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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Jun 19. 2017

어떤 사진, 다른 퍼즐 조각

느 섬이 있다. 이색적이지만 어지간하면 다들 알고 있는. 나들이라도 갈라 치면 응당 떠오르는.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주문을 걸듯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믿어왔다. 여기서 우리는 그와 나다. 추억이란 오직 우리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후부터다. 그렇다고 무슨 그럴싸한 이벤트도, 짜릿한 회자 거리도 없었다. 한없이 걷고 잠시 쉬었다가 또 걸었을 뿐. 별거 아니지만 그걸 생각하면 난 아직도 설레고 살랑댄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감정이란 꽃분홍색 풍선이 돋는 듯하다. 낭만이란 하늘색 뭉게구름 위로 수놓는다. 섬 위의 하늘을 덮을 만큼 가득할수록 우리의 거리는 한 뼘만큼 가까워진다. 어느새 그 틈을 아이들이 메운다. 함께 매년 그곳을 찾는 건 변함없다. 그런 것이 십 년이다. 



젠 세월의 변화까지 덤으로 실감한다. 물가 주변 볼품없던 땅에 별장이 들어섰고, 정원과 쉼터, 눈요기거리가 늘어났다. 진흙과 오물 등의 퇴적물로 을씨년스러웠던 선착장에 제법 튼튼한 돌이 쌓였다. 소소한 변화와 세심한 보살핌에 놀라기도 즐겁기도 하다. 마치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가슴 한편이 찡하다. 한편으론 추억담이 변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한다.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던 나무 벤치, 선선한 바람이 나부끼도록 낭만적인 그늘을 선사하는 메타세콰이어의 그늘, 야외에서 망중한을 즐기게 했던 카페를 확인해본다. 고맙게도 모두 그대로다. 그 카페는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 위치나 냅킨꽂이 조차 변함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커피와 음료수를 마신다. 



룻밤을 머물 법도 했었는데 이상하게 그러지 못했다. 숙박 예약이 힘들다는 핑계로 미뤘던 것이지만, 반나절이면 볼 수 있어 굳이 그럴 필요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늘 빡빡하게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왠지 하루 머물고 싶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낮과 달리, 모두 돌아간 밤은 어떨까?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면 곳곳에 장작불이 켜지고 누군가 정겨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고즈넉한 밤하늘과 별빛 사이를 채우는 울림과 낯선 정경을 보고 싶었다. 학창 시절 엠티처럼 청춘의 열정과 낭만적 기대가 아니라, 일상의 일탈 속에서 누리는 가벼운 호사 같은. 쉼이나 여백이 아니어도 낭만의 끝이라도 붙잡고 싶은. 언젠가 환기될지 모를 추억의 사진을 좀 더 남기고 싶어서. 마침 연휴가 끝나는 날엔 빈방이 있었다. 하루 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여유로워졌다. 시간에 촉박해 여기저기 보느라 지도를 놓지 못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거닐 수 있다. 머리 한편에 차곡차곡 쌓인 추억의 사진첩을 들추고 지금 이 순간과 맞춰볼 수 있다. 여기서 열차에 임신한 몸을 싣고 섬 한가운데를 가로질렀지. 저쪽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말도 안 되게 형편없었던 도시락을 우적우적 씹어 넘겼는데. 



유로 다가간 섬은 세상과 동떨어진 채로 별천지 같은 정취와 낭만을 품고 있다. 상기된 인파가 뿜어내는 생기발랄함 보다는, 태생적인 차분함에서 비롯된 단아함이 두드러졌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복잡해서 조잡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기저기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 어설프게 거창한 숙소와 유흥 시설들. 얼마 전까지 저곳에 몸담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여유와 자유의 경계가 모호한 곳에 머물렀다. 여기서는 생산적인 어떤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만끽하며 감흥에 취하면 그뿐이다. 즐길 수 없다면 오히려 위법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새로운 놀이에 집중한다. 흙을 만지고 이름 모를 들꽃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낯선 자연의 생명체를 쫓아다닌다. 굳이 셔터를 누를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멋진 장면들이 머리 속에 박힌다. 아마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추억의 사진기 속에 저장될 것이다. 



리는 간과하고 있었지만, 날씨는 점점 자기 기분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잿빛 눅진했던 구름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바뀌었다. 어느새 우산을 쓰지 않으면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축축해졌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이르게 섬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텅 비어 가는 공간 속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스피커를 단 듯 세차게 울렸다. 마음은 무거워지고 모처럼의 여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춥고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 기분이란 새 옷에 흙탕물을 끼얹은 것처럼 암울한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아이들을 씻겼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계획했던 밤 산책은 불가능해졌다.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주변을 살펴보니 그 흔한 TV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다란 탁자 위에 갖가지 책과 잡지가 쌓여있다. 이 섬에 관한 저서와 철 지난 과월호, 수십 권에 이르는 방명록이 대부분이었다. 복도와 로비 곳곳을 뒤져 몇 권을 골랐다. 둘은 책을 읽고, 나머지는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다. 그것도 잠시, 싫증난 아이들은 심심하다고 난리였다. 보다 못한 그가 이끌고 나갔다. 한가로워진 나는 그제야 읽던 책에 집중했다. 비교적 짧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족했다. 



자리에서 딸아이에게 오늘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물었다. 먹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단다. 장난감과 태블릿은 고사하고 하다 못해 숙제라도 하고 싶었을 정도로 심심했던 모양이다. 물 한잔 먼저 마시기 위해, 원하는 색깔의 이불을 차지기 하기 위해 쌈박질을 할 정도였으니. 미안해진다. 그동안 그들에게 이 섬이 얼마나 낭만적인가를 몇 번이고 강조했었는데. 전해주지 못했다는 낭패감부터 추억은커녕 재미없게 만들었으므로 일말의 죄책감까지 느낀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반쪽짜리 추억 팔이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순진해서 이 정도지. 조금 더 컸더라면 별로라고 하던가, 괜히 왔다고 불평이라고 늘어놓는다면 오히려 내가 상처받을지 모른다. 반면, 그와 나는 궂은 날씨로 공치는 바람에 비교적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마음 편히 스마트폰을 봤다는. 사실 집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까. 결국 그 밤은 그와 나만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리 사이, 같은 추억을 공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와 나는 이 여행이 설사 별로일지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함께한 세월 동안 이런저런 낭만을 쌓고 문뜩 소환해 웃을 수 있는. 우리는 그게 중요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아이들에겐 똑같이 적용될 수 없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부모라는 안락한 굴레 속에서 비롯된 체험과 성장이다. 낯설어도 함께 있어서 할 수 있고, 그 도전과 성취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작은 응원가가 될 것이다. 오늘의 추억은, 그와 나에게 또 한 장의 사진을 선사했다면 아이들에겐 유년이란 시절의 퍼즐 조각이지 않을까? 유난히 재미없었고 그저 그랬던 흔적 중 하나? 먼 훗날 웃으며 되짚어볼 시간이 올 것이다. 가끔 친정엄마와 회상하는 이야기처럼. 그녀는 추억이라지만, 나에겐 공포였던. 바다 위 튜브에 몸을 실은 세 모녀의 살려달라는 손짓을 본 아빠가 인사하는 줄 알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준.






가끔씩 엄마와 추억담을 나누면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기억하고 있음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 주관적인가 깨달았던 대목이죠.
시간이 흘러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녀의 처지를 알게 됩니다.
동시에, 유년 시절의 저도 소환해보죠.
전자와 후자이면서 삼자가 될 수 있는 상황.
조금씩 추억의 빛깔이 선명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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