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61화
15장-16
(1879-1880)
성탄절 전날에 베르트 모리소가 느닷없이 마네가 새로이 이사한 화실로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편지 겉봉에다가 베르트 모리소란 이름 대신 베르트 마네라고 적고 있었다. 으젠이 아내에게 새로 구한 약을 에두아르에게 갖다 주는 김에 시아주버니가 어떤 상태인지를 한 번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마네의 아틀리에에 들른 베르트는 마네에게 효능이 좋다는 약을 건네주자마자 마네가 그녀의 인물화를 그릴 때마다 그녀가 앉던 그녀만의 소파에 기대고 누웠다. 예전에 「휴식」이란 그림을 그린답시고 늘 포즈를 취하던 소파였다.
베르트는 에두아르에게 하소연하기를 마네 집안에 대가 끊길까 봐 또다시 남자아이를 낳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아이를 고대하는 가운데 베르트는 대체 마네에게서 무얼 확인하려 한 것일까? 이제는 선량한 마네와 더불어 남자아이까지 낳으려는 수작이었을까?
마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비록 어느 한 사람도 아이를 가진 부모를 짓누르는 심리적 고통과 함께 아이가 기대에 어긋날지도 모를 경우를 상정해 본 것은 아니었기에 두 언니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르트에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성질마저 이기지 못한 에두아르는 노발대발하면서 화까지 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베르트는 공포심마저 느꼈다. 성질 더럽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화를 낸 것마저 마음의 평정을 잃은 탓이라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베르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보랏빛 꽃다발 장식을 한 목걸이를 매고 포즈를 취하던 때의 그녀와 흡사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마네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감동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치밀어 오른 화마저 가라앉아가면서 그녀를 더없이 다정하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마네는 비비(Bibi)가 보고 싶다는 말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비비는 베르트가 자신이 낳은 딸인 쥴리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새해엔 반드시 아이를 파스텔로 그려보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더군다나 성탄절엔 베르트에게 파스텔을 선물하기도 했다. 갓난아기들의 살색 피부를 묘사하기엔 파스텔만 한 것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마네와 베르트 이 두 사람은 언제부터 서로 떨어져 살았다고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었을까? 그걸 굳이 알 필요는 없다. 두 남녀는 다시 연정을 불태우려던 참이었을까? 그것도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에게서 이 사람 저 사람 스케치하고 그림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예전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은 채였다. 마네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는 방석 위에서 포즈를 취한 새로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마네는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목탄을 사용하여 스케치북에 담아 갔다.
수잔과 으제니는 무언가를 마시고 있는 모습인 반면, 레옹은 한쪽 구석에 토라진 표정을 하고 있다. 귀스타브는 현 공화정 체제야말로 그 어떤 정치집단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훌륭한 정치집단이라고 식구들을 납득시키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그처럼 마네는 자신의 가족들 모임을 지속해서 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