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무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며칠 전, 한국에서 부모님과 동생이 도쿄로 놀러왔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얼마 전에 태어난 우리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들의 현지 가이드로서 최선을 다했다.
도쿄 곳곳을 안내하고, 식사 장소를 예약하고, 아기의 컨디션을 살피며
가족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작년 이맘때 처음 부모님을 일본에 모셨을 때보다
이번 여행은 아이가 있음으로 인해 안내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그럼에도 손주와 조카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동생의 얼굴은
세상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게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이구나.’
일본에 온 지 어느새 8년째다.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 동료들을 봐왔지만,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을, 가족을 그리워하며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수없이 많은 충돌과 고난이 있었지만,
“이건 여기가 일본이라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지구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켜왔다.
심지어 “나는 지금 일본에서, 이방인으로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는 묘한 만족감까지 느끼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그 시절의 나는 조금 오만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료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힘들 걸 모르고 왔나?
저런 사람들은 한국에 돌아가도 결국 또 도망치며 살겠지.”
당연히 가족이 소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건 언제나 ‘일’이었다.
회사에서의 성과, 일본에서의 커리어.
그게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이번 가족의 방일을 통해 처음으로
마음을 크게 흔들렸다.
손주를 안고 웃는 부모님의 모습,
조카에게 장난감을 건네며 밝게 웃는 동생의 얼굴.
그들이 여행 내내 보여준 웃음과 온기,
그리고 우리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비우고
직장과 가게를 모두 쉬며 찾아와 준 그 마음.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선물 꾸러미를 건네며
“이건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 하고 웃던 부모님의 목소리.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
가슴 한가운데에 남았다.
아직 구체적인 답은 없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가족과의 거리’를 새롭게 느꼈다.
일본에서의 삶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가족을 등진 채로 이어가고 싶지 않다.
가끔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그들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아마도 이제서야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