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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Dec 08. 2017

숙제 다 했나?

부분이 그렇듯 한 주가 할 일로 빼곡하기에 주말을 기다리는 거겠지. 모든 일과를 잘 끝내고 쉴 수 있을 거란 바람으로. 그게 없다면 일과 숙제 사이에서 무슨 낙이 있을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무래도 이번 가을 내내 바빴기 때문이다. 추석과 함께 매주 해야 할 게 실뜨기처럼 이어졌다. 시아버지 제사와 시어머니 칠순으로 두 번 더 시골을 다녀왔고, 시어머니가 주신 배추로 김장도 담갔다. 함께 한 세월만큼 닿아 버린 전자제품이나 보일러도 손봤고, 오래전부터 말로만 만나자 했던 대학 동기 모임과 시누이네 방문도 했다. 아, 결혼식도 있었구나. 하루도 쉬지 못한 탓에, 아침마다 삭신이 쑤시는 고통 속에 일어나야 했다. 다행히 이번 주는 오래간만에 별다른 약속이 없다. 달력을 확인하자마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숙제 없다’를 외친다.



제부터 산다는 게 숙제였던가? 따지고 보면 숙제가 없었던 적도 없었다. 학교는 학습으로, 회사는 업무로. 부모에겐 장녀에서 과년한 여식이었다가 이젠 기댈 수 있는 에미로. 늘 무언가의 타이틀 안에서는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어렵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보는 눈들 때문에 주저할 수 없었다. 이것밖에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겁났다. 만약 그랬다면 내 자존심이 해저 이 만리 같은 바닷속에 처박혀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때까진 바닥을 치고 일어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결과가 어째 됐던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 수밖에. 그럭저럭 나름 성실히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튀는 거 없이 고만고만한 숙제를 누락시키지 않고 풀다 보니 모자란 것도 있었지만 누릴 건 다 누렸다. 뭐내 능력껏 할 만큼 한 것이니 후회는 없다. 중간 언저리를 오가는 성적표가 내 숙제 인생의 1막이다. 



마 2막은 결혼으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에 치중하면서, 숙제의 정의와 범위는 상당히 달라졌다. 미션처럼 딱 주어진 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보이고 손에 닿는 모든 게 일이었다. 할수록 쌓이는 게 일이더라. 누구보다 음식을 잘하고 집안이 번쩍번쩍 빛날 정도로 쓸고 닦는다 해서 짝짝짝 박수갈채를 받는 게 아니었다. 그건 기본으로 당연한 거였다. 살림 9단이란 칭호를 전제로 깔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를 내 몸 챙기듯 살펴야 한다. 그들의 옷차림부터 피부 상태와 각종 건강문제, 사회적으로 부딪치는 또래와 잘 지내는지,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는지 등.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병치레도, 가족 간의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자잘한 사건도, 대체로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다. 그뿐만 아니다. 두 집안이 만나서 생긴 이해관계와 더 넓어진 교류 속에서 임무나 책임감이 늘어간다. 한 마디로 내 역할은 직장으로 치면 컨텍 포인트, 모임에선 비상연락망이 되더라고. 그나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내 손을 거쳐가니 양가 사이의 정보나 소식은 내게로 몰린다. 그 속에서 적절히 칠 거 치고 꼭 해야 할 것을 배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야박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업무라면 나나 팀원에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버는 만큼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무 자르듯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안 하거나 못하면 그나 아이들, 혹은 다른 가족에게 피해가 갈지 모른다. 한두 번 볼 것도 아니고 평생 함께 할 사이인데. 귀찮고 피곤해도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닥치면 해야 한다. 늘 후회와 고민 속에 해낸다. 그리고, 또 뭐를 해야 할까 생각한다. 이번 주 뭐할까? 이번 달에 무슨 일이 있지? 



과급이란 당근에 익숙했던 나는 액션 영화처럼 휘몰아치는 채찍질에 가끔씩 의욕을 잃는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 지침서이기도 한 친정 엄마를 떠올린다. 그때 그녀는 어땠었지? 그래,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늘 바빴다. 돈 버는 일로 그런 게 아니라 대소사에 관여하는 게 많았다. 할아버지 제삿날이 다가오면 고모들이 전화로 ‘언니, 아버지 제사 맞죠?’하며 확인했다. 할머니나 아버지 생신, 혹은 친척 누구네 잔치까지 엄마의 입으로 전해 들었다. 어느 날부터 아빠도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아빠는 왜 안 챙겨?’라고 말하면, 가족끼리 네 꺼 내 꺼가 어딨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외할머니 생신을 몰랐다. 나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모든 일을 엄마만 알아야 되냐고. 근데 내가 그녀의 처지가 되니 어쩔 수 없는 게 있더라. 공사다망하고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그 시절의 아빠와 이른 나이에 혼자가 된 할머니, 시집갈 때까지 의지했던 고모들은 곰살궂지 않아도 살뜰했던 그녀를 믿었다. 야무진 손끝에서 실타래처럼 엉킨 게 교통정리가 됐으니. 그 덕분에 온 집안이 제대로 굴러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다. 그건 그녀가 평생 동안 스스로를 힘들고 지치게 했으나 한편으론 큰 소리 뻥뻥 칠 수 있었던 자기만족이었다. 그 업보 때문에 수도 없이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었는데, 오랫동안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성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여전히 가족들 생일과 기일을 챙기고 알려주는 걸 보면. 한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달인이 된다. 그 경지에 이르면 싫고 좋은 게 무의미해진다. 늘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자연스레 그게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런 면에서 엄마가 존경스럽다. 



에 비한다면 나는 갈 길이 멀다. 집안일이란 게 익숙지 않을뿐더러 과연 내 일이 맞나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현재의 위치나 처지에 대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 자체가 숙제임을 알고 있으나, 그것 말고도 뭔가 더 갈망한다. 현재로선 다정한 그나 나를 세상 최고로 여기는 아이들이 엄지 척을 내세우는 거 말고는 없다. 그게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그러나, 말로 받는 위안은 일시적이라 손에 잡히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것도 고맙지만 한편으론 더 구체적인 뭔가를 바란다. 성과에 대한 보너스이기도 하고, 앞으로 닥칠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정말 작게는 한 주에 단 하루라도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놀러 가고 싶을 때 놀며, 모두 다 귀찮다면 뒹굴뒹굴하고 싶다. 좀 더 바란다면 틈틈이 해온 것들, 노력한 대가를 꼭 이루고 싶다. 이를테면, 내가 뒷바라지한 만큼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성공했으면 좋겠다. 혹은 우리의 노년에 정원 딸린 집에서 살길 바란다. 그곳에 그가 만든 가구들로 꾸미고 싶다. 또, 언젠가 작가라는 타이틀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 그게 가능하다면 산더미 같은 숙제가 있더라도 군말 없이 해낼 것 같다. 그것을 이룰 때까지. 허나, 지금 내 앞엔 보장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유는 없거니와, 결과물에 대한 성과급도 없다.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미로를 끝없이 헤쳐나가야 한다. 세상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남들도 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라고 독려할 뿐이다. 학교 다닐 때도, 회사 다닐 때도 그게 가능했는데, 인생 2막에서는 도무지 녹록지 않다. 아마 그래서 이놈의 숙제가 버겁기만 한 모양이다. 



제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인정 투쟁이다. 해야 할 무엇, 되어야 할 무엇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가지고 싶거나 누릴 걸 보장받고 싶은 거다. 그렇다고 일요일 아침부터 대뜸 이번 주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 하루 파업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도 힘든 한 주를 보내긴 마찬가지인데, 게다가 아이들은 나 없이 어떡하라고. 코 앞의 고민은 결국 소중한 가족과 엮이면서 금세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내 멋대로의 자유를 함부로 계획할 수 없어서. 테트리스처럼 뭔가 코 앞에 떨어질 때를 대비해 잠시 숨 고르기할 타이밍을 눈치 보느라. 미래에 대한 보상만 확실하다면 희생하겠다는 핑계 역시 희망 고문이다. 친정 엄마처럼 이게 지나가는 과정이고 익숙해질 거라고 혹은 진짜 자유가 찾아올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녀가 꾹 참고 버텼던 젊은 나날을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숙제를 잘 하면서 즐기려면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것 같다. 쉼표 같은 여유도 부지런해야 누린다. 





그나저나 이번 주엔 쉴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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