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전조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0화

by 오래된 타자기



16장-2
(1880-1881-1882)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한 화가들과는 다르게 한편에서는 전시에 참가하지 못한 화가들도 있었다. 마네는 그들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몇몇 동료의 작품들을 기꺼이 갤러리에 전시하도록 빌려준 것이다.


그들 간에는 수시로 그림을 선물하면서 주고받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번에 갤러리에 빌려준 몇몇 작품들은 동료 화가들의 생존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도록 마네가 도움을 주려고 구매한 작품들이다.


Annonce de l'exposition de toiles et pastels de Manet à la galerie de La Vie moderne (8-30 avril 1880.png 마네의 작품 목록이 실린 갤러리 <현대적인 삶(La Vie moderne)>의 전시회 카탈로그.


아뿔싸! 그들의 질서 정연한 대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술전람회에 출품을 금지하는 규정이 새롭게 시행되었을 뿐 아니라 강경파들의 전시회에 그림을 내걸 경우 이에 저촉받는 관계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된 탓이다. 많은 숫자의 화가들이 자신들은 어디에도 소속된 적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창작활동을 해가고 있을 뿐이라고 일부러 그간의 일까지 부인하고 나서는 일마저 발생했다.


하지만 갑자기 에드몽 뒤랑티가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드는 바람에 모든 게 뒤죽박죽 되고 말았다. 4월 9일, 오직 자신만이 운이 나쁜 사람이라면서 항상 미소 지으며 친구들 모두의 성공을 빈다고 말하던, 비상한 솜씨를 지녀 무엇에나 손대길 좋아하던 사내가 항문에 생긴 종양이 암으로까지 번지는 바람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가엾게도 통증을 못 이긴 탓에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배를 바닥에 깔고는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Marcellin Desboutin, Portrait d'Edmond Duranty vers 1876.jpg 마흐슬랭 데부탱(Marcellin Desboutin)이 그린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에드몽 뒤랑티의 인물화(Portrait d'Edmond Duranty), 1876년경.


“사람들이 에드몽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네. 내게는 마치 그 소리가 그를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들곤 했다네.” 마네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던 뒤랑티의 애틋한 죽음을 애도했다.


한 때는 뒤랑티와 치고받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게 언제였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한 천 년 전의 일이었나? 서로 감정 상할 일조차 없었다. 심지어는 발목이 날씬하게 뻗어나간 가죽장화를 그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뒤랑티의 죽음은 어느 모로 보나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리라는 기대와는 완전히 상반된 불길한 전조나 다름없었다.


예상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이 해의 미술전람회 역시 이제까지 늘 당하던 수모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 진의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마저 벌어졌다. 더군다나 그에게 싸움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출품된 작품은 기가 막힐 정도로 여러 차례 올려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조차 없는 높은 곳에 걸렸다. 새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듯이 작품을 벽 높이 걸어놓으면, 눈에 띌 일이 거의 없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한 불리한 조건에서 어떻게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적의를 품은 심사위원들은 여전히 마네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만일 오늘 그들이 자네를 인정한다면 그간 자네에게 잘못한 일들을 다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말일세. 그래서 그들은 자넬 더욱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네.” 르누아르가 마네를 달랬다. 르누아르는 마네만큼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늘 취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다만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는 사실만 납득했다.


“그렇다 해도 내가 그린 「프루스트 입상」이나 「원조 라뛰유」는 문제가 될 만한 쇼킹한 요소는 전혀 없지 않나?”


“아니야. 문제가 있어.” 모네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자! 봐봐! 여기 마네란 사인이 있잖아. 그들로서는 이게 문제인 거야!”


23-2 Chez le père Lathuille, 1879.jpg
23-1 Antonin Proust (Journaliste et Ministre des Art), 1877.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원조 라뛰유(Le Père Lathuille)」(1879) 및 「프루스트 입상(Proust en pied)」(1877).


“미술전람회 심사위원들은 이 시대 반드시 사라져야 할 마지막 남은 새침데기 여자들이라네.” 피사로가 모네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서로 팔짱을 낀 채, 전시회 개막식 날 마네를 지지하기 위하여 한꺼번에 전시장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마네가 여전히 그들의 우두머리임을 천명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또한 세잔도 마찬가지로 마네처럼 이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온갖 어려움을 한꺼번에 겪는 느낌이었다.


마네는 오직 그들이 자신처럼 봉변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마네는 그들에게 확실한 길을 열어젖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반 대중에게나 미술평론가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긴 했으나 보수주의자들은 이제나저제나 머리칼이 쭈뼛하게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걱정 말게나. 보수주의자들은 점점 머리가 벗어지고 있으니, 이젠 남은 머리카락마저 얼마 안 돼 보일 뿐이라네. 귀찮게 굴던 자들도 다 죽었는지 눈에 띄질 않아.” 드가가 잘라 말했다. 늘 신랄한 말을 쏟아내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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