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우정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2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사계절



16장-4
(1880-1881-1882)



가을이 되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마네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다.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찌를 듯한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다른 치료방법이 부재했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물 치료를 통해 조금 차도가 있어 마네의 병세가 잠시 호전되었을 뿐이다!


누구도 마네의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믿은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가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탓에 잠시나마 치료를 중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귀가가 허락되었을 따름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마네는 다시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했다. 이제부터는 점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조의 사용이 한층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어찌 되었든 치료를 통해 병세가 가라앉은 것만 해도 마네로서는 한숨 돌릴 만한 다행 중 다행이었다.


아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상심에 젖어있던 말라르메를 위로한답시고 마네는 말라르메가 살고 있는 로마 가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하지만 도저히 4층 계단을 오를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마네는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2층까지 올라간 뒤에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마네는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마네는 말라르메에게 사람을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말라르메는 어린애까지 딸려 보내 마네를 부축하여 집으로 안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 부추겼다. 사정이 그러하니 병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몸조리 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말라르메가 다시 곁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네는 말레르메를 애타게 찾았다.


마네는 지난 몇 년 간을 페흐튀세와 우정을 나누는 중이었다. 마네는 페흐튀세가 여자사냥꾼이 아닌 것을 몹시 애석해하면서도 늘 그를 한 번 화폭에 담아야겠다고 벼르던 중이었다. 사자를 사냥하는 장면, 그것도 총으로, 한눈에 그림 속 배경이 아프리카임을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도록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제작하고 싶어서였다.


페흐튀세는 용맹한 모험가이자, 사냥꾼, 때때로 그림도 그리는, 마네의 정물화들과 함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을 수집하는 개인 소장가였음은 물론 정말 대단한 여행가이기도 했던 탓에 카페에서 자리를 뜰 때까지 그가 쏟아놓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박진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마네는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페흐튀세였던 만큼 보다 멋진 포즈를 취할 수 있도록 제대로 연출한 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다행히 페흐튀세가 클뤼스 대로에 이어진 길 한 모퉁이에 살고 있어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될 만큼 걸어서 그가 사는 집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어느 날 사냥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페흐튀세의 집에 도착한 마네는 집 안뜰 정원 한가운데 서있는 나무 밑에 죽은 사자가 나뒹굴고 있는 가운데 앞쪽에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끝이 길쭉하게 튀어나온 장총을 정면을 향해 겨눈 채 포즈를 취한 페흐튀세를 화폭에 담았다.


그림 속 페흐튀세는 이미 사자가 죽었는지를 확인한 뒤인지라 안심한 표정마저 짓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그림을 그린 시점이 마네가 병상에서 퇴원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는 점이다.


1881, Pertuiset, le chasseur de lion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사자 사냥꾼 페흐튀세(Pertuiset, le chasseur de lions)」, 1881.


꽤 오래전부터 허풍선이 친구가 마네에게는 주요 관심의 대상이었다. 여행을 하는지 사냥을 즐기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식민지를 드나들며 총을 들고 평화를 외치는 이 인물이야말로 참으로 아리송하기 짝이 없었다! 마네는 드디어 어느 날 마음 다잡고 고군분투하면서 가짜 사냥을 하는 장면을 담은 커다란 크기의 화폭에 진짜 사냥꾼을 등장시킨 것이다.


마네는 암스테르담 가 77번지에 아틀리에를 구한 뒤부터 주소록에 새로 이름과 주소를 적어 넣듯이 친구들 모습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그려나갔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들을 훨씬 가깝게 느끼기 위해 친구들의 초상을 그리기까지 한 것이다.


친구들은, 마네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들’은 하지만 주로 여자들이었다. 그가 새로 구상한 사계절 연작 시리즈를 위해 서로 다른 3명의 인물을 그렸는데, 아쉽게도 겨울에 해당하는 한 명이 빠졌다. 가을로 메리를 점찍었던 반면, 봄으로 엘렌을 골랐지만, 다른 두 계절을 위해서 서로 다른 두 인물을 어디서 구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참 대단한 건 마네가 자신의 삶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만 한다면 수많은 계절을 다 그려도 모자랄 판이었다!


24-1 Printemps, Jeanne de Marsy, 1881.jpg
24-2 Eté ou L'Amazone ou Cavalière, 1882.jpg
24-3 L'Automne (Méry Laurent), 1881.jpg
24-4 Hiver, Leïko(Bois de la Cambre).jpg
마네의 사계절 연작을 위한 인물화인 봄(잔 드 마흐시), 여름(승마복을 입은 여인), 가을(메리 로랑) 그러나 겨울이 빠졌다.


더군다나 마네는 그녀들을 파스텔로 그리기까지 했다. 파스텔이야말로 훨씬 부드럽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작용했다. 이처럼 부드러운 색조에 심취하여 파스텔화를 즐겨 그리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앉아서 작업하는데 그보다 더 적합하고 용이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델을 앞에 두고 유화를 그리겠다고 오랫동안 서서 작업하면 자꾸만 몸이 흔들릴 뿐 아니라 심지어 다리까지 심하게 절었던 탓에 자신의 그런 추한 모습을 여자들에게 보이는 것이 마네는 영 달갑지 않았다. 매번 손에 쥐고 있는 붓을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다리를 심하게 절곤 했기 때문에 마네는 어쩔 도리 없이 파스텔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네는 앉은 채로 무릎을 꿇고 작업을 하곤 했다. 모델들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다양한 색조의 파스텔을 잘게 부순 다음 기름을 부어 혼합한 뒤, 반죽 상태로 만들어 사용하기 좋도록 준비해 놓았다. 모델이 아틀리에에 모습을 나타내면, 마네는 그때부터 신중하게 모델의 윤곽을 잡은 다음, 마치 섬세하고도 정치한 금은세공을 하듯 그녀들을 파스텔로 부드럽게 터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질병과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