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별택시 May 01. 2018

[출근 8일째] 미생(未生)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춘기로부터의 일시적 휴식에 불과하다_줄스 파이어

#1. 금요일 저녁 ○○뉴스 사무실


내용과 무관한 단순 이미지 사진임을 밝힙니다.

"가만히 기사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버스 다 떠난 뒤에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어"


"(저 인간이 또 시작이구나...)"


금요일 저녁 회의 때 편집국장이 우리는 기사가 너무 느리다면서 속도 좀 내라고 지시를 내린다.


"(증권 담당하는 사람이 나 한 사람인데...결국 우라 좀 빨리 치라는 얘기군...)"


규모가 제법 큰 메이저 언론사를 제외하고 중소형 언론사는 대부분이 인력난을 겪는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사 당시 15명 정도 됐던 기자는 다 떠나고 이제 데스크 제외하고 8명이 전부다.

그렇다고 인력 확대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중소형 언론사는 최소 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려고 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업무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 질을 올리기도 힘들다. 쉽게 말해 업무 강도만 쎄고 복지나 처우면에서는 바닥을 친다. 그래서 중소형 언론사일수록 이직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입처에서 대우도 변변찮다. 앞서 말했듯 처음 출입하는 곳에서는 무시 당하기도 일쑤고 제대로 등록이 되지 않아 기자 간담회 초청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회사에서는 제대로 출입이 되지 못하면 기자 탓을 하지만, 역량을 발휘한다 한들 분명 물리적 한계는 존재한다. 특히 주요 매체의 기자단이 꽉 잡고 있는 출입처 일수록 마이너 매체의 신입기자가 뚫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업들이야 기사로 소통하면 어느정도 교류가 된다 치지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주요 정부부처 출입은 신입기자 힘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나 역시 1년도 안된 시점이라 증권업계를 제외하면 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 출입기자로 등록이 돼야 기자 간담회도 초청받고 보도자료도 받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등록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일정한 출석체크 이후 기자단 투표를 거쳐 높은 득표율을 가져와야 한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나 금융위 기자단에서 신규 매체를 받는다고 하면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한 표'를 호소한다. 문자는 기본이고 간단한 다과를 포장해 기자실에 앉아 있는 기자단 소속 매체의 기자들에게 인사 해가면서 투표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타매체와 교류가 전혀 없던 나는 넋놓고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출석체크를 위해 담당 실무진에게 얘기를 해도 두 곳 이상의 기자단 매체에 추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형 매체의 많은 신입기자들이 이를 힘들어 한다. 출입처에서 나만 소외된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나는 기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리 적극적이더라도 제약된 환경은 사람을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눈치껏 뻔뻔해지는 것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2. 퇴근길 여의도 거리

어쨋거나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려고 할 때, 마침 퇴근 하는 국장과 마주쳤다.


"국장님 퇴근하십니까. 조심히 들어 가십시오"


"어어 그래...○○아 고생했다. 좀 할 만하냐?"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며?"


"(이런 미친....이걸 왜 얘기해..)"


얼마전 선배 한 명이 새로 왔는데 첫 인상부터가 별로였다. 그나마 있는 선배라서 같이 잘 지내보려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여자친구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걸 그대로 국장한테 보고 해버렸다.


"네...얼마전에 헤어지긴 했는데 괜찮습니다"


"내가 힘들게 해서 헤어진거냐?"


"그럴리가요. 개인사 입니다. 앞으로 업무에만 집중하려고요"


"어어 그래. 여자야 뭐 다시 만나면 된다. 지금 시점에서 여자 만나봐야 일하는데 방해만 되지"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혼자가 되니 업무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져 주말에도 도서관 가서 금융지식을 쌓는데 집중하기 수월해졌다. 헤어진지 얼마 안됐을 시점에는 생각도 많이 났지만 일부러 잊으려고 미친듯이 공부만 했다. 물론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이론으로 배운 지식을 실제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설정한 가설도 실제 현상과 드러 맞았다. 기자생활 전까지 경제에 관심도 없었지만 공부하던 중 없던 호기심 마저 생겼다.


모든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다만 그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말로 '근자감' 넘치던 그의 한 마디.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하라는데로만 해. 조선일보 보내줄테니깐"

작가의 이전글 [출근 7일째] 이미 넌 고마운 사람…그리고 다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