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80화
17장-4
(1882)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 세 번째 여인이 등장했다. 맨 처음엔 베르트 모리소 한 명뿐이었지만, 이후로 드가가 끌어들인 미국인 화가인 마리 카사트가 등장했고, 세 번째로 마리 브라끄몽이 등장했다. 판화가의 아내이기도 한 마리 브라끄몽은 예전에 모리소가 화가 집단의 옛 멤버였던 팡탱에게 먼저 인사를 시킨 뒤, 이어 모두에게 소개한 인물이었다.
안타깝게도 마리 브라끄몽이야말로 여류화가라는 달콤한 꾐에 빠져 덫에 걸려들고 만 꼴이었다. 이 때문에 괴로웠던 이는 바로 그 역시도 화가였던 그녀의 남편이었다. 남편이야말로 뜻하지 않게 자신이 느닷없이 ‘사생활 폭로 취미를 가진 자’로 취급당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견딜 수 없어했다!
뭐 전시를 한다고? 얼토당토않고 말고!
아니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마리 브라끄몽 그녀 혼자서만이 기존의 관례추종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전위예술운동에 깊이 관여하는 걸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오직 여성화가로 존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베르트는 마리 브라끄몽이 현실파악을 확실히 할 때까지 반복하여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베르트의 말을 듣고 마침내 마리 브라끄몽은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행동하느냐 아니면, 모든 걸 내던지냐의 문제였다.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나,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나,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 모두가 위험천만하다는 걸 깨달았다.
드가 혼자서 전시회를 준비한다고 동분서주했다. 앙리 꺄트르(IV)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보불전쟁 기간동안 국경수비대에 근무할 때 절친하게 지낸 바 있는 앙리 루아르 덕에 운마저 틔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개인 소장가로 변신한 앙리 루아르 역시 그림을 그렸으며, 또한 엄청난 부자이기도 했다. 앙리 루아르가 바로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를 개최할 만한 장소를 카퓌신느 대로에서 물색한 것이다.
13명의 참가자들 가운데 7명이 드가의 절친들이었다. 마리 카사트는 예상치 않은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르누아르, 세잔, 까유보트, 시슬레 그리고 모네가 개인 사정을 이유를 들어 참가할 수 없다고 기별해왔다.
주위에서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을 모색했다. 과거의 그룹 모임은 해체되었다. 까유보트 같은 경우는 인상파 화가들과는 더 이상 전시를 같이 할 용의가 없다고 선언한 고집불통의 반대세력과 뜻을 같이할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상파 화가란 수식어에 합당한 자격을 지닌 작가들은 오직 전시에 참가한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피사로 혼자만이 적대적인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존재하길 원하는 곳은 언제나 소외된 주변이었다. 그 가장자리야말로 그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드가는 처음 결성된 화가 그룹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에서 낯선 화가들을 그룹에 합류시키고자 강력히 밀어붙였다. 단지 처음 그룹이 결성되기 전부터 함께 해온 화가들과 마네가 처음 시도했던 화풍을 따라 하지 않은 화가들만 제외하곤 완전히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전시장도 잘못 정했을뿐더러 전시평 역시 기존과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거의 경멸조에 가까웠다. 13명의 작가들은 너무 비좁고 어둠침침한 공간에 17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무더기로 전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 카사트와 베르트 모리소의 작품만큼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여성들이어 만세!
인상주의는 바로 여성들을 위한 것인 듯했다. 카사트는 아주 근사한 작품인 「차(茶)」란 작품을 전시했고, 베르트는 부채에다 수채화로 그린 4점의 작품과 10점의 유화작품을 선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마네가 까무러칠만한 그림인 「화장하는 여인」이란 작품도 끼어있었다. 베르트가 출품한 이 그림이야말로 1881년 인상파 전람회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