의 진찰 약속을 적어놓은 수첩을 놔두고 나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다음, 수첩을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수첩을 찾으러 정부의 살림집을 향해 다시 걸어가던 중에 무도회 복장을 한 자신의 정부 메리가 낯선 마네와 팔짱을 끼고 날아오를 듯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방과 마주친 마네는 조심성 있게 그녀를 놔두고 내뺐다. 그녀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면 족했다. 그녀가 재치 있게 거짓말로 에방을 속이자 속아 넘어간 순진한 치과의사는 그녀의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여인은 세컨드를 끼고 살면서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여자였을 뿐만 아니라 남자 다루는 기술만큼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여자였다. 그것도 믿을 수 없으리만큼 애교 있고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들을 속이는 기술 또한 그녀는 천성적으로 타고났다.


그녀는 마네 앞에서 포즈를 취하려고 그처럼 예쁜 드레스로 갈아입었다고 의사에게 말한 걸까? 어찌 됐든 에방이 떠나자 메리는 로마 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창문에서 마네를 향해 흰 손수건을 흔들어댔다. 흰 손수건을 활짝 펴고 흔들어댄 건 마네보고 다시 집에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마네는 온갖 잡동사니와 모피들이 널려있는 그녀의 살림집에서 오로지 그녀를 끌어안기 위해 다시 달려갔다. 연극배우로 살아오는 동안 몸에 밴 우아한 태도로 항상 마네를 대하던 그녀는 이제는 마네에게 손안경까지 선물했다. 뜻밖의 일을 당해 놀란 마네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녀는 모든 걸 기회로 삼을 줄 아는 기술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그녀는 에방을 무척 좋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에방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만큼 아주 넉넉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녀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매달 생활비를 대줄 정도로 부유하기까지 했다. 매년 그가 그녀에게 생활비로 대준 돈만 5만 리브르에 달했다.


“그가 나를 버린다고? 아니, 그건 그 남자에겐 고통일 뿐이야. 난 그가 배신하지 않는데 대해 지극히 만족하고 있을 따름이야.”


남자를 졸도하게 만드는 관능적인 몸을 지닌 그녀는 시인들과 화가들과 음악가들을 호리는 기술을 완벽하게 갖춘 눈부신 꽃이기도 했다.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이 ‘전능한 힘을 지닌 리라 칠현금’이었다.


1882, Méry Laurent au Petit Chapeau.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메리 로랑(Méry Laurent)」, 1882.


아틀리에에서 메리 로랑과 처음 관계를 맺은 뒤로 마네는 너무나도 쉽게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일시적인 충동에 따른 짧은 육체적 관계 이상으로 그처럼 마음을 홀딱 사로잡은 아름다운 여인네의 끈질긴 유혹을 무슨 수로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인가? 살아가는데 또한 사랑하는데 엄청난 중압감을 느낄 뿐이던 마네는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를 단단히 쥐고 호락호락하고 싶지 않던 수잔의 입장에서 본다면 늘 번번이 사려 깊은 행동을 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늘 이상한 행동이나 하고 기이한 일이나 벌이려 했던 것은 마네의 천성이자 그가 태어나 자란 곳에 비춰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마네는 부르주아의 거실에서 개최되는 모임을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늘 창녀들이 기거하는 방을 호기심에 차 기웃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공식적인 명예를 탐내면서도 또한 꾸준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돌보고자 나선 행동은 늘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난뱅이 환쟁이들과 어울렸던 마네의 행동을 보다 잘 설명해 주는 예에 해당한다.


세상 거칠 게 없는 가장 자유분방한 태도를 고수한 온갖 부류의 여자들과 깊은 관계에 얽혀 들면서 온갖 짓을 벌이면서도 자신의 아내에게만큼은 울타리를 친 사내가 마네였다. 그가 가장 사랑했다는 여인이었던 베르트만 하더라도 그녀 또한 기존의 관습과 도덕을 몹시도 부담스러워했을 뿐이다.


아틀리에를 떠나기 전, 마네가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누드화 시리즈를 끝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드화 연작을 위해 메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포즈를 취해주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포즈를 고안하여 마네에게 일러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마네는 「목욕통속의 여인」과 같은 목욕 장면을 담은 빛나는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푹 빠져있던 젊은 나이의 앙리 드 레니에조차도 이 아름다운 누드화에 넋이 빠져 이를 기린답시고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라는 시를 지어 바치기까지 했다.


1878, Femme a la fourrure (Méry Laurent).jpg
1878, Femme dans un tub (Mery Laurent).jpg
마네가 그린 「모피를 두른 여인(Femme à la fourrure)」과 「목욕통속의 여인(Femme dans un tub)」의 주인공 메리 로랑(Méry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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