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 Nov 30. 2017

따뜻한 게 그립다

울이 되면 따뜻한 코코아가 생각난다. 엄마가 타 주던 코코아. 어린 시절의 그것은 요즘처럼 낱개 포장으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영어사전보다 조금 더 큰 알루미늄 캔에 들어 있던 그것은 남대문 미제 상가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사다 준 큰 이모가 건넨 것이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면 알루미늄으로 된 동그란 마개가 나온다. 일자형 드라이버를 껴서 지렛대 원리를 활용해 힘을 주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기지개를 켜는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갈색 연기가 달달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엄마는 자신이 애용하는 커피잔을 꺼내 숟가락으로 크게 두 스푼 정도를 담는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끓는 소리가 요란해지면 거기에 붓고 코코아 가루가 녹을 때까지 천천히 젓는다. 그녀가 건넨 잔 속에는 팥죽색이 겉도는 짙은 색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다. 첫 모금은 뜨겁지만 그걸 넘기면 온몸에 사르르 퍼지는 달달하고 진한 초콜릿 맛에 금세 몸과 마음이 노곤 해진다. 근데 마시다 보면 달고 향긋한 맛 사이에 뭔가 비어있다. 그게 뭘까 궁금해하니 엄마는 프리마를 넣어 주신다. 커피와 설탕 사이를 채워주던 끈적하고 부드러운 연결고리. 그래, 프리마를 넣으니 진짜 초콜릿의 무르고 매끈함이 채워진다. 



렇다고 내 기억 속의 코코아는 프리마까지 계산되어 있지 않다. 생각을 더듬다 보니 그랬다는 거지, 어쨌거나 달달하고 진하며 부드러운 맛으로 기억한다. 해마다 춥다란 말이 저절로 나올 때면 이미 머리 속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코코아를 들고 있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건 아마도 추운 계절에 꼭 들어맞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맛과 향기와 옛 추억이나 정취, 풍족하지 못함을 낭만으로 탈바꿈하는 그리움까지 아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대로 코코아를 즐긴 적이 없다. 가끔 TV 광고에 못 이겨 마트에서 사다 놓지만 한두 번 먹다가 버리기가 일쑤다. 그것 말고도 따뜻함을 채워줄 마실 거리가 많거니와 아무래도 살찌는 게 겁나 선뜻 손을 대지 않는 것 같다. 또, 막상 마셔봐도 예전만큼 맛있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요즘 건 어린 시절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완벽한 맛인데 이상하게 뭔가 느끼하고 양도 야박할 만큼 적다. 그렇다고 연거푸 두 잔을 마실 수도 없고. 아마 추억의 맛이란 포장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게 아닐까. 이젠 더 이상 그런 달달한 맛을 더 이상 선호하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추억은 추억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울이면 따뜻한 커피를 입에 달고 살 것 같았는데, 요즘 들어마시는 횟수가 꽤 줄었다. 하루에 한 번은 들렸던 동네 커피숍에 가보지 않은지 몇 주 됐다. 집에 사둔 150g짜리 원두 한 봉지도 2주를 넘긴다. 눈뜨자마자 커피가 떠올라 급히 내리고 입으로 가져가도 쓴 맛이 먼저 닿는다. 로스팅할 때 태운 게 아닐까 의심하거나, 괜히 물의 비린 맛까지 잡아낸다. 입맛이 이렇게 예민해진 건 스멀스멀 찾아온 추위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달달한 게 당기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마시는 카페 모카를 한입 뺏어 먹었다가 너무 달다며 손사래를 쳤다. 무얼 마셔도 대체로 그렇다. 입은 미세한 감각을 총동원해 감지하다 못해 무엇이든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에 반해 머리 속은 여전히 온갖 따뜻하고 달달한 이미지를 마구 방출한다. 케이크 한 조각과 따뜻한 커피 어때? 아니면,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코코아? 비타민 C가 풍부한 유자차도 좋지! 선뜻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커피 한잔을 몇 시간째 홀짝이다가 식어버렸다. 



금없이 다른 얘기로 넘어가겠다. 며칠 전, 시어머니 생신이라 시댁에 다녀왔다.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는 점심 사 먹으라며 오만 원짜리를 손에 쥐어줬다. 손사래를 쳐도 거부할 수 없이 등 떠밀려 차에 탔다. 가는 길에 읍내에서 햅쌀을 사자고 그가 말했다. 이때 지나면 먹을 수 없다고.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돈을 그에게 건네려고 했다. 그때, 딸이 뭐가 쓰여 있다고 일러줬다. 자세히 보니, 지폐 뒤편 여백에 누군가의 흔적이 남겨 있다. ‘김 회장, 생일 축하해. 내가 많이 아끼는 거 알지? From. 준식’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이는 엄마 돈에 이래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안된다고 돈은 돌고 도는데 이러면 잘못한 거라고, 너는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돌아오는 내내 그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엔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어쩌다가 종이 한 장 구하지 못해 그랬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문뜩 그 돈의 출처가 어머니로부터 나왔음이 떠올랐다. 작성자가 있는 걸 보니 어머니가 썼을 리가 없고, 오만 원권이니 아마 읍내 은행에서 찾은 돈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은 ‘김 회장’ 이란 사람은 동네 사람일 테고 그 돈이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쌀집으로 들어갔으니 결국 언젠가 그 사람에게 돌아갈 확률이 있다. 작성자 역시 동네 사람이라면 그에게 갈지 모른다. 만약 그들이 다시 그걸 갖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기가 준-혹은 쓴- 돈이 돌아왔다고 놀랄까? 혹은, 준 사람 입장에서 ‘김 회장’이란 사람이 막 썼다고 분개할까, 아니면 요긴하게 쓴 모양이라고 생각할까? 



시 내 손을 거쳐간 그 돈의 행방이, 며칠 째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나조차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돈이 그들에 돌아갔을지 궁금한 건지, 아니면 돈을 쪽지처럼 쓴 것에 분노하는지 모르겠다. 바깥 날씨가 영하를 맴돌고 패딩을 두 개씩 껴입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떠오른다. 왜 집착하는 걸까?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없는데. 어쩌면, 그 속에 녹아 있는 따뜻함에 공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돈에 글씨를 남긴 게 잘못이라고 말했고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가서 낯부끄러움을 당해야 한다고 확신했는데, 그건 단지 그동안 학습된 도덕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그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준식’씨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였다. ‘김 회장’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 단 돈 오만 원이라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 비록 지폐에 썼지만 재빠르게 흘겨 쓴 게 아니라 또박또박 꾹꾹 눌러 담은 정성스러운 글씨가 그걸 입증하고 있다. 내 육감은 그걸 봤고 적어도 그게 진심임을 알 수 있었으며 그걸 마음속에 남겨뒀다. 그래서, 내 감성은 그 정성에서 비롯된 인상과 심상을 복기하고 있었다. 비록 그의 행동은 잘못됐으나 표면적인 도덕심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답고 포근한 정서도 주목해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위험하고 상대적이긴 하나,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은 가끔 규칙이나 윤리를 넘어서는 게 있는 것 같다. 그걸 판단으로 운운하긴 애매할 정도로 가끔 가슴을 울릴 때가 있다. 시리고 차가운 기운에 이상할 정도로 온기를 더한다. ‘준식’씨의 돈에 쓴 쪽지가, 글씨가, 정(情)이 그랬다. 뜨거운 커피도 하지 못한 걸 그가 했다. 



쩌면, 내가 코코아를 그리워하면서도 마시지 않는 건 예전의 그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섬세하나 그 투박한 것보다 못하다. 정량의 물과 온도를 맞추고 더할 나위 없이 달달하고 부드럽지만 그건 내가 탄 것이다. 과거의 코코아는 엄마가 타 준 것이다. 밤늦게 책상에 앉아 있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코코아 한잔 주련 하면서 건넨 것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만들어 준 것, 나에 대한 작은 배려와 격려와 걱정이 녹아든 것, 별거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 속엔 완벽한 맛으로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마음 씀씀이가 함께 있다. 그땐 그걸 몰랐는데, 내 곁에 없고 쉽게 얻을 수 없으니 알게 됐다. 나는 지금 그 따뜻함이 그리운 것이다. 단순히 내 몸이, 얼굴이, 손이나 발끝이 따뜻한 게 아니라, 나를 아껴주고 챙김 받고 싶은 마음이 고픈 것이다. 성인이 되고 누군가 챙겨줄 사람이 늘어갈수록 나도 그렇게 받고 싶은 욕심이 어딘가에 축적된다. 그리고, 가끔씩 피식피식 터진다. 이렇게 찬 공기가 온몸을 휘감을 때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엄마 나 코코아 타 주러 와주세요 할 순 없지 않은가. 



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지? 나도 바빠서 연락 못했다는 말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 ‘나도 한번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텔레파시 통했나 보다^^’라고. 만나서 해도 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다음 주에 보자고 한다. 수다 떨게 많다면서. 누군가 나를 그리워했다는 의미가 전해지자 따뜻한 기운이 훅하고 올라온다. 그래, 만남도 훈훈함을 더하지. 기분 좋은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지금 그녀도 나처럼 입꼬리가 올라갔을까?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다음번에 친정 엄마를 만나면 진짜 코코아 한잔 타 달라고 해야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땅따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