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75화
16장-7
(1880-1881-1882)
프랭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마네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네는 변함없이 이젤 앞에서 한 손에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한 번은 「여름 또는 아마존 혹은 승마복을 입은 여인」을 묘사한 그림을 고치던 중에 갑자기 붓질을 멈추고는 들고 있던 붓을 완전히 내려놓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흩어진 붓들을 다시 그러모으는가 싶더니 노발대발 성질을 부리면서 붓들을 소파 위로 내던졌다. 그림 속의 주인공의 두 다리는 그 덕분에 잘려버렸다. 하지만 상체의 두 팔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프랭은 마네가 하는 짓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문 채, 마네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마네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아마존」을 고치기 시작했다. 프랭과 마네, 이 두 사람의 우정은 깊고도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모든 걸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두 점의 미술전람회 당선용 대작을 완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면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그림 그리는 걸 지속한다 해도 아주 짧은 시간밖에는 작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서서 작업해야 하는 유화작업은 도저히 감당하기조차 어려웠다.
인물이 포즈를 취할 때마다 물감 역시 다시 사용하기 좋게 직접 만들어야 했다. 튜브 물감이 그러한 수고를 덜어줄 것이 확실했지만, 마네는 튜브 물감을 사용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베르트 집을 찾았을 때, 야외에서 그림 그리면서 튜브 물감을 시험 삼아 사용한 적은 있으나 아틀리에에서 직접 만든 소스가 훨씬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할 뿐 아니라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물감을 일일이 공급받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번 안료를 직접 반죽하여 거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물감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 그에게 르누아르가 튜브 물감을 써보라고 권유하면서 르누아르는 색의 마술사답게 튜브 물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마네에게 직접 시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네는 처음에 튜브 물감을 사용하는데 상당히 서툴렀지만, 르누아르가 일러준 대로 이내 튜브 물감을 사용해 보더니 맘에 들었는지 튜브 물감을 쓰고 또 쓰면서 그 사용방법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매사에 고집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던 마네다운 그만의 방식이었다.
모델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피곤에 절어 쉽게 지쳐버리곤 한 탓에 모델들 역시 포즈를 취하는 시간 또한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모델들 모두가 다 마네와 가까운 이들이었다. 처음 시작한 그림들의 경우 화폭의 크기가 그리 문제 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완성해갈 수 있는 크기였으나, 날이 갈수록 점차 기력이 떨어져 이제는 드잡이해야 할 정도로 쇠잔해진 탓에 그 크기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로 1미터 50, 가로 1미터 70이 가장 적당한 크기였다. 관전에서 전쟁을 치르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이보다 더 큰 크기는 마네로서는 더 이상 다룰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리란 걸 그 자신도 절감할 터였다.
인간 사냥꾼인 로슈포흐와 사자 사냥꾼인 페흐튀세의 인물화를 통하여 마네는 시대의 폭력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관람객의 마음을 짓누른 건 다름 아닌 그가 사용한 보라색 색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