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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택시 Apr 23. 2018

[출근 6일째] 버텨라 그리고  이겨내라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다”_벤자민 프랭클린

#1. 여의도 금융감독원 기자실


기자생활한 지 반년이 지났다. 그간 열심히 공부한 덕인지 이제 주식시장이나 증권사 관련 기사를 봐도 제법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나는 수학을 굉장히 못했지만 업무상 재무제표를 보기 시작하다보니 기본적인 데이터 정도는 가공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매일같이 증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가연계증권(ELS)에 관심이 갔다. 아마도 증권부에서 시작하는 많은 신입 기자들이 가장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보도자료가 ELS 관련 일 것이다.


ELS는 특정 자산에 기반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 중 하나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구성하고 주가가 일정 기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약정된 쿠폰(이자)를 받고 청산되는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ELS는 이와 같은 스텝다운형 구조가 많고 기초자산과 ELS유형도 다양하게 확대되는 추세다.


내가 언론에 발을 들이고 나서 가장 먼저 취재해 올린 기사도 ELS다. 당시 나는 ELS 수익률에 주목했다. 기억하는 바로는 2015년에도 여전히 저금리 시대였다. 당시 기준금리가 1.50%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초고위험’으로 분류되는 ELS의 수익률(연환산 기준)이 은행 예금보다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ELS가 최대 몇 %의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수익률은 굉장히 낮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바로는 연평균 수익률 3~4% 수준.


ELS는 물론 기초자산으로 구성한 종목이나 지수의 수익률을 따라가지만 해당기간 기초자산이 얼마나 올랐는지, 또 원금손실기준(녹인)에 진입한 적은 없는지에 따라 투자자별 체감온도가 다르다. 지금은 기사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금리 시대 대안이라고 하기엔 수익률이 너무 부진해 차라리 은행 예금이 낫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자들은 알겠지만 소위 ‘까는 기사’는 항의 전화로 이어진다.


○○증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 예 과장님...”


“네, 기자님 지금 통화 가능하시죠?”


역시 내가 나간 기사의 반론 전화였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반론보다는 항의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기자님, 지금 제목에 저금리보다 낮다고 쓰셨는데 보통 금리를 얘기하면 연 기준으로 얘기 하잖아요. 근데 쓰신 데이터는 지난달 상환된 ELS 수익률을 쓰셔가지고 이게 좀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아서요”


“아...예 과장님 그런데...저금리가 1.5%든 ELS 쿠폰 수익률이 1.5%든 둘 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표현상 비교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실제 상환된 ELS수익률 보면 약속된 수익률 보다 못한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증권사에서 제시한 쿠폰 수익률과 실제 수익률 차이가 커서, 투자자들이 이 부분은 감안해야 할 것 같아 쓴건데...”


기사가 출고되고 나서 처음 받는 전화라 잠시 “내가 잘못쓴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관계와 팩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밀어 부치기로 했다. 실제 ELS는 시장환경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다.


어찌됐거나 기사가 나간 이후의 후속처리는 내가 아닌 데스크였기에 우선 윗선에 보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물론 나는 데스크가 없었기에 국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국장은 알 수없는 듯한 웃음을 쏟아내며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와 전화를 끊었다.

몇일이 지나서 지인들에게 자랑 좀 하고 싶어 링크를 찾아봤지만 해당 기사는 삭제된 이후였다. 어찌된 영문인가 싶었지만 “아!? 내가 무언가 놓친 것이 있어 내려갔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이후 금요일 회의시간에서 국장이 내게 말했다. “○○이가 얼마 전에 쓴 기사, 그 기사 회사 입장을 생각해서 내리기로 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그런 기사를 계속 써줘야 회사 발전에도 너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될꺼니깐 쭉~~ 그런식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입 기자에 가까웠던 나는 ‘네’라고 짧게 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려갈 기사인데 뭐하러 그런 기사를 써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재는 이미 대부분의 언론이 이런 식으로 매출을 발생시킨 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속도조절 하긴 한다. 나중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기자는 취재원과의 관계 자체도 아예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2. 퇴근길…종각역 ○○○커피


“어!? 오늘 왠일로 일찍 왔네?”


“응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고 해서...”


“얼마전에 썼다는 그 기사는 왜 없어진거래?”


“그게 뭐 회사랑 관련이 있나봐...뭐 광고가 어쨋다나 뭐라나...”


“아 그래? 근데 광고 달라고 하려면 좋게 얘기해야 하는거 아냐? 왜 기사로 광고를 달래?”


“그러게...좋게 얘기해도 안줄판인데, 어쨋든 위에서 알아서 한다고 하고 내렸더라”


“근데 언론사 원래 그래??? 그럼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도 이런식으로 내려가는 거야?”


“어...뭐 그렇다고 하네? 선배 얘기들어보면 그냥 경제·산업부는그냥 매출부서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던데?”


“푸하하하!! 그게 무슨 언론이야 완전 ‘기레기’네. 조중동이나 매경, 한경도 그래?”


“글쎄....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키키키키...완전 쓰레기다. 자기는 왜 기자해? 열심히 기사 써도 돈 준다고 하면 내려 가잖아”


“(낸들 이런줄 알고 들어 왔겠니...그나마 이거라도 해서 너 만나는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매일이 수면 부족과의 싸움이었다. 이런 날들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주말되면 낮잠도 못자고 아침부터 일찍 또 데이트를 나가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굉장히 지치기도 하고 일도 스트레스 받고 당분간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다. 여자친구를 좋아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늦잠자서 약속 늦으면 잠 많다고 투박하고, 영화보다 졸면 거기에 또 삐져 버리고...참 신입기자 때는 요즘 말하는 ‘워라밸’한 삶을 꿈꾸기 힘들다. 워낙 해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천지인지라.


그래서 난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싸우는 날만 많아져 서로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 친구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나의 방향도 달랐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이겨내는 일은 서로 살 길 찾아가는 방법이 가장 올바른 길이었다.


“미안하다...능력도 안되는데 내 욕심 때문에 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내가 빨리 얘기해야 너도 편해질 것 같아서. 우리 서로 살 길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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