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지리산자락이 보이는 마을 안쪽에 있던 건일약국. 우리 할머니가 일하시던 약방이름이다. 할머니가 살던 마을은 도로 한편에 경운기와 농기계들이 늘 보이고, 도로 귀퉁이에는 짜장면집 할머니가 있으며, 그 옆집은 동네슈퍼,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철물점과 집들이 듬성듬성 있는 곳, 논과 밭, 산들이 어우러진 그런 곳이었다. 윗마을에는 흥부가 태어나 살았다는 흥부마을이 있었고, 그 아랫마을에는 놀부마을이 있었다. 놀부마을에 살던 아저씨들이 정말로 못된 분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수십 년을 마을 약방할매로 동네 사람들의 크고 작은 아픔들을 해결해 주던 주치의였다.
약방 현관문에는 '당기셔요'라는 삐뚤삐뚤한 글씨체의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할머니가 스티커를 약방 안쪽에서 붙이다 보니 막상 문을 여는 사람은 그 글씨가 거꾸로 보였다. 약방 안으로 들어가면 약들이 듬성듬성 진열되어 있는 유리진열대가 있었고, 한쪽 벽에는 언제 개봉했는지 알 수 없는 돌고래 영화포스터가 누렇게 변한 채로 붙어있었다. 약방에서 문 하나를 더 열고 들어가면 할머니 집이었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는 하얀색 아주 작은 냉장고가 있었고, 그 안에는 시원한 박카스가 들어있었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박카스를 까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달콤 시원한 박카스가 목으로 넘어가면 약방할매가 우리 할머니라는 게 새삼 자랑스러웠다. 할머니가 파시는 거니까 양심적으로 하루에 두병까지는 안 먹었다.
"끼익~! 약 있당가요~?"
약방 현관을 열고 들어온 동네 분들이 늘 할머니를 찾던 인사말이었다. 그럼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가서
"어디가 안 좋으셔요~?"
라고 물었다. 약방할매를 찾는 이들의 아픔은 여러 가지였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픈 사람, 무얼 잘못 먹었는지 소화가 안되던 사람, 농사일을 하다가 작은 생채기들이 생겨나서 약을 발라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증세 몇 마디를 듣고 할머니는 이거 먹어보라고 약을 내주었고, 약을 받아 들고나간 사람들 중에 신기하게도 다시 와서 계속 아프다며 할머니를 찾는 사람들은 없었다. 할머니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주방 안쪽에서 식사준비를 할 때 "약 있당가요~?"가 들리면 할머니 대신 내가 나가서 "어디가 안 좋으세요~?"를 했다. 내가 약을 내줄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가 올 때까지 짧은 시간이라도 벌어드린 것 같아서 좋았었다. 할머니는 이따금씩 약을 조제하기도 했는데, 증상에 맞는 약을 골라 넣고 색종이 크기만 한 흰색 종이에 끼니당 먹어야 할 약들을 접어서 내줬었다.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지면 마을에는 까만 하늘에 가로등 불빛만 몇 개 보였고, 그때는 약방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서 약방 등 스위치도 내렸다. 약방의 스위치가 내려가면 약방 한편 천장에 있던 박제된 매와 살쾡이가 괜히 더 무서웠다.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았었다. 지금도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내는 엄마의 음식솜씨는 전부 할머니에게서 왔다고 했다. 할머니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멸치 몇 마리에,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큼지막한 두부를 빨갛게 지진 두부조림이었다. 그 두부조림에다가 짭짜름한 김까지 있으면 밥 두 공기는 뚝딱이 었다. 할머니는 가장 좋은 밥공기에 미리 밥을 꾹꾹 눌러 담아서 가장 따뜻한 방바닥에 놓고는 이불로 덮어두었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아빠에게 따뜻한 밥을 내주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었다. 밤이 되면 할머니는 너무 무거운 나머지 편하지만은 않았던 고급 솜이불을 꺼내서 덮어주었고,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밤늦은 대화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자곤 했었다. 아빠가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늘 깊이 자지는 못했었다. 나는 심심해지면 누나하고 할머니 집 옥상에 올라가 보곤 했었다. 옥상에 올라간다고 재미난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심함이 조금은 달래지긴 했다. 할머니는 약들을 담았던 박스나, 약봉지들, 조제약을 넣던 종이를 늘 모아두셨다. 나랑 누나가 놀러 가서 심심해하면 할머니는모아두었던 종이류들을 마당 중앙에 놓고 태우는 임무를 주셨다. 아빠가 불쏘시개로 불을 붙여주면 나무 막대기로 종이들이 흩날리지 않게 잘 모아서 태우는 게 우리의 임무였다. 종이들이 거의 다 태워질 때 즈음 사그라들락 말락 하는 불씨에 다른 종이를 올려서 다시 불을 커다랗게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그때는 옛날이라 종이를 그냥 태워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 집에는 커다란 개가 있었는데, 누렇고 잘생긴 개였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밤이 되면 어두컴컴해지는 할머니 약방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호위무사였다. 개가 지내던 커다란 창고 앞에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그 텃밭에서 할머니는 상추, 고추, 배추를 길렀고 잘 자란 것들을 신문지로 싸서 우리 집이랑 이모네 집에 보내줬었다. 할머니가 보내주는 커다란 박스에는 야채 말고도, 양념들, 음식들, 약들이 들어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은 통닭도 한 마리 들어있었다.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니까 통닭은 다 식어서 튀김옷이 눅눅해져 있었지만 그날 저녁밥은 할머니가 보내주는 통닭으로 행복했었다. 또 가끔은 할머니가 약을 팔아 번 돈도 들어있었는데, 커다란 천 원짜리, 만 원짜리 몇 장이었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저녁이 되어 인사할 때면, 할머니는 분홍색 고무신발을 신고 나와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빠에게는 이 말도 잊지 않으셨다.
"시나브로 가..잉? 시나브로"
천천히 가라는 할머니의 안부인사였고, 안전하게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놀러 오라는 마음인사였다. 아빠 차가 출발해서 할머니 집에서 멀어질 때 뒤를 돌아보면 약방 앞 도로에 할머니는 늘 우두커니 서 계셨다.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지금은 할머니가 안 보인다. 먼 곳으로 가셨으니까. 할머니는 그 먼 곳까지 시나브로 잘 가셨겠지? 할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