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연이 헤어질 땐 더 나아지고 행복하도록 하라”_마더 테레사
“나 우리 처음 만났던 카페에 앉아 있어...”
퇴근할 때즈음 여자친구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사실 앞서 일주일 쯤에 만나서는 헤어지자는 얘기가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카카오톡으로 이별 통보를 했다. 그렇게 연락없이 일주일 정도 지냈지만 그래도 2년 가까이 만났는데, 그 시간을 쉽사리 무시할 수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바로 갈게”
처음 소개팅 받았던 그 카페로 갔다. 여자친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별다른 얘기 하지 않고 평소처럼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다. 물론 현재 다 잊혀졌고 벌써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때 여자친구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켠이 시리다.
여자친구는 내가 먹는 모습만 묵묵히 지켜보고 잘 먹지 않았다. 왠지 표정에서 “아..이 친구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길에 여자친구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친구가 평소 서운한 표현을 할 때 잘 울곤 했는데, 그 때 그 눈물은 정말....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그래서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게 서로 부둥켜 안고 마로니에 공원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좀 진정이 되고 나서 여자친구가 그 동안 쌓아왔던 속 마음을 얘기했다.
“내가 언제 뭐 해달래? 너 능력없고 그런거 상관없다고!!! 처음 만날땐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더 좋아졌단 말이야!! 근데 왜 갑자기 헤어지자는 건데!!”
“..........미안해...”
“나는 네가 내 인생 전부가 돼버렸는데!! 넌 왜 아닌건데!! 내가 뭐 해달라고 했냐고!!!”
“...............”
“헤어질꺼야??”
“........아니...미안해....이제 그런 얘기 더 이상 하지 않을께”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하지만 당시에 정말 진심을 얘기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차마 끝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다시 한번 잘 해보자는 말에 나도 아직은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만남을 재개했지만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달정도 다시 만났을 때는 그 친구 역시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넌 역시....안되겠다...이젠 다시 연락하지 말자...나도 앞으로 다시 매달리는 일 없을꺼야”
다음 이별을 얘기를 꺼냈을 때도 내가 먼저 꺼냈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녀는 내가 후회하기도 전에 먼저 다른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고 이후 여파는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 친구가 종종 “우리 결혼은 언제해?”라고 물을 때에도 대답하지 못했고, 내 처지를 내가 잘 알기에 모든 것이 벅찼다.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그저 욕심부리기만 바빴다. 참으로 이기적인 처사다.
이별의 고통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연락하지 말아야지 참고 있지만, 수 없이 카톡을 들여다보고 메세지를 확인하게 되고, 아무일도 잡히지가 않았다. 그녀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고 한달여 정도 지난 후에 연락을 해봤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정리된 이후 였다.
“아냐...미안해 나 다른 사람이랑 시작했어..널 받아줄 수가 없어..너도 이제 새로운 사람 만나야돼...”
울며불며 사정할 땐 이미 늦은 후다. 누군들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연락하는 남자가 제일 찌질하다고 하지만 나도 내 마음을 알아버린 이상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번 돌아선 여자의 마음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사랑엔 공식이 없다지만 이별의 공식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핑계 하에 건 마지막 통화에서 나도 결국 울어 버리고 말았다.
“너랑 헤어지고 나서 나도 알았어...내가 너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거..그 동안 그냥 좀 지쳐서 그랬나봐..정말 다신 헤어지는 일 없을꺼야. 다시 돌아와주면 안될까?”
“미안해...나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
“아냐!! 내가 미안해...사실 여러모로 버거운 적도 있었어...남들 해주는 만큼은 해주고 싶었는데...그게 잘 안되니깐 나도 내가 막 스트레스 받고 그랬나봐...그래서 속이는 것 같아서 헤어지자고 얘기한거야...너가 싫어서가 아니라고. 근데 나도 헤어지고 나니깐 다른 것보다 네가 없으면 안되겠더라...”
“이제 그런거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네...좋은 사람 만나”
“정말 미안해....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나도 너 정말 행복하길 바랄께”
전화로 미안하단 말만 몇 백번이고 한건 같지만 모자란 기분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좀 걷고 싶었다. 사당역에서 집까지 걸어갔는데 돌아가는 길은 오히려 짧기만 했다. 여자친구가 없어지니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함께 다니던 길도. 자주 가던 카페도. 좋아하던 음식점도. 이제는 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여나 나는 그 친구를 만나는 동안 무척 행복했는데, 그 친구는 아니었을까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원망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새로운 길을 찾기만 바랬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라 생각돼 이후에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이제 다시 홀로 서기에 나서야 했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내게 그 친구는 ‘인생 친구’나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나의 이성관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 미완성적인 부문에서 성숙해져 가는 법을 배운것 같다. 5년 이나 지난 현재. 아직 그 만큼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지도, 별로 누굴 만나야 겠다는 마음 자체도 별로 없지만, 언젠가는 또 시작 되겠지.
예고 없이 입금된 보너스 처럼, 불쑥 찾아오는 택배처럼, 갑작스레 불어온 봄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