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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Aug 18. 2023

프랑스 성화(聖畫)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86화

[대문 사진] 애귈레 성 미카엘 성당


프랑스에서 로마네스크 회화가 꽃피워진 지역은 서로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네 군데의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곳이 벽화가 제일 많이 자리 잡은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탁월한 작품성에 바탕을 둔 벽화들이 밀집해 있는 프랑스 서쪽 푸아티에와 투르를 비롯한 그 일대일 것입니다. 이 두 도시들은 로마네스크 회화가 일찍 개화한 중심지였으며, 또한 그 산실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베드로 성인>, 생 마흐탱(Saint Martin) 성당 프레스코 화(부분), 12세기 초, 노앙 비크(Nohant-Vic).


12세기 초 노앙 비크(Nohant-Vic)에 들어선 생 마흐탱(Saint Martin) 교회에 그린 프레스코 화는 정말 우연히 발견된 것입니다. 1849년 이르러 벽에 칠한 재료들을 발굴하면서 옛 수도원 교회에서 제작한 로마네스크 벽화가 마침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색조는 아주 빈약할 정도로 소박하지만, 황톳빛이 여러 색감의 뉘앙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베드로 성인의 얼굴 묘사는 대단히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띤 것으로 일찍부터 양식화된 기법이 활용되었음을 암시해 주기까지 합니다.


푸아티에는 건축과 조각에서 으뜸이고, 투르는 세밀 화가들의 공방으로 유명합니다. 따방의 지하교회 둥근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들이 이를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죠. 이뿐만 아니라 생태낭 쉬흐 셰흐, 몽투와흐 쉬흐 르 루아르의 생 질르, 비크, 브리내 그리고 생 사뱅 쉬흐 갸흐탕프 등에서도 같은 시기의 프레스코화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프레스코화들은 카롤링거 왕조시대의 벽화들로 출발한 전통적인 방식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이 가운데 생 사뱅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는 프로스페흐 메리메의 표현을 빌자면, “프랑스 벽화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진귀한” 천장화라 할 수 있습니다.


프레스코 벽화는 지하교회와 정문 현관, 중앙 회중석의 둥근천장 전체에 걸쳐 곳곳을 장식하고 있죠. 이 천정화들은 한 사람의 손으로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정치한 묘사와 색감은 회중석 천장에서 빛을 발합니다. 지하교회에 채색된 마치 절제한 듯한 아주 소박한 색상들은 대단히 도식적인 방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정문 현관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 화에서는 윤곽선이 아주 강하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밝은 색조를 띠기까지 합니다.


생 사뱅의 프레스코 화들 가운데 특히 중앙 회중석 둥근 천장에 그려진 천장화는 구약성서에서 취해진 이야기들을 각각의 장면들로 표현한 것입니다. 회화적 경향이나 장면 구성에서 프랑스 서쪽 지역에서 제작된 프레스코 화들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죠. 이따금씩 프레스코 화를 제작한 예술가가 혹시 ‘자연주의자’[1]에 속하는 인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비엔느(Vienne) 생 사뱅 쉬흐 갸르탕프(Saint Savin sur Gartempe) 중앙 회중석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


생 사뱅의 중앙회중석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서사적 구성에 방점을 찍은 구약의 장면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사적 구성은 독일의 콘스탄츠 호수에 있는 라이헤나우 섬에 자리한 오버쩰 대성당의 프레스코 화들과의 연계 선상에 위치하며, 카롤링거 왕조시대에 제작된 수사본들의 회화적 경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고기잡이의 기적>, 삼위일체 수도원 교회 참사회실 프레스코 화, 11세기 말, 방돔(Vendôme), 프랑스.


위에서 보듯 1032년 제오흐루아 마흐텔(Geoffroy Martel)이 창건한 옛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는 로마네스크 벽화는 조각난 상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서쪽 지역에서 가장 탁월하게 제작된 작품일 것입니다.


이와는 장식적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번째 회화 그룹이 프랑스의 중부 동쪽 지역에서 활약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 소속의 예술가들에 의한 벽화 스타일이 그에 해당하는데, 이를 가장 잘 입증해 주는 예가 베흐제 라 빌의 수도사들의 성당입니다.


성당은 클뤼니의 수도원장이었던 위그 드 스뮈흐(1003년 영면) 때 지어져 그 후계자들에 이르러 교회 후진에 프레스코 화가 완성되었죠. 천장화는 아주 보존이 잘된 경우에 속합니다. 둥근 천장 위 정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 그리스도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성 베드로에게 율법이 적힌 두루마리를 건네고 있습니다.


「율법의 전승(Traditio legis)」, 수도사들의 성당 둥근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는 1100년경에 완성되었습니다. 베흐제 라 빌(Berzé la Ville).


정 가운데 후광에 둘러싸인 옥좌에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있고 그 둘레로 열 두 사도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 베드로에게 새로운 율법을 상징하는 펼쳐진 두루마리를 건네고 있습니다. ‘율법의 전승’이란 주제는 로마네스크 예술에서는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 게다가 수많은 석관묘들이나 초기 기독교 시대의 모자이크 화에나 등장하던 주제였죠.


「율법의 전승(Traditio legis)」이란 도상(圖像)은 성베드로에게 교회에 대한 권한이 이양되고 있음을 상징하며, 따라서 그의 후계자들이 앞으로 로마의 교황이 되는 자들로써 계승된다는 걸 암시하고 있죠. 로마 교황의 등장과 함께 클뤼니 수도사들 전체가 로마의 교황권을 지켜줄 것까지도 예시하고 있습니다.


베흐제 라 빌 수도원 교회 내진 성가대석 이쪽저쪽에는 뱅상 성인과 블래즈 성인의 순교 장면을 담은 프레스코 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2세기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레스코 화들의 정확한 연대는 아직까지도 논란거리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잔틴 벽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프레스코 천장화 제작을 위하여 클뤼니 수도원장이 혹시 몬테 카씨노의 예술가들을 초청하지는 않았을까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순교 장면을 다룬 베흐제 라 빌(Berzé la Ville) 수도원 교회 내진 벽화.


그러나 얼굴 묘사가 대단히 표현적이라는 점에서 외연상으로 또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받지는 않았을까 추측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신에 의한 초월성보다는 인성 중심의 표현을 지향했던 자연주의자들의 묘사가 떠오르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회 내진의 서쪽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들은 투르와 푸아티에의 첫 번째 그룹의 예술가들이 제작한 프레스코 화들보다도 장식적 분위기가 훨씬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 두 번째 그룹에 의해 제작된 프레스코 화들은 생 셰프 앙 도피네 수도원에 그려진 한 순간에 눈길을 사로잡는 프레스코화들에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묵시록>, 생 셰프 앙 도피네(Saint Chef en Dauphiné) 성당 천장화.


세번째 그룹에 속하는 지역은 비잔틴 프레스코화들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오베르뉴 중부지역입니다. 특히 생 쥴리앙 드 브리우드를 들 수 있죠. 회화적 구성의 흔적들은 교회 중앙 회중석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13세기 초에 제작된 놀라울 정도로 눈부신 프레스코 화들은 길게 이어진 남쪽 측랑들에 위치한 특별석에 그려져 있습니다. 짙은 감색 바탕에 각자 제자리에 운집한 천사들을 담은 프레스코 화가 눈길을 끕니다. 옛 수녀원 건물이었던 라보디유(Lavaudieu) 식당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들 또한 앞에서 언급한 프레스코 화들과 같은 기법으로 매우 고심하여 굵은 선으로 정치하게 마감했습니다.


<천사들>, 생 쥴리앙 드 브리우드(Saint Julien de Brioude) 수도원 성당 프레스코 화.


이 프레스코 천장화들은 12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그 한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둘레로 4명의 복음사가들을 상징하는 형상들(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에 둘러싸인 모습입니다. 아래쪽 그림은 천사들에 둘러싸인 마리아를 표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 쥴리앙 드 브리우드(Saint Julien de Brioude) 프레스코 화.


르 퓌 앙 블래 대성당 또한 비잔틴 벽화들가운데 아주 특별한 일련의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회중석아래 커다란 계단에 바로 인접한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들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새로 들어선 두 개의 성당들에도 벽화들이 수놓아져 있죠.


르 퓌 앙 블래(Le Puy en Velay) 대성당의 프레스코 화.


이 두 곳에 그려진 벽화들은 무덤 속에 잠든 여인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더불어 성녀 카타리나 알렉산드리아의 순교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특별석에 그려진 벽화들은 신학상의 주제들로 채워진 장면들로 이어지고 있어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르 퓌 앙 블래의 생 미셀 대귈레 성당에는 서기 1천 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최후 심판을 주제로 한 벽화들이 남아있습니다. 외연 상으로 카롤링거 시대의 작품들에게서 영향받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회중석 벽면에 그려진 벽화들은 그보다 훨씬 이후(12-15세기)의 것인데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이 또한 순교자들을 묘사한 프레스코 화입니다.


애귈레 성 미카엘 (Saint Michel d’Aiguilhe) 성당 프레스코 화.


네번째 그룹은 피레네 중부와 동부지역에서 발견되는 프레스코 화들인데 두 지역의 벽화들이 서로 동일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 번째 그룹에 속한 교회들을 열거하면, 생 마흐탱 드 훼놀라(Saint Martin de Fenollar), 레클뤼세(Les Cluses), 발스(Vals), 생리지에(Saint Lizier), 생플랑꺄흐(Saint Plancard), 생타방탱(Saint Aventin) 등입니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프레스코화들은 사슬로 이어진 피레네 카탈루냐 지역에서 제작된 일련의 회화적 경향에 아주 근접해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요한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원로>, 1125년경에 제작된 생 마흐탱 드 훼놀라(Saint Martin de Fenollar) 성당 프레스코 화(부분).


‘훼놀라의 장인(마스터)’이 눈에 띌정도로 굵은 선을 사용하여 묘사한 벽화로써 빨강, 노랑의 색조를 주로 사용하여 더욱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화가는 레 클뤼세(Les Cluses)의 생 나재흐(Saint Nazaire) 교회의 프레스코 화도 완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프레스코 벽화는 단지 몇 조각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1] 자연주의자는 실제의 사물과 현상을 자연세계의 범주에서 파악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르 퓌 앙 블래(Le Puy en Velay)는 오랜 옛적부터 순례자들이 모여들던 성지였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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