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는 역시 마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5화

by 오래된 타자기



15장-10
(1879-1880)



젊은 데다가 광기에 찬 영국인 조지 무어를 그린 인물화를 완성한 다음 마네는 포레의 인물화를 다시 그렸다. 전에 그린 그림들을 포레는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네는 포레의 새로운 인물화를 위해 채 완성하지 않은 작품들을 모두 함께 한자리에 늘어놓고 작품들이 서로 합창하듯 한꺼번에 그려나가기로 작정했다.


1882, Jean-Baptiste Faure.jpg 다시 그린 장 밥티스트 포레(Jean-Baptiste Faure), 1882. [1]


모든 프랑스 화가들이 다 그러했던 것처럼, 마네 역시 빅토르 위고에 심취하여 그의 초상화를 한 번 그려볼까 하는 꿈에 젖어있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명성 또한 자자하여 겁을 집어먹은 탓에 감히 그에게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


결국 마네는 프루스트에게 빅토르 위고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마네의 부탁을 시인에게 전한다는 걸 깜빡 잊은 탓에 마네는 이 참으로 대단한 시인으로부터 어떠한 회신도 없이 냉정한 박대를 당했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히게 되었다!


참 웃기는 친구였다. 프루스트는 늘 마네 곁에 붙어서 친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긴 하였으나, 아주 음흉하기 짝이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프루스트는 마네와 그 무엇도 공유하는 게 없었다. 친구의 비옥하고도 풍부한 자양 덕에 인생을 살아가는 주제에 오직 자신을 위한 삶에만 모든 걸 집중하고 있었다.


요컨대 어린 시절 외삼촌 푸르니에가 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걸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프루스트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대체 마네하고는 인생에서 뭘 나누고 싶어 한 것일까? 과연 그가 마네와 변함없는 우정과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약속한 건 확실한가?


쥬느빌리에에서 며칠 간을 마네가 맘에 맞는 친구들하고만 여름을 보내던 때, 으젠과 베르트는 모친과 함께 노르망디에서 여름을 보냈다. 극도로 쇠약해진 수잔은 파리에서 레옹의 간호를 받으면서 지냈다. 메리는 여전히 마네의 아틀리에를 들락날락거렸다. 얼마 있다가 오슈데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고, 카롤루스 뒤랑만이 유일하게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참담한 지경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여전히 잘난 체할 정도로 부유한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내가 그처럼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내가 모든 면에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라네.” 마치 인생살이의 아무런 고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마네는 마구 떠들어댔다.


모두가 마네더러 인상파 화가들 근처에 어슬렁거리지 말라고 야유를 퍼부어댔다. 마네는 보자르(파리 미술대학교) 학생들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부른 노래가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인상주의에 돌을 던진 자 누구인가?
그건 바로 마네라네.
허풍 떠는 주제에
노발대발 성질까지 내는 자는 누구인가?
그건 바로 마네라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파주의에 빠져
그룹 모임에 첫 분열을 일으킨 자는 누구인가?
온 파리가 그를 알고 있을까?
마네는 역시 마네라는 걸.






[1] 포레는 오페라 바리톤 가수이자 마네의 그림을 수집한 개인 소장가였다. 그는 마네가 그린 자신의 인물화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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