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꽃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63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르네 매즈화(René Maizeroy)의 『파리지앵의 삶(La vie parisienne)』



15장-18
(1879-1880)



1879년 4월 1일 온실에서 그림 그리던 마네는 새로 마련한 화실에 정착했다. 새 아틀리에는 생 라자르 역과 클리쉬 광장 사이에 난 암스테르담 거리에 위치했다. 마네의 영혼이 늘 떠돌던 이 구역은 아무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화실들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채광창을 통과한 햇살이 실내를 환하게 밝혀주는 곳이었다.


기력이 떨어진 데다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어쩔 수없이 레옹의 조력은 물론이고 아이의 상냥함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힘들면 힘들수록 레옹의 도움은 절실해져만 갔다. 새 아틀리에로 이삿짐을 나르고 화구를 정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마네는 결국 아들의 도움까지 필요로 한 것인가? 하지만 아버지이기를 거부한 채, 가짜 아버지 행세나 하는 그를 위해 자식이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런 장식도 없이 텅 빈 드넓은 새 아틀리에는 커다란 창고를 연상케 했다. 레옹은 이 텅 빈 공간에서 마네의 회화적 삶을 차곡차곡 짐을 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 닿을 듯이 벽에 걸려있던 작품들마저 떼어낸 상태였다. 아마도 미술전람회에 출품했으리라 짐작될 뿐인 작품들이었다!


마네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네덜란드를 여행하던 중에 복제한 작품들과, 초벌그림들, 또한 유화들 또한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전시회 때마다 온갖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화려한 명성이 더해진 작품들과 나란히 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부터 「발코니」에 이르는, 「올랭피아」에서 「막시밀리언의 처형」에 이르기까지 크기 별로 분류되었다!


가구로 피아노와 ‘목욕통속의 누드화’를 그리기 위해 준비해 뒀던 커다란 함지통인 양은대야, 그날그날 패용한 장신구를 넣어 보관하기 위한 서랍 달린 장식장, 나나의 프시케 조각상은 물론이고 카페에 앉아 술을 마시는 장면들을 그리기 위해 설치했던 선술집 탁자와 바텐도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매일 카페를 갈 수 없었던 탓도 작용했다.


마네는 아틀리에를 아예 술집으로 꾸몄다. 그는 선술집 주인장이었고 그가 불러들인 친구들은 손님들이었다. 아틀리에 한쪽에 마련된 바텐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술을 권하고 마셨다.


“한번 마네의 아틀리에에 발을 들여놓으면 맘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서로 다른 시각에 찾아온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 유명한 파리지앵의 삶(La Vie parisienne)을 다룬 연대기 작가이자 일명 뚜쌩 남작이라 불렸던 르네 매즈화는 당시의 상황을 그렇게 묘사했다.


르네 매즈화는 단 한 번도 개를 동반하지 않은 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마네는 그를 스케치했다.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에 깃든 말들을 주고받았다. 마치 불꽃놀이 때 축포가 터지는 듯했다.”


1882, René Maizeroy.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르네 매즈화(René Maizeroy)」, 1882.


René Maizeroy, Couverture de Chérissime, 1901.png 음란한 소설을 쓴 걸로 유명한 소설가 르네 매즈화(René Maizeroy)의 『달링주의(Chérissime)』 소설책 표지.



마지막 불꽃이었을까?



악마의 모습을 한 파리 한량 중에 한량이었던 마네는 좌중 한가운데에서 드가가 그를 외면한 채 도망칠 정도로 심한 농담을 주고받는 걸 즐겼다. 드가는 그들의 경박함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마네의 아틀리에에서 서로 우정을 다지던 말라르메, 프루스트, 뒤레, 브라끄몽, 나다르, 아스트뤼크 그리고 에바의 약혼자였던 게라르, 프랭, 위렐 신부 역시 마네의 아틀리에에서 다시 개최된 모임에 재회하고는 서로의 우정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형제였던 이들은 돈 걱정할 때마다, 전시회 걱정을 할 때마다 아낌없이 물질적인 도움을 주던 이들이었다. 이들과의 우정 어린 인간관계에 집착하고 이를 고수하고자 했던 마네의 고집스러움은 그의 삶 내내 한결같았다. 느닷없이 시작될 뿐 아니라 계제가 나빴던 사랑놀음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바람기가 농후한 탓으로 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들하고 놀아나던 순간에도 한결같았다.


아틀리에에선 저녁마다 피아노 이중주가 연주되었다. 마네의 아내 수잔과 엠마뉴엘 샤브리에가 서로 돌아가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두 여인은 오펜바흐가 작곡한 오페라 희가극에 나오는 가곡을 열창하곤 했다. 이 어쭙잖은 인간을 놀리려 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는 공화주의자였다.




매거진의 이전글1879년의 미술전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