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7화
[대문 사진] 카발라(Kabbala)의 세피로트(Sephiroth)
제2부 26-1
예루살렘
1232년 11월
우물
냄새가 롱슬랭을 깨웠다. 맹렬하면서도 무언가가 부패하는 듯한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냄새였다. 오랫동안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며 살아온 그에게서 떠나지 않고 나는 냄새였다. 시체가 썩어가면서 풍기는 냄새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따라다니며 친숙해져 갔다. 그러나 지금 그의 코를 후벼 파는 냄새는 그와는 약간 다른 미묘한 느낌을 주었다. 냄새는 무언가가 한데 뒤섞여 있는 흙물 구덩이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롱슬랭은 두 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휘둘러보았지만 컴컴한 동굴 속에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차라리 일어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돌로 칸막이를 쳐놓은 벽을 무르팍으로 힘껏 내리쳤다. 우물 꼭대기를 향해 욕지거리를 소리쳐 내뱉기도 했다. 그가 쏟아낸 욕설들은 돌벽을 타고 반향하면서 메아리쳤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인 물이 찰랑거리자 참기 어려운 썩은 내를 풍겼다. 이제 더는 썩고 고인 구렁텅이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한때 그는 온 마을을 휩쓸고 약탈하면서 다니던 사나운 악마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그의 단단하기만 한 신체는 흐물흐물해져 갔으며 허약해져만 갔다. 신과 교황 특사에 빌붙어 있는 족속들이 그에 대한 징벌을 참으로 확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롱슬랭은 무르팍을 문질러댔다. 무르팍이 돌벽에 부딪히면서 긁혀 찢어진 상처가 물이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소리 지르듯 내뱉은 욕지거리에도 불구하고 우물 꼭대기 위쪽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들이 랍비를 우물 안에 던져 넣었을 때 함께 따라 내려온 횃대를 밝힌 희미한 불빛 아래 얻어터진 랍비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부터 이미 교황이 보낸 이들의 잔인한 수법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이 포로들을 간단하게 재빨리 처리하는 잔인한 수법은 벌써 국왕이 머물고 있는 궁정을 포함하여 예루살렘에서 천 리외나 떨어져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죄수들을 학대하고 괴롭힌다는 소문은 감옥을 지키는 간수들에 의해서 퍼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지옥 같은 감옥에서 죽어나간 남자들은 얼마나 될까? 여자들은? 그들 가운데 신자는 또 몇 명이나 될까? 참된 신앙으로 신을 섬기다 사라져 간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수를 헤아린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롱슬랭은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적어도 누군가를 살해할 때 빨리 죽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혹함은 확실히 인간이 벌이는 잔혹한 짓을 능가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리포트, 클리포트…….” [1]
롱슬랭은 웅얼거림이 마이모네스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웅얼거림은 마치 기도 소리같이 들렸다. 희한하게도 구슬픈 노랫가락에는 불안에 떨고 있는 존재의 어떠한 울림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노인네가 읊조리는 어조에는 귓가를 적시는 부드러운 음조 같은 그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롱슬랭은 그에게 다가갔다.
“너는 지금 네 신에게 기도하는 건가? 유대인?”
“카발라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저 어둠의 깊은 심연에 다다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네. 그곳은 사마엘 왕국[2]이고 클리포트 제국이며 온통 축축한 상태이면서 음울하고도 불길한 곳이기도 하다네. 빛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아니 그 이상으로 희망, 아름다움, 티페레트, 세피로트[3] 등…….”
그러자 롱슬랭이 비웃었다.
“그까짓 빛에 대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참 미친 짓일세 그려. 다음번에 그들이 우물 뚜껑을 열 때는 나를 고문하기 위해서일 것이며 다음번엔 네 차례야. 너는 여기 갇혀 있다가 죽는 거야.”
랍비의 읊조림이 점점 느려져만 갔다. 거의 잔잔한 울림 같았다.
“누가 자네에게 내가 살아있을 것이라 말하던가? 그렇다면 내가 다른 이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인가?”
순간 마이모네스에게 얼핏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몸을 기울이고 성스러운 문헌들을 들여다보며 양초의 희미한 불빛 아래 진리를 탐구하는 중이었다. 프로방스 사내는 그가 대답하기 전에 항상 생각에 잠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유대인의 믿음이라는 것이 영 이상하기 짝이 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넌 수수께끼 같은 말만 지껄여대는군.”
“완전한 우주란 수수께끼일 뿐이지.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그걸 풀 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네. 마찬가지로 타락하여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이 신비의 열쇠와 같은 표지들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거지.”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가? 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천벌을 받게 되는걸?”
마이모네스가 어둠 속에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직 하느님의 심판을 알고 있는 기독교도들만의 특권처럼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자네만큼 긍정적이질 못하다네. 대체 내 영혼이 어떻게 된다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 세상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 사명을 열심히 추구한다고는 생각한다네.”
“내 경우에는 타협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롱슬랭이 비웃었다.
랍비는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뼈마디가 튀어나온 손을 프로방스 사내 손에 얹었다.
“그대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네. 이제 단지 시작일 뿐이야.”
우물 위쪽에서 슬그머니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돌에 닿아 긁히는 아주 낯익은 소리였다. 흔들리는 불빛 또한 짙은 어둠을 서서히 밝혀갔다. 롱슬랭은 눈이 부신 탓에 고개를 돌렸다. 규칙적으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내려오던 나무판이 천천히 균형을 잡아갔다. 그 위에 간수와 무장한 병사 두 명이 타고 있었다. 거친 목소리가 그중의 한 명에게서 튀어나왔다.
“롱슬랭! 이제 네가 진술할 때가 되었다.”
그러자 비웃음 소리가 뒤따랐다.
“교황 특사가 너의 자백을 듣고자 하신다.”
[1] 유대 신비교인 카발라에서 사용하는 용어.
[2] 사마엘은 신의 독을 의미하며 탐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3] 유대 신비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생명의 나무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