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K를 만났다. 명랑한 얼굴, 냉정하면서도 가끔씩 내뱉는 엉뚱한 말투는 변함없다.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꽤 프로페셔널 해졌다. 전문 용어를 덧붙이며 업무나 회사 사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멋지다. 어디서나 당차고 똑 부러지는 통에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들어주는 것뿐이다. 서로에게 솔직한 편이지만, 떨어진 시간만큼 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이 생겼다. 그걸 의식하느니 차라리 예전의 모습 혹은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언제 봐도 늘 며칠 전에 봤던 것 같은 친근함이 있으니까. 이게 생애 절반을 함께한 우정의 궁극적인 결실이다.
“그거 생각나니?” 시작은 언제나 S를 소환하는 것이다. 그녀를 떠올림으로써 그 시절의 길목에 성큼 들어선다. 그녀는 뭐랄까 대리만족 같은 쾌감 혹은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선사해주는 친구였다. 우리의 대화 목록에서 늘 회자되는 것 중 하나를 들어볼까? 새내기 시절 타 대학과의 조인트 엠티에서 상대편에 제법 번듯하고 잘생긴 아이가 있었다. 암묵적으로 치열한 경쟁 기류가 흘렀다. 장기자랑이 한창이던 때, 그녀는 홀연히 나서서 ‘Queen’의 ‘We will rock you’를 거침 없이 불렀다. 그녀의 도발에 우리는 식겁했지만, 대부분은 압도됐다. 얼마 후 그들은 사귀었다. 시기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는데 몇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땀냄새 때문이란다. 그 변덕스러움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속물은 아니었다. 사귄 애들을 봐도 외모, 학벌, 지역 같은 특별한 기준이 없다. 이런 남자도 있고, 저런 상황도 있었다. 한창 활기 넘치고 뭐든 게 궁금했던 시절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거침없이 내뱉고 행동했다. 마음 가는 대로 결정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에 비해, 우린 편견이 많은 편이었다. 순진했고 몸을 사렸다. 그러니, 그녀의 돌발 행동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S의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며칠을 더 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곁에 없다. 오매불망을 흩뿌리고 저 멀리 타국에서 아들, 딸 낳고잘 살고 있다.
“B 기억하지? 없어진 줄 알았는데 리뉴얼했대.” B는 우리의 청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힘들어 위로가 필요할 때 혹은 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사랑방처럼 들렀다. S의 빈자리와 자연스럽게 소원해진 친구들 사이, 나와 K가 남았다. 한때 모두 함께했던 그곳에서 지난 시절을 되새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돌아갈 수 없어도 청춘과 추억 사이에 있는 우정이란 불씨를 명맥이나마 잇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나갔던 호우 시절을 으스대고 싶었을 것이다. 모두 떠나고 남은 자리를 우리라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의리였다. 언젠가 돌아올 S와 친구들을 따듯이 품어줄 아지트를 남겨둬야 한다. 그래야 예전처럼 즐겁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의리는 커리어우먼으로써 일과 사랑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청춘의 후반전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회사에서 막돼먹은 동료로 마음고생하는 걸 보고 몽둥이 하나 집어 들고 뛰쳐나갈 것처럼 흥분하기도 했다. 또, 이어지지 못한 사랑이나 차마 고백할 수 없는 가슴앓이와 넋두리를 들어줬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일종의 집착이 생겼는데, 휴일 중 하루는 꼭 만나서 회포를 풀어야 했다. 편한 나머지 함부로 대하거나, 종종 회사 일도 도와줬다. 절친이라는 이름 하에 응당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한 번은 생일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가 아쉬움에 싸우고 토라져 며칠을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먼저 건넨 전화 소리에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린 적도 있었다.
우리도 결혼이나 연수 같은 헤어짐을 피할 순 없었다.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점점 서운함이나 섭섭함을 토로하지 않는 사이가 돼버렸다. 한 번은 같은 동네에 살다가 갑자기 이사를 하는 바람에 말도 없이 가버리고 한참 후에야 연락을 했었다.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녀는 너그럽게 이해해줬다. 자기도 바빠서 연락 못했었다고. 미안하다 못해 가슴이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처지, 먹고사는 것이 먼저인 형편에 쿨한 척이해해야 한다. 내가 마음을 비운 것처럼, 그녀도 그럴 것이다. 취향도, 사랑과 이별도, 노는 것도 제일 많이 공유했던 친구였는데, 이젠 그 의미가 무색한 나머지 퇴색되고 말았다. 누구보다 찬란했던 한 때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던 우리였는데…
“걔는 연락하니?” 문뜩 과거 속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는 K의 오랜 짝사랑이다. 그녀는 잠시 만감의 표정을 짓는다. 고백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스친다. 미련이 남은 것일까? 봇물 터지듯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한때 좋았던 기억을 꺼내놓고 ‘만약’이란 가정형을 덧붙여보는 것에 신선한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미처 몰랐던 세밀한 이야기까지 꺼낸다. 어떤 것은 숭숭 구멍마저 뚫렸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는 누구보다 그들의 전후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머리 한편에 자리 잡은 지난 사진첩을 꺼내서 잃어버린 그녀의 퍼즐 조각을 맞춰본다. 예전에 살았던 집 근처 거하게 먹고 마셨던 파전 집, 후미진 골목길이 걱정돼 그가 우리를 바래다주었던 일. 또 다른 것도 있다. 그녀가 이사했던 오피스텔의 이름, 함께 자취했던 후배와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내가 그 이름들을 불러주자, 그녀의 머리 속에 환영들이 들어선다. 그 바람에 환한 미소를 띠거나 손뼉을 치며 박수를 칠 수 있다. 덩달아 나도 행복해진다. 우리는 그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간 듯 잊었던 무언가를 끊임없이 더듬어간다. 목이 쉴 정도로 흥분했고 숨 넘어갈 정도로 깔깔댄다.
세월을 이기는 장산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추억 속에서 야속했던 마음이 무색해진다. 잠자고 있는 청춘과 수줍은 낭만이 수면 위로 넘실댄다. 순수했던 시절 속에 아기자기하고 소소했던 감정과 잔잔한 물결 같은 감성이 있었다. S의 한방 정도는 아니어도, 문뜩 떠오르면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 대는 설렘일 것이다. 가끔 삶의 이정표처럼 꽂히거나 원기 충전할 비타민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영화 <써니>의 에피소드쯤 있다. 우정이란 빛을 받아 찬란했던 청춘이라는 퍼즐로 완성된다. 오랜만에 K와 나눈 한때는, 교감할 수 있는 행복을 다시금 일깨운다. 오랜 벗과의 추억은 여운이 길다.
돌아서면 손 닿을 거리에 있었던 K가 항상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