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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Nov 22. 2017

땅따먹기

린 시절, 누군가 밖에서 놀자 해서 나가보면 이미 네댓 명이 모여있었다. 당시 할 수 있는 놀이란 뛰어다니고 하는 것이었다. 고무줄놀이, 얼음 땡, 술래잡기, 돈가스, 말뚝박기… 누군가는 슬슬 지겹다고 말했다. 그중 몇 명은 어제 옆집 아이가 그려놓고 간 땅따먹기로 넘어갔다. 1부터 8까지 숫자가 새겨진 곳에 차례로 돌멩이를 날리고 가장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이긴다. 가까운 1, 2는 문제 될 게 없지만 가운데 3, 4, 5, 6은 난코스다. 잘 던져야 할 뿐만 아니라 도약하거나 한 발 뛰기를 할 때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만약 돌을 줍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괜히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음 친구에게 순서가 넘어간다. 그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누구나 숙달된다. 결국 관건은 원하는 숫자가 적힌 곳에 정확히 던질 수 있느냐다. 실패가 적을수록 먼저 임무수행을 마치므로 거기서 승패가 갈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돌멩이를 고르는 게 우선이다. 이불 끝자락만큼 떨어진 7, 8번까지 던지려면 제법 묵직한 것이어야 한다. 힘은 들지만 그 무게감으로 포물선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기에 가벼운 것보다 낫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날렵한 모양새다. 앞이 뾰족할수록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바람의 저항을 가르며 원하는 위치에 내리 꽂힌다. 처음엔 예쁘고 동글동글 반질거리는 걸 찾던 아이들도 하다 보면 삐쭉삐쭉하고 결이 살아 있는 걸 선호하게 된다. 그런 돌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그림도 잘 그려진다. 



따먹기나 개 뼈다귀 같은 놀이를 하기 위해 그리던 도구는 주로 석필이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투명한 하얀색으로 납작하고 기다란 모양에 분필보다 단단했다. 가끔 교실 바닥에 뒹구는 그것을 가져와 그려봤지만 쉽게 부러지고 금세 닳아 없어지므로 그걸로 그리는 건 왠지 하수다. 석필 하나만 있으면 두루두루 쓸 데가 있었다. 땅에 뭔가를 그릴 때도 아파트 벽 낙서에도 유용했다. 누군가 집 근처에 하트를 그려놓고 ‘누구랑 누구는 좋아한대요’란 글씨가 새겨지면 다음 날 어김없이 그 위에 X가 그려지고 ‘이거 쓴 사람 십 년 재수 없다’가 덧붙여졌다. 아이들 주머니 속엔 유리구슬과 함께 한두 개씩 챙겨져 있었을 것이다. 효용가치가 있는 만큼 문방구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이었다. 만약 엄마 심부름이라도 해서 백 원이라도 타는 날엔 몇 개를 사서 선심 쓰듯 나눠주곤 했다. 땅따먹기가 그려진 주변에는 어김없이 석필 쪼가리가 굴러다녔다. 그걸 발견하게 되면 몰래 주어다가 여분으로 쟁여 놓았다. 가끔씩 동생이 소꿉놀이할 때 밀가루 대용으로 쓰라고 주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그것을 돌로 짓이기고 곱게 빻아 그릇에 담아 놓았다. 손가락 끝에 닿는 석필 가루는 밀가루보다 곱고 부드러웠다. 지문 사이로 켜켜이 파고들만큼. 여러 번 만지다 보면 아무리 손을 씻어도 거칠거칠한 기운이 남겨졌다. 그것이 역도 선수가 경기에 임하기 전에 손에 묻히는 분진 가루이 일종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됐지만. 



꿉놀이를 하려면 토끼풀이나 버들가지도 필요했다. 아파트 뒤편의 작은 공터는 학교 끝나고 어김없이 들리던 우리의 아지트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와 바로 옆의 단지를 구분하기 위해 애들 키만 한 철조망 사이로 방치된 곳이었다.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진 탓에 어둡고 침침해서 떠도는 소문에 밤에 도깨비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밝은 대낮엔 언제나 아이들로 붐볐다. 온갖 잡초와 오색 빛깔의 꽃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소꿉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 하기에 그만한 장소도 없었다. 누군가 그곳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는 소문이 들리면 며칠 동안 그것 찾기에 혈안이었다. 나도 몇 번인가 동참했지만 그런 행운에 언제나 비껴갔다. 대신 늘 운 좋은 동생은 몇 번인가 찾았던 것 같다. 어찌나 호들갑스럽게 자랑을 하던지 울컥한 마음에 숨겨 놓을까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또, 할머니인가 아버지인가, 그곳에서 흰색 꽃과 세 잎 클로버를 섞어 팔찌와 화관을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다음 날 베란다에 놓았던 그것이 모두 시들어서 아름드리 모양새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분한 마음에 똑같이 만들겠다고 공터에 가서 다량의 풀을 뜯어다가 저녁 먹기 전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원처럼 연결되는 고리가 이어지지 않아 끝내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내게 손재주가 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다시는 토끼풀로 뭔가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재주가 없는 건 남들보다 손이 작아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생이 어디선가 공기를 구해와 해보라고 건넸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세 개 이상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걸 보고 답답해하던 그녀가 줘보라면서 보기 좋게 다섯 개를 성공시켰다(그녀는 나보다 손가락이 길었다). 한번 이겨보겠다고 틈틈이 연습해봐도 기껏해야 세 개였다. 머리를 굴려 공기 몇 개를 더 샀다. 분해해 공기 속 재료인 철 조각들을 하나씩 몰아넣었다. 공기가 묵직해졌다. 손에 올려놓고 통통 튀기니 어쩐지 높이나 무게를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론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게 되면 나는 내가 제조한 공기를 이용했다. 뭐 그렇다고 월등히 나아진 건 아니다. 다섯 개까지 받는 확률이 높아졌다고 할까. 역시 손으로 하는 일엔 영 젬병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근 들어, 딸이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기를 한다는 소리에 마트에서 팔고 있는 걸 사줬다. 아이가 연습하는 걸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공기를 던져서 하나 올리고 그걸 잡는 것도 어설펐다. 그러면서 마지막 단계에서 공기가 하나도 손에 올라지 않는다고 투덜 댔다. 나는 욕심 내지 말라고, 일단 첫 단계에서 하나 던지고 잡는 것만 연습하자고 일러줬다. 그러면서, 아이가 날 닮아서 손이 작은 걸까 생각했다. 비록 또래에 비해 작았지만, 그림도 잘 그리고 클레이로 조물조물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아마 손이 작아서 손재주가 없다는 건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조급하고 욱하며 감정 기복이 심한 내 못된 성질 탓에 진득하게 못 해낸 게 더 클 것이다. 



국 내 머리 속은 때아닌 들쭉날쭉한 감정에 정착했다. 매서운 바깥 날씨처럼 날카롭고 모났다. 이걸 의도했던 건 아닌데. 단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불현듯 떠오른 기억을 따라갔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땅따먹기 하기 위해 폴짝 뛰는 내가 떠올랐다. 나는 돌멩이를 줍고 있었다. 그 돌은 앞이 뾰족해서 지워진 금을 메울 수 있었다. 어디선가 잃어버린 석필이 생각났고, 그걸 갈아서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마저 났다. 소꿉놀이하면 예전의 아파트 뒤 공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거기서 수없이 땄던 토끼풀과 그걸로 만든 팔찌,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손재주를 의심했었다. 그리고, 수십 년을 건너뛰어 요즘 딸애가 가지고 노는 공기로 이어졌다. 공기만 못하는 아이와 뭐든지 엉성하고 야무지지 못했던 나. 늘 부족하기만 했던 어린 나와 마주했다. 그 모습이 딱해 자조 섞인 넋두리도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슬프냐? 아니, 정말이지 난 아무렇지 않다. 심지어 미소마저 새어 나온다. 어른인 내가 봐도 철부지였던 어린 나. 하다못해 딸보다 어설펐던 어린 나. 근데 그게 귀엽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 추억이구나. 그냥 그 자체로 방점을 찍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 서운하고 내 못남을 상기하더라도. 스스로를 잠시 꾸짖었지만 그래도 그 감정은 후회가 아니다. 차갑고 냉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하고 푸근하게 품는다. 모든 잘못과 잘함까지 격려한다. 그것을 지나치고 견뎌내지 않았냐고. 지금의 내가 되어서 그걸 떠올릴 수 있는 자체가 때론 행복이라고. 추억만큼 가슴 따뜻해지는 화학작용이 어디 있을까? 가슴 한편에서 후끈하고 묵직한 기운이 올라온다. 온몸이 서서히 데워진다. 피곤했던 오늘을 이렇게 날려 보내는 거야. 이불 안도 따뜻했지만 그보다 더한 따사로움이 온몸을 노곤 노곤하게 주무른다. ‘그나저나 요즘도 문방구에서 석필을 파나? 아, 그릴 땅도 없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 어린 시절에 땅따먹기를 했었는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만약에 석필을 구할 수 있고 그걸 그릴 수 있는 땅이 허락된다면 슬쩍 그려놓고 해보자고 할 것이다.
내 추억 팔이가 아니라, 아이의 추억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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