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날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오후였다. 아이들이 가까이에 사는 사촌 동생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지만, 우비를 입고 나가 걸으며 비 맞는 걸 느끼게 해 줄 요량으로 나가자고 했다. 신이 난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외출하기 전 준비들을 시작했다. 화장실로 가서 쉬를 하고, 신발장에 앉아 신을 찾아 신고, 우산을 챙겼다. 어? 그런데,
"아빠! 우산 어딨어?"
"아 맞다! 하임아. 하미 우산이 아빠 차에 있다. 오늘은 아빠가 하미가 들만한 다른 우산 줄게!"
아이들 우산이 차에 있는 바람에, 조금 무겁긴 했지만 그래도 작은 사이즈의 우산을 하이미에게 챙겨줬다. 내 옆에 서있는 하성이에게서 당연히 자기도 우산이 필요하다는 초롱한 눈빛이 가득 느껴졌다. 하미에게 우산을 줬을 때 하성이 것도 필요하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
"아빠! 하성이도 우산 필요해!"
"하성아. 지금 하성이가 쓸 수 있는 우산이 이것밖에 없는데 들고 갈 수 있겠어? 우비를 입었으니까 굳이 우산 안 써도 돼"
"아니야! 할 수 있어! 들 수 있지? 봐바."
"그래! 그럼 하성이가 선택한 거니까 끝까지 한번 책임져봐~!"
결국 우산을 득템 한 하성이가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하성이와 작은 실랑이를 벌였지만, 이미 우산을 들고나갈 몸과 마음의 준비를 모두 끝낸 하성이에게서 우산을 내려놓게 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성이는 조금 걷다가 힘들다고 할 테고, 우산을 어찌할 줄 몰라 아빠한테 맡길 테고, 안아달라고까지 할게 분명했다. 그러던 찰나 하성이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빠! 그래도 우리 즐겁게 가자! 히!"
아들의 이 한마디에 우산이 주는 불안은 금세 잊혔다.
"오케이! 출바알~!!"
비가 내리며, 바람도 간간이 불었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아이들은 걷다가 보이는 빗물이 모여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 위에서 점프하고, 발로 밟으며 그날의 기억을 만들어갔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빗소리 하고 섞여서 내게 들려왔다. 비가 주는 즐거움을 느껴갈 무렵, 하성이가 들고 있던 우산을 접어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하성이에게 물어봤다.
"하성아. 도와줄까?"
"응."
나는 우산을 접어서 하성이에게 건넸다. 하성이는 자기 키만큼 오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어가며 걸었고, 다시 버튼을 눌러 우산을 쫘악 폈다. 하성이는 우산을 들고 걷는 게 힘이 들면 다시 우산을 접으려고 낑낑 애를 썼다. 책임져보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혼자서 해내보려고 무진 노력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괜히 짠해 보였다. 나는 끝까지 이 말을 아꼈다.
'이리 내. 아빠가 우산 들어줄게.'
우리를 다시 멈춰 서게 한 건 하임이의 도움요청 때문이었다. 나는 하임이에게서 우산을 건네받아 접어주면서 말을 꺼냈다.
"얘들아! 아빠 봐바. 아빠가 안 된다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우비 입고 우산까지 들고 가면 힘들 것 같아서 아빠가 안된다고 했던 거야. "
아빠 말에는 무언가가 담겨있다는 내 말이 빗소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자기가 선택한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고, 아빠가 안 된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도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빗길을 누리고 있었다는 걸 다시 일깨워준 것은 역시 아비가 꺼낸 말 한마디였다.
"아빠! 우리 그래도 재밌는 오후 보내자!"
"오! 그래! 그러자! 다시 출발!!"
우리가 걷던 길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비 웅덩이는 여러 개였다. 아이들이 밟고 뛰던 비 웅덩이가 많아지는 만큼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재미난 기억도 점점 쌓여갔다.
'아! 그런데 쓰다보니, 끝까지 우산을 책임지려고 낑낑 애를썼던 아이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칭찬해주지 못했네. 꼭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