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과도 같은 작품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2화

by 오래된 타자기



15장-7
(1879-1880)



메리 로랑은 또한 「모피를 두른 여인」과 사계절 연작 가운데 한 작품인 「가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4번지 아틀리에를 떠나기 전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해 옷을 벗은 여인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엘렌 앙드레 역시 그녀처럼 옷을 벗고 모델을 섰다.


1878, Tête de jeune femme (Ellen Andrée).jpg 마네가 그린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초상화(Tête de jeune femme」, 1878.


모델이자 배우에다가 거기에 더해 몸 파는 여인이기까지 했던 엘렌 앙드레는 완벽한 몸매를 갖춘 보기 드문 여자였다. 그녀는 마네가 그린 「자두」의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주 드가의 작품 모델이 되기까지 했다.


1878, La Prune (Ellen André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자두(La prune)」, 1878.


엘렌 앙드레는 자신을 그리는 화가들에게 몸과 얼굴가운데 둘 중의 하나만 그릴 것을 요구했던 아주 특이한 여자였다. 그녀는 화가들이 얼굴과 몸을 함께 그리는 걸 거부했다.


사교계를 주름잡던 큰 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루이즈 발테스 역시 마네의 화실에서 누드화를 위한 모델을 섰다. 마네는 그녀를 파스텔로 그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신분을 남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드가가 자신을 누드화의 모델로 쓰기를 원치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마네에게 털어놓았다.


“아니 뭣 때문에 그랬대?” 마네는 호텔 리셉션에 근무하면서 손님들이 물건을 맡기고 찾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여자의 말이 몹시도 궁금했던지 그녀의 말을 가로챈 뒤에 되물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그가 내게 이야기했어요. “네 궁둥이는 모나리자처럼 못생긴 배같이 생겨먹었다” 하더군요.”


“아! 그랬구나. 엉덩이가 배 형태면 아주 예쁠 텐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마네는 폭소를 터뜨리며 말조차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1879, Mlle Lucie Delabigne (Louise Valtesse).JPG 마네가 그린 본명이 루이즈 발테스 들라 비뉴(Louise Valtesse de la Bigne)인 「뤼시 들라비뉴 양(Mademoiselle Lucie Delabigne)」.


드가와는 달리 마네는 자신의 그림 속 모델들이었던 여인들을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그들의 인격마저 존중해 주었다. 모델들을 만만하게 대하지도 않았거니와 그녀들의 생김새에 대해 자주 칭찬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녀들은 그런 마네의 상냥함에 매료되었고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들이 마네의 화폭에 온전히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매력적인 몸매를 넘어서 대단히 지적으로 포즈에 임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매력을 어떻게 표출해야 좋을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화 작품에 묘사된 그녀들은 이를 그린 화가처럼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녀들은 한때 스쳐가는 덧없는 존재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걸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던 인물 군상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들을 마네는 화폭에 서로 직조해 나갔다. 미묘하고도 정교한 서로 간의 합의가 전제된 상황에서 서로 간에 깊은 신뢰마저 배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들 모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적어도 마네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녀들이 누구란 걸 다 알 정도였다.


아틀리에를 떠날 준비를 하는 와중에 시작한 누드화 작품들은 아틀리에서의 작업이 아쉬웠던 탓인지 거기서 끝나질 않고 카페 장면을 다룬 작품들로 이어졌다. 그가 떠올린 대담한 발상에 의거한 장면들을 묘사하기 위한 붓질은 거침이 없었다.


화판 또한 걷잡을 수 없는 희열로 폭발해 갔다. 검은색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생동감에 찬 색조로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만의 노골적인 분노심마저 표출되지 않은, 연민이나 동정 따위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화면들은 생명에 대한, 삶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마네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했다. 수만의 다면체를 지닌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을 마네는 완성해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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