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제식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5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나팔소리가 숲의 빈터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동료 대원들은 어느 누구 한 사람 동요하지 않았다. 롱슬랭은 기욤이 임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초조감만 더 커져갔다. 이제 더 이상 드뱅이 벌이고 있는 그 괴상망측한 주술을 지켜보는데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드뱅 역시 그만의 제식을 빨리 끝내고자 했다. 아니면 그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참이었다.


프로방스 사내가 말없이 드뱅 곁으로 다가왔다. 드뱅이 앞으로 나서면 나설수록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면서 머리를 찌근거리게 만들었다. 토가 목젖에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용병들 모두가 드뱅의 손목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드뱅의 손목에서 흘러내린 검은 피가 성배 안으로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자가 누구더냐?”


드뱅의 말에 사내들은 온몸이 굳어져갔다. 하지만 손을 쳐든 이가 있었다. 롱슬랭은 그 순간 애꾸눈이란 별명이 붙은 왕년에 사제였다가 환속한 이가 손을 쳐들고 있음을 쳐다보았다.


애꾸눈은 세상만사를 잊기 위해, 더군다나 하느님께 용서를 빌기 위해 성지로 온 경우에 해당했다. 명예와 위신 모두가 실추될 대로 실추된 탓에 절망감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가당치 않은 것을 쫓게 만들어 심지어는 대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목숨을 바칠 만큼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거나 아니면 방탕한 이들처럼 금화를 물 쓰듯 황금을 갖고 흥청망청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 견딜 수 없었는지 실추된 위신에 따른 절망감으로 가득 찬 자의식으로 모두들 괴로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번 전투를 치르기 전에 애꾸눈은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하느님과 화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혹여나 죽음을 맞이할까 봐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드뱅이 애꾸눈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손을 내밀게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앞으로 나선 애꾸눈의 팔뚝이 드러났다. 두 사내를 둥그렇게 둘러싼 이들이 만든 원은 점점 좁혀져만 갔다. 롱슬랭은 사내들이 헐떡거리며 내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번개가 번쩍였다. 뒤를 이어 숨 막힐 정도로 거친 외침이 뒤따랐다. 성배 안쪽 가장자리가 얼룩져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자네는 운명이 그렇게도 알고 싶은가?”


드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처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왕년에 사제였던 애꾸눈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지 간에 해자를 향해 갈 때는 반드시 드뱅에게 통보하도록.”


느린 동작으로 드뱅은 성배를 들어 올렸다. 무덤 저편에서 구원을 바라는 기도를 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세계의 전능함으로, 밤의 천사들을 통하여, 성스러운 아주 낮은 것을 위하여 위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어둠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소서.”


이에 대해 롱슬랭은 자칫 동의를 할 뻔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달리 고쳐먹었다. 그는 돌팔이의 객쩍은 소리에까지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이 뭘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게 대적하고 있구나. 내 봉헌물에까지 찬물을 끼얹고 있구나.”


드뱅은 성배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을 구덩이 안에 따라 부었다. 썩고 부패한 듯한 지독한 냄새가 배풍등 무리의 독풀의 방향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퍼져갔다. 롱슬랭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 핏물에 범벅이 된 구덩이 속에 있는 것 역시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영국인 사내는 성배를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하늘 쪽으로 두 눈을 치켜떴다. 나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실성한 듯 눈꺼풀이 뒤집히고 살갗은 납빛을 띄어갔다. 목소리는 뱀 혓바닥 같은 쇳소리를 내면서 입을 비죽거리자 입술이 뒤틀리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정도로 마귀 들린 사람이 아니고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롱슬랭의 뇌리를 스쳐갔다. 드뱅은 이번에는 옛날에 사제였던 남자에게 돌아서서 갑자기 주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그대의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여라! 아무도 그대를 방해하지 않으리라. 황금과 피!”


애꾸눈은 최면에 걸려있었다. 드뱅이 팔다리가 뒤틀린 꼭두서니처럼 소스라치듯 온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다른 사내들 또한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불통을 튀기듯 번쩍거렸다. 다른 대원들 또한 애꾸눈과 같은 처지였다. 드뱅은 애꾸눈의 운명을 예언하듯이 다른 이들의 운명까지도 예언하고 있었다.


야만스럽기 이를 데 없는 대원들은 그들의 잔인성을 마치 맹렬한 독성을 퍼뜨리듯 온 동네방네 퍼뜨리고 다녔다. 그들은 부들부들 떨며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꽉 움켜쥐었다. 몸은 바위처럼 굳어졌고 정신은 주술사가 만든 핏물에 섞은 몰약으로 점점 몽롱해져만 갔다.


롱슬랭은 이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도성과 아주 가까운 곳에 접근하자마자 나팔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드뱅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롱슬랭은 흥분한 대원들이 있는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돌격! 인정사정 보지 말고 쳐부숴라!”


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일제히 칼을 빼어 들고는 함께 소리쳤다.


“돌격!”


롱슬랭은 활잡이 사수들을 지휘하고 있는 대장에게 머리로 신호를 보냈다. 궁수대장은 마포 천으로 만든 바랑을 막 열던 참이었다. 대원들이 차례차례 롱슬랭 앞을 지나쳐 앞장서 갔다. 남자들은 불그스름한 두건 달린 수도사복과 같은 옷차림으로 기도하며 걸어갔다. 그들의 대장인 듯한 사내가 외쳤다.


“좀 더 빨리, 나의 악마들아!”


남자들은 각자 두건이 달린 소매 없는 수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 위로 뒤집어쓴 채, 진홍색의 굵은 줄무늬가 들어간 얇은 천으로 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천에는 거무스름한 농포가 밤하늘의 별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대장 앞을 지나쳐가는 그들은 투박한 모직물로 만든 뾰족한 두건을 뒤집어쓴 채였다.


프로방스 사내는 웃음이 나왔다. 색이 칠해진 복면들은 얼굴에 피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그들의 용모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면서 써늘한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딱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밤에는 이런 분위기가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마저 끼어들었다.


반은 사람이고 반은 악마인 귀신들인 그가 지휘하는 무리들은 이미 끝까지 목숨을 바쳐 싸울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다.


드뱅은 간신히 일어섰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했다. 롱슬랭은 드뱅의 두건 위쪽을 움켜쥐고는 사납게 잡아당겼다.


“너 또한 대열에 합류해라.”


롱슬랭은 드뱅의 얼굴에 얼굴을 바싹 디밀었다. 땀으로 범벅 된 드뱅의 얼굴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리고 주술은 이제 그만!”


주술사는 아무 대답 없이 오직 눈짓으로만 응답했다. 사내에게는 근본적으로 병적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또한 프로방스 남자는 이 사내를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돌연 롱슬랭은 드뱅을 놔주었다. 두 사내는 서로 쳐다보기만 하다가 영국인 사내가 먼저 뒤로 물러서서 멀어져 갔다. 롱슬랭은 웃음기를 머문 시선으로 그를 흘긋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직 확신을 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롱슬랭 역시 두건이 달린 수도사 복장을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구덩이 속에는 양치기의 시체가 있었다. 전날 밤 대원들이 포로로 잡았던 나이가 얼마 안 된 여자애였다. 여자애는 사지가 잘린 채였다.


롱슬랭은 여자애를 지켜줄 만한 어떠한 방책도 없었다.


롱슬랭은 천천히 꼭대기가 뾰족한 두건을 벗었다. 하마터면 불쌍한 여자애를 위해 성호를 그을 뻔했다.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또한 악마가 되어갔다. 악마의 수도사 복을 입고 있는 그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몰골을 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땅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천벌을 받은 이의 생김새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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