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4화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앙리 로슈포흐 인물화, 1881.
16장-6
(1880-1881-1882)
야수 사냥꾼을 그리는 동안 마네는 통증을 말끔히 잊을 수가 있었다. 아내나 모친으로부터 도망치듯 빠져나와 하루 종일 77번지 아틀리에에서 소일했다.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날에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카바레나 공연장이 딸린 카페를 전전하고 다녔다. 그때마다 말레르메와 프랭이, 혹은 프루스트나 르누아르가, 또는 드가가 부축해 주었다. 동료들이 함께 해준 날은 그야말로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병이 점점 악화되면서 마네는 유머감각마저 잃어갔다. 대신 모든 게 패러디되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냥꾼의 콧수염은 연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일부러 그려 넣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연인들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때 하는 짓처럼 작가의 서명마저도 나무껍질에다가 새겨놓기까지 했다!
마네의 그림에서 정말 강렬하면서도 난폭하게 느껴지는 것은 색조들이다. 마네는 온갖 색조를 다 동원하여 그림을 장식했다. 마네는 대기의 색깔마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보랏빛 색조! 야외, 한데 대기는 온통 보랏빛이다. 바탕을 온통 보랏빛으로 가득 채운 것은 놀라우면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림에서 배경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은 전혀 확인할 수가 없다. 다만 분홍빛 색조에 뒤섞인 보랏빛 색조들 덕분으로 그림이 보다 강렬하게 다가올 뿐이다.
이 그림이 그처럼 강렬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사냥꾼의 안색이 붉은 홍조를 띠고 있을 뿐 아니라, 라일락꽃들 또한 포돗빛 색조를 띠고 있다. 미술전람회에서 다시 한번 비난의 돌풍을 일으킨 요인은 바로 그와 같은 그림 전체에 걸쳐 색조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그림에서 마네가 기대한 바다. 마찬가지로 마네는 의식적으로 관전에 의한 미술전람회 자체를 희롱하면서 동시에 야유하고자 나선 것이다. 마네의 과장된 의지 표현이 거의 조소에 가까워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미술비평가는 마네의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어느 모피상이 정신이 없어서 사자 가죽껍질을 정원에다 놔둔 것을 깜빡 잊은 듯하다.”
이 같은 평은 마네가 우스꽝스럽고도 괴상망측하게 그림을 그렸다는 걸 꿰뚫어 본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마네가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야 마네를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바탕을 온통 보라색으로 채운 작품들을 제작하는 여세를 몰아 마네는 그림 속 등장인물로 또 한 명의 주인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바로 시사평론가인 로슈포흐다. 애당초 로슈포흐를 끌어들인 이는 프루스트였다. 다음엔 마네와 너무도 가까웠던 절친인 데부탱이 로슈포흐를 77번지 아틀리에에 데리고 왔다.
파리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인사들이 대체로 그러했던 것처럼 로슈포흐 역시 빈둥빈둥하는 일 없이 소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로슈포흐는 자주 마네의 아틀리에를 드나들었다. 항상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마네 또한 그의 인물화 제작을 위해 포즈를 취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마네는 로슈포흐가 프랑스를 도망치던 때의 장면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기증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다 그러했겠지만, 로슈포흐 역시 현대성을 추구한 작품들을 좋아할 리 만무했다. 혁명의 주도세력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 역시도 관학풍에 충실한 꺄바넬 같은 화가의 작품이 맘에 들었을 따름이다!
로슈포흐는 도형장과도 같은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정치적 성향이 우파로 급선회했다. 개혁 반대세력과 연합한 그는 완고하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면모마저 보였다. 마네의 그림은 전적으로 그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네는 전혀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결국은 미술전람회에 망명자의 모습을 한 초상화와 함께 탈주 사건을 다룬 그림 두 점을 전시할 목적으로 두 작품에 매달렸다!
하지만 「작은 배를 탄 로슈포흐(Rochefort en barque)」란 그림은 예전에 그렸던 셰르부르 앞바다에서의 해전을 주제로 한 작품과도 같이 바다를 소재로 하여 다시 한번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네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작품에 해당했다.
달빛 어린 물살은 탈주자들이 올라탄 작은 배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고요한 밤의 숨 막히는 운명의 한복판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림 속의 바다는 마네의 기억 속에 자리한 바다가 아니다. 바다를 못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마네가 바다를 보지 못한 지가 너무 오래된 탓에 그는 기억과는 무관한 상상의 바다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동요하는 감정만큼이나 벅찬 회화적 감흥으로 마네는 바다를 창조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젠 더는 바다를 보러 떠날 수 없다는 막막함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그림 속 일렁이는 물살에 ‘배에 탄 이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그리면서 자신의 눈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럴듯한 낭만적 영웅조차도 가물가물해져만 간다. 결국에는 로슈포흐가 더는 영웅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이 웃을 줄 알고, 투쟁할 줄 알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심지어는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이야말로” 유행에 따라 카페 테라스에서 죽치고 앉아 헛된 영예나 들먹이는 족속이었던 셈이다.
로슈포흐가 정치적으로 한 진영에 속한 인물이라고 더는 확신할 수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사면을 받은 이들이 실질적으로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림 덕분이었다고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부분은 또 있었다. 주인공의 머리를 아주 큼지막하게 굵은 붓질을 통해 선영을 줌으로써 주인공만큼 누군지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시끌벅적한 소동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한 요인이 되었다.
피에르 프랭이 아틀리에에 들를 때마다 성미마저 까다로운 마네는 그에게 털어놓기를 “한눈에 봐도 병들어 지치고 웃음기마저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걸 잘 알고 있다네. 그런 나를 찾아와 줘서 고마우이.”
마네는 고통이 저밀 때마다 화를 내곤 했던 것이다.
[1] 1881년 마네는 망명 사건을 다룬 「로슈포흐의 탈주(L'Évasion de Rochefort)」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을 그려 로슈포흐 본인에게 기증하려 했지만, 본인의 고사로 애써 그린 그림은 아틀리에 한쪽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시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로슈포흐마저도 마네의 그림이 지나치게 현대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