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선택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다는 일이다.
일본에 정착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됐다.
새로운 것을 얻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천천히 놓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가진 게 없을수록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으로 떠날 때,
나는 스스로를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 1~2년 일본에서 살아보고,
그다음 나라로 떠나야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느새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한국에는 1년에 많아야 한 번,
어쩔 때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사이 부모님의 흰머리는 늘었고,
명절과 친구의 결혼식, 지인들의 생일 등은
휴대폰 화면으로만 볼수있게 됐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던 일상을 잃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국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일상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지워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인’으로서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루 대부분을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일본식 사고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럴수록 한국의 방식이 낯설어진다.
그러나 뿌리가 한국이기에,
완전히 일본인이 될 수도 없다.
정체성을 하나의 직선이라 하고
양 끝에 한국과 일본이 있다면,
나는 그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완전한 한국인 같지 않고,
일본에서는 당연히 일본인이 아니다.
어디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한 채,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머물러 있다.
가끔 그 모호한 상태가 외롭기도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인정하게 된 이후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
물리적인 거리는 마음의 거리를 만든다.
가까웠던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정말 소중한 사람 몇 명만 남고,
나머지 관계들은 조용히 정리된다.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멀어지는 사람에게
노력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싫어서 멀어진 건 아니다.
그저 살고 있는 사회가 너무 달랐고,
그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마저
어느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여전히 따뜻함을 느낀다.
그들도 나와 같은 것을 느낀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일본에 정착하면서
많은 걸 포기했다.
불편함 없는 생활, 가족의 온기, 오래된 관계들.
그리고 한국 특유의 빠른 행정 처리와 통신 환경까지.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후회는 없다.
그 모든 포기 끝에서
나는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삶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내 속도대로 나만의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포기는 손해나 상실이 아니라
선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선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