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에서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8화

by 오래된 타자기



15장-13
(1879-1880)



로젠 백작이자 스웨덴 역사화가이기도 한 요한 게오르그 오토가 마네에게 자신의 아주 아름다운 아틀리에를 은신처로 삼아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의 배려로 마네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진 아틀리에를 맘껏 이용하고자 서둘렀다.


아틀리에는 온실처럼 온갖 진귀한 열대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근사한 종려나무까지 키를 더하고 있어 겨울 정원을 방불케 했다. 덕분에 마네는 마치 속임수를 쓴 것 같은 그림까지 그릴 수 있었다! 실내와 실외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그림을 그린 탓으로 고집스럽게 야외에서만 그림 그리는 이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오토의 아틀리에는 정말 맘에 들었다. 마네는 그의 아틀리에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데까지 이용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마네는 포부르그 생토노레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아주 멋질 뿐만 아니라 우아하기까지 한 부부 한 쌍을 커다란 크기의 화폭에 맘먹고 그리고자 작정했다. 말할 것도 없이 「온실에서」라는 제목이 붙을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프랭이 상처한 탓에 마네가 나서서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어야만 했다. 프랭은 부인이 죽는 바람에 실의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마네가 죽자 살자 달려들어 ‘종려나무 재배용 온실의 맑은 햇살’을 한 번 쬐어보라고 닦달했다.


쥘 기유메와 그의 아내는 화가와 한껏 희롱을 일삼으면서 오랫동안 포즈를 취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병에 시름시름 앓던 수잔은 기적적으로 병이 나아 그들과 동석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제까지는 남편의 화실에 맘대로 들락거릴 수 없던 신세였지만, 남편의 성격이 약간은 부드러워진 탓으로 화실에까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수잔은 두 사람이 포즈를 취하는 동안 피아노를 연주했다. 몸이 완전히 나았는지 주도권을 쥐고 대화를 이끌어가기까지 했다. 마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병이 도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1879, Dans la serr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온실에서(Dans la serre)」, 1879. 그림 속의 주인공은 쥘 기유메(Jules Guillemet) 부부다.


새 유행을 좇는 선 멋쟁이였을 뿐만 아니라 행운마저 따라 부유하기까지 했던 이들 부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게 만드는데 마네는 다섯 달이나 공을 들였다. 아틀리에가 맘에 안 찼던지 영 포즈 취하는 걸 어색하게 여겼던 탓에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취한 포즈마저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심리 소설 같은 심리 회화였다! 마네는 특유의 견유주의자적인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냉소적으로 부부를 바라본 덕분에 단 몇 분 만에 사회적 관례에 속박당한 채 어쩔 수없이 살아가고 있는 부부의 초상을 연출할 수 있었다. 가식적인 표정이나 짐짓 테를 부린 태도가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마네로서는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너무도 귀찮고 성가신 일이었던 탓도 있었다.


마네의 작품은 그렇듯 자신과 너무도 유사한 인물을 모델로 쓰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 두 남녀에게서 마네는 부르주아라는 굴레에 속박된 채, 상처받고 일그러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경우를 비춰본 것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일그러진 부부의 초상을 그림으로까지 표현하기에 이르렀던 건 아닐까?


사랑에 찬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열중한 듯한 부부의 초상은 절대 그리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마네는 고집을 피웠다. 그림 속의 부부는 서로 각자 고립된 채, 서로에게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무뚝뚝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들은 서로가 말이 없을뿐더러 관람자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둘은 함께 하지만, 서로 헤어진 사이나 다름없다. 인격 또한 부부의 역할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각자 서로 독립적인 인격체에 따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림은 실제 그들의 삶이 어떠한 지를 적나라하게 암시해 준다.


온실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곁에 있는 자신의 아내를 전과는 달리 버림받은 여인처럼 묘사한 걸 보면 마네의 심적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가장 배은망덕한 짓이나 다름없다. 마네는 기분 좋은 상태에서 기꺼이 아내를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림은 완성될 기미도 없이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뒹굴고 있었다.


1879,  Madame Édouard Manet dans la serr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온실에서의 에두아르 마네 부인(Madame Édouard Manet dans la serre)」, 1879.


리얼리티에 입각한 작품으로 짧고 간결한 만남들을 다룬 매력적인 작품들 또한 그에 못지않다. 심지어는 용의주도하기까지 하다. 무도회 장면, 공연, 산책, 사람들을 만나는 일 등 마네에게 있어 그림이 될 만한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이런 점에서 예외가 있다면, 「원조 라튀유(Le Père Lathuille)」일 것이다. 남녀가 정사를 나누기에 앞서 서로 속삭이는 장면을 다룬 마네의 대표작가운데 한 작품으로써 그림 속 인물들이 서로 음흉한 시선을 교환하는 보기 드문 경우를 묘사한 작품이다.


마네가 이런 장면을 그림으로 시도했다고 드가에게 이야기하자 이야기를 들은 드가가 놀라 나자빠질 정도였다. 마네는 연극의 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도 뜨거운 정사를 앞둔 남녀의 심리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림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잉태되었다.


1879, Chez le père Lathuill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원조 라튀유 카바레 레스토랑에서(Chez le père Lathuille)」, 1879. [1]






[1] 그림 속 남자는 레스토랑 창업주의 아들 폴 고티에 라튀유(Paul Gautier Lathuille)이며, 곁에 앉아있는 여인은 당시 유명한 모델이자 몸 파는 여인이기도 했던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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