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거리 77번지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3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인터넷 잡지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인용



16장-5
(1880-1881-1882)



파리 암스테르담 거리 77번지에 자리한 아틀리에는 점점 이상야릇한 장소로 변해갔다. 공간 구조도 특이했을 뿐 아니라 희한하게도 꼭대기가 온통 유리로 덮여있었다. 천장에 난 광창을 투과한 햇빛은 실내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와 거대한 아틀리에를 빛으로 홍수지게 만들었다.


커다란 유리창엔 이웃한 건물들의 지붕들 또한 선명하게 가득 들어찼다. 건물은 음침한 안뜰로 통해 있으며, 안뜰 너머론 또 다른 화가들이 사용하는 아틀리에들이 들어서 있었다. 친구들 아니면 동료와 다를 바 없는 화가들이 그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서로 공간을 빌려 쓰곤 했다.


마네의 화실은 안쪽에 면해 있어서 거리의 소음이나 혼잡스러움과는 담을 쌓은 듯,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마네의 진짜 삶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감이 마네를 불안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아틀리에엔 수많은 발길들이 이어졌다.


햇살이 조수처럼 실내로 밀려드는 것을 그칠 때면 아틀리에에 인접해 있는 카페에서 종사하는 종업원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탁자 위에다 온갖 술들을 준비해 놓은 덕분에 음주의 향연마저 펼쳐졌다.


아틀리에는 공연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한 자리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쓸데없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도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해도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아틀리에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네가 제작한 작품들이었다.


그처럼 사방의 벽에는 마네의 온전한 삶이 다 걸려있었다. 그 모든 걸 다 펼쳐놓기에도 공간이 오히려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서로 겹쳐놓은 작품들 무더기가 온 공간을 뒤덮을 듯이 쌓여있었다. 작품들이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되는 날, 죽음과도 같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주인을 맞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마네 또한 작품의 진가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뻥 뚫린 듯한 허공 저 너머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꼭 필요하다 싶은 가구들이 자리했다. 푹신푹신한 쿠션에다가 접고 펼칠 수 있는 기다란 소파와 함께 양쪽 팔걸이가 달린 긴 의자를 비롯하여 레옹이 어렸을 적 앉곤 하던 팔걸이 없는 가죽으로 된 의자뿐만 아니라 위렐 신부가 앉던 작은 걸상마저 놓여있었다.


잘 나가는 부르주아 중산층 가정의 살림집답게 호화로운 4번지 아파트 건물과는 달리 아틀리에는 오히려 저 보불전쟁 전에 사용하던 기요 가의 아틀리에를 연상시켰다.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 한복판에 자리한 아틀리에를 오가면서 매일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던,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몹시도 추웠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가구조차 없던 시절을 아득히 떠올려주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아틀리에는 어떤 점에서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건물 안에 들어선 커다란 뷔페식당과 같이 이리저리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커다란 거실 한복판에는 목욕통마저 놓여있었고 아틀리에 곳곳의 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병들이 구색을 맞추듯 자리했을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세워져 있는 이젤들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낮 동안 친구들을 막론하고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좀 거리가 먼 지인들이나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들을 비롯하여 사교계를 주름잡는 인사들이 드나드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17시경부터 아틀리에는 완연히 카페 분위기로 바뀌면서 이웃한 카페들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정신없이 들락날락거리는 가운데 아틀리에 한쪽에 놓인 탁자에다가 맥주 조끼들과 온갖 형형색색의 아페리티프 음료들이 주인을 기다렸다. 이때부터 77번지 아틀리에는 파리의 멋이자 유행이라 할 수 있는 카페에서의 삶을 완전히 농축한 장소로 바뀌어갔다.


누구보다도 도시적이었던 화가의 세련된 풍자와 반어법에 따른 청중을 매혹시키는 우스갯소리는 아틀리에를 찾은 손님들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마네의 유쾌하고도 생기발랄함이 좌중을 휘어잡은 탓이다. 병이 악화되면서부터 마네는 자신의 병을 숨긴 채, 좌중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고자 애썼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마네를 가리켜 영국 스타일의 스포츠맨이라 불렀다. 이는 밝은 살색이던 그의 피부가 마치 햇빛에 그을린 것처럼 두드러져 보인 탓이기도 했다.


납으로 된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짚을 때마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경쾌한 울림이나 신발 고무창 바닥을 끄는 소리는 마네가 절대 실의에 빠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하기만 했다. 마네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뿐만 아니라 통증, 거기에다가 심지어 피곤이 누적된 탓에 완연히 병색마저 도는 모습조차 철저히 감췄다.


아틀리에를 드나드는 내방객 여인네들에 따라 마네의 기분은 호전되는 듯하다가도 금방 절망에 빠지듯 오르락내리락 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열망은 마네의 가슴을 불태우듯이 격렬하게 솜방망이 질 쳤다. 저 마음속 깊이에서 삶을 향락하고 싶어 하는 불타는 열의가 꿈틀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생명은 그처럼 위협받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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