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화
제1부 1-4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쿠비르는 횃불을 아래로 비추고 성벽을 샅샅이 살폈다. 혹시나 적군이 던진 쇠갈고리 같은 것이 돌에 걸려 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기독교 돼지새끼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잔꾀를 부리며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 세력 간에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와 황금에 굶주린 기독교도들은 온 지역을 약탈하고 다니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시에는 가차 없이 살육을 저지르곤 했다.
분노심이 가라앉질 않자 쿠비르는 땅바닥에 가래침을 확 내뱉었다. 그러자 경련이 온몸을 훑어댔다. 어제저녁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다윗의 망루 근처에서 쿠비르는 환전상들이 나누는 괴상망측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환전상들은 긴장한 얼굴로 귀신들(djinns : 아랍 신화에 나오는 신령, 귀신)이란 말을 반복하여 되풀이 이야기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악마인 무리들이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불쌍한 이들과 영혼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한다는 것이었다.
쿠비르는 마른 나뭇가지가 일으키는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총안 근처로 슬며시 다가가서는 귀를 기울여보았다. 나뭇가지가 꺾이면서 생기는 똑같은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쿠비르는 사람들께 위험신호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마저 쿵쾅거렸다. 사람의 형상으로부터 사나운 금수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상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알라 신께 간청하고 또 간청했다.
다시 한번 동정을 살폈다. 이번에는 확실히 의심이 가는 구석이 들었다. 발자국이 무겁게 성벽 아래의 무성한 덤불을 헤치며 나아가는 소리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뿔 나팔을 꺼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손끝에 마호메트의 잠언을 새긴 상아가 만져졌다. 피가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뿔 나팔을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대보았다. 부친은 물론이고 먼 조상 때부터 사용하던 뿔 나팔은 입으로 부는 입구가 은으로 된 탓에 차가운 감촉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성벽 아래쪽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야말로 쿠비르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엄청난 소음이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발겨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