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같은 여인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6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장 마리 로제로(Jean Marie Laugero), 에두아르 마네



15장-22
(1879-1880)



마네는 지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수잔이 주치의인 시르데 박사에게 남편의 병색을 일일이 알려야만 할 정도로 작업에 열중했다. 그때마다 시르데 박사는 진찰받으러 마네를 데리고 병원으로 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무리하게 그림을 그려선 안 되고 어쩌다가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파스텔화를 그리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고 시르데 박사는 조언했다. 유화 같은 작품은 절대 손대선 안 되며, 마찬가지로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해서도 안 된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었다.


하지만 누가 마네로 하여금 계속 붓을 쥐게 만들었는가? 대체 마네에게 뮤즈와 같은 여인들은 누구였던가? 마네는 파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아틀리에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리고 있는 그림을 때려치울 만큼 담력도 없었다.


하지만 수잔은 의사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의사의 말만 되풀이하여 고집했다.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고 한시바삐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처방은 병이 악화되는 걸 지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다. 마네의 병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악화될 상태였다.


어머님이라 부르는 모친은 진찰실에서 오직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태어난 비비(Bibi)만을 어르고 있었다. 모두가 그런 그녀를 심정적으로 이해했다. 더군다나 모친은 여름휴가를 으젠과 베르트와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와 함께 보낼 계획까지 세웠다.


레옹은? 레옹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아파트와 아틀리에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탓에 틈나는 대로 고양이들과 개들을 보살피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마네는 파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마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듯이 여겨질 정도였다. 7월이 되자 마네는 자신의 유일한 문하생이었던 에바 곤잘레스를 결혼시켰다. 배우자는 마네의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인 판화가 앙리 게라르였다.


8월에는 모네가 파리로 마네를 찾아왔다. 마네와 함께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두 사람은 좀 더 정밀한 묘사를 구사할 수 있는 기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을 뿐 아니라 투명한 묘사 기법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피곤함에 찌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완강하게 버티면서 고집부렸다. 의사 시르데가 화가 나서 만일 자신이 처방을 내린 대로 벨비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젠 정말로 더 이상 마네를 진료해 줄 수 없다는 협박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메리는 번번이 그림 속 모델로 포즈를 취하기 위해 아틀리에를 꼭 들르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약속을 꼭 지키는 여자였던 만큼 그녀는 마네의 삶에 항상 얼굴을 디밀었다. 신뢰할 수 없는 건 오히려 마네 쪽이었다.


그럼에도 마네는 참고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시르데 박사와 수잔이 판단한 게 옳았던 것이 마네야말로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되찾아야 할 뿐 아니라 아직도 미련으로 남은 여인네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회복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죽지 않는 다음에야 건강을 되찾는 쪽이 훨씬 현명한 일이었다.


1880, Méry Laurent au Chapeau de Loutr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수달 모피로 만든 모자를 쓴 메리 로랑(Méry Laurent au Chapeau de Loutre)」, 1880.


여자들과 그림을 좋아했던 만큼 마네는 자신의 삶 역시 사랑했다.


9월 중순 마네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벨비유의 병원에서 물 치료요법으로 물리치료를 받았다. 끔찍한 충격요법이었다. 건강이 뚜렷하게 호전되는 일 없이 모든 게 권태롭게만 느껴지는 가운데 마네는 에밀리 앙브르를 우연찮게 만났다. 마네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집 여자였다.


이름 꽤나 알려진 여류 성악가였던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네의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네를 단지 친구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웃집에 살고 있는 아주 유명한 화가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마네더러 함께 대서양을 횡단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결국 마네가 신대륙을 화폭에 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배에 태워 대양을 횡단한다고? 안 될 거야 없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녀는 곧바로 아메리카 대륙을 한 바퀴 일주하는 여행을 떠났다. 마네는 여행을 떠나는 그녀에게 자신이 「막시밀리언의 처형」을 그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 이야기까지 들려준 의도는 새로이 자신의 예술작품을 좋아하게 될 신대륙의 팬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기대 때문이었다.


1880, Emilie Ambre en Carmen.jpg 마네가 그린 오페라 「카르멘」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에밀리 앙브르(Émilie Ambre)의 초상, 1880.


벨비유에 머무는 동안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끔찍한 여름이었다. 치료 요법은 달가운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효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어쩔 수 없이 의사 진료에 따랐다. 의사는 마네더러 오랫동안 휴식을 취할 것을 요하였다.


더는 그림을 그려서도 안 되며, 만일 그림을 그리려면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단지 스케치하는 정도로 그쳐야만 할 것이며, 암스테르담 거리 77번지에 마련한 아틀리에에 다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몸이 완쾌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네는 과거가 되어버린 순간들에 자신이 넋을 잃을 만큼 좋아하던 것들을 스케치북에 담던 기억을 되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추억들은 마치 연쇄작용을 일으키듯 기억의 파편들 중간에 끼워 맞춰지면서 서로 이어졌다.


마네는 추억 속에 떠오르는 인상들을 잊지 않으려고 이야기로 심정을 토로하거나 그림으로 묘사했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수채화로 묘사할 때마다 이미지들 하나하나는 마치 한아름 꽃다발을 장식한 꽃 한 송이 한 송이 같이만 여겨졌다.


인물화들, 풍경화들, 고양이 그림들, 새를 묘사한 그림들, 정물화들, 물에 풀어진 몇몇 물감마저도 마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었다.


단 두 번만의 붓질을 통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마네는 벨비유에서 혼자만이 할 수 있는 놀이에 빠져들었다. 벨비유는 유형지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가을의 시작은 상탄이 절로 나오는 계절임을 일러주었다. 10월의 들녘은 일렁이는 황금물결로 덮여갔다. 그러한 풍경이 마네의 마음을 달래주기까지 했다.


바라보는 사물들이 참 아름답다 느낀 순간 마네의 마음조차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불현듯 기분이 좋아지면서 파리로 돌아가서는 미뤄뒀던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용기마저 생겼다. 하지만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만으로는 다시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는 없는 까닭에 마네는 좀 더 벨비유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네가 생각한 유일한 것이 그렇듯 오로지 건강만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놈의 비장할 정도로 입을 실룩거리며 겨우 ‘빌어먹을’ 소리만 읊조리던 보들레르처럼 최후의 순간을 맞지 않으려면, 스스로 몸조리하는 도리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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