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1화
[대문 사진] 뫼동-벨비유 물리치료 병원
16장-3
(1880-1881-1882)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의 전시회 이후로 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들조차 이렇다 할 성공의 조짐도 없을뿐더러 인상파 화가들과의 조우마저도 씁쓸하기만 할 따름인 까닭에 마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기만 했다. 그는 또다시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벨비유에서 통증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잠시 호전된 건강마저도 어느새 다시 악화되었다. 격렬한 통증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동반했다. 시르데 박사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금지했다. 메리 집에 몰래 드나드는 것도 이젠 끝이었다! 아내가 살림하고 있는 아파트나 모친의 집이나 할 것 없이 양쪽 집에서는 마네를 병석에 몸져누운 환자처럼 취급했다.
마네는 두 여자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하루 왼종일 암스테르담 거리 77번지 아틀리에에서 소일했다. 아틀리에는 15시부터 살롱이나 선술집으로 바뀌었다. 만일 특별한 저녁모임이 있을 때에는 춤판으로까지 변질되었다.
또다시 의사들이 마네더러 파리를 떠나 조용한 곳에서 지내는 게 훨씬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마네가 의사 처방에 따를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자 의사들은 다시 마네더러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며 지난해 받은 끔찍하기만 했던 물 치료요법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 벨비유에 다시 3개월간 머물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의사의 처방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집에만 조용히 머무를 작정이었다. 밤낮없이 병간호를 받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었던 탓에 에밀리가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사는 집 가까이에서 찾아낸 조그만 집 한 채를 세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막시밀리언의 처형」이 실패한 탓으로 에밀리는 변함없이 애정을 쏟고 있는 아티스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 어쩔 줄 모르고 안타까워하던 중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 가까이 집 한 채를 세 들어 드나들기 시작한 마네의 행동은 건강을 해치든 말든 뭐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보자는 짓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만일 마네가 시르데 의사의 처방에 순순히 따랐다면, 그토록 맹목적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약까지 복용하고자 애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돌팔이가 지어준 몸에 해로운 약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남용한 탓에 정신 착란 증세마저 일으키고 말았다.
수잔은 가끔씩 마네가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에서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네는 사람들을 누가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몇 시간 동안 그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고통이 좀 가라앉나 싶으면 다시 고집 피우기 일쑤였다. 벨비유 간호사들이 그에게는 거의 형벌이나 다를 바 없는 좀 과하다 싶은 물 치료를 시작하기라도 할라치면, 이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마네는 그들에게 온갖 욕설마저 퍼부어댔다.
주말마다 레옹은 벨비유에 들러 마네의 온갖 변덕스러움을 다 받아주면서 자기가 주식시장에 좀 관심이 있는 편이라서 주가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노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밥벌이를 위해서 주식시장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마네에게 털어놓았다.
레옹은 대단한 부자가 될 것을 꿈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은행마저 설립하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마네는 이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레옹을 말릴 만한 어떠한 힘도 남아있질 않았다. 마네는 오직 정원의 벤치와 거실에 놓인 소파 사이를 오갈 뿐이었다. 손에는 항상 스케치북이 들려있었다.
좀 상태가 호전된 날에는 수채화를 그리기도 했다. 식탁에는 꾸준히 아스파라거스가 올라왔고 수잔이 껍질을 벗겨 얇게 저민 멜론과 배와 레몬이 항상 등장했다. 마네는 레몬을 즐겨 그렸다. 마네는 꾸준히 끈기 있게 삽화나 수채화가 들어간 편지들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친구들의 답장이야말로 마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마네는 친구들이 너무 인색한 탓에 자주 답장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이 시기에 프루스트, 뒤레, 브라끄몽, 아스트뤼크, 프랭, 메리, 에바 또한 말라르메가 마네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들이야말로 마네와 아주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던 절친들이었다. 그들 모두는 마네가 보낸 편지를 통하여 마네가 늘어놓는 벨비유 요양원에 대한 뒷담화나 쑥덕공론은 물론이고, 병실이나 정원 할 것 없이 온갖 떠도는 소문들까지 다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여배우들의 사생활이 마네를 흥분시켰지만, 내일은 주름살을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히 지울 수 있을지 그 치료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마네를 흥분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마네는, 마네의 병은 그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친구들과 편지로 주고받게 만들었다.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그처럼 마네는 주변에서 일어난 소상한 일들을 다 기록할 정도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다 쏟아냈다. 그 가운데에는 샤르팡티에 질녀인 예쁘장하게 생긴 이사벨 르모니에에게 홀딱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사벨 르모니에는 너무 젊고 경망스럽기 짝이 없었던 탓으로 혹여 마네가 자신의 몸이나 탐내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면서 마네의 요청마저 일언지하에 딱 잘라 거부했다.
참 어리석은 여자였다! 그녀의 환심을 사려 애쓴 마네의 발버둥이야말로 병든 화가가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물리치고 점점 더 심해져만 가는 통증마저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는 걸 그녀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
말라르메가 마네를 보고자 벨비유에 자주 들르곤 했다. 마네는 젊은 시절부터 친구였던 말레르메가 번역한 에드가 알렌 포우의 시집 『애너벨 리』를 위해 삽화들을 제작하여 이를 선물했다. 아픈 다리의 통증을 참고 오랜 시간 작업한 삽화들인지라 말 그대로 그와의 든든한 우정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한 선물이었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견고해져만 갔다.
[1]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무도회 복장을 한 모습(Portrait en robe de bal)」, 「흰 네커치프를 두른 모습(Portrait au fichu blanc)」, 「모자를 들고 있는 모습(Portrait tenant son chapeau)」, 「모피를 두른 모습(Portrait au manchon)」의 이사벨 르모니에(Isabelle Lemonnier)를 다룬 인물화.
[2] 마네는 벨비유(Bellevue)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파리 방돔 광장에서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보석상 딸인 이사벨 르모니에(Isabelle Lemonnier)에게 홀딱 빠져 수차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편지를 통해 연정을 호소했다. 이후엔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